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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2일 목요일

노무현을 추모하며…반복된 반역의 역사 끝장내자

 전경일(인문경영연구소장)

humanity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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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직한 대통령을 왜 지키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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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대선 무너진 역사 다시 세우는 시간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연합뉴스

2009년 5월 23일의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가눌 수 없을 만큼 심장이 뛰고, 피가 솟구쳐 올랐다. 깊은 추도와 묵상을 했고, 이어 조사(弔詞)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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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지난 지금도 생각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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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두 번 가까울 만큼 변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도자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이제나, 또 우리 역사를 통털어, 지도자란 민인(民人)을 뜨겁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높이의 삶 그 아래로 내려가 민인을 뜨겁게 품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옛말에도 대천이물(代天以物)이라 하여 지도자란 민(民)인 하늘(天)을 섬기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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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그래야 하듯 국민 또한 지도자를 아낌없이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사랑받는 지도자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통절한 역사가 16년 전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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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 대통령 하면 지금도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가슴 여민다. 다른 한편,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우리 역사상 그토록 서민적이고 민주적인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는가?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대통령을 가까이 한 적이 있는가? 마음 씀에 있어 그토록 상대를 배려한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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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런 대통령을 왜 지켜주지 못했는가? 왜 그 잘난 자들의 허위에 맞서 분노하고 싸우지 않았던가? 생각할수록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추모하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세월이 갈수록 연민의 정이 더해진다. 너무나 안쓰럽고 울컥해 목이 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 놓아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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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역사는 이미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있을 텐데. 반역의 세월이, 퇴행의 역사가 짙게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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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썼던 조사에 인용한 다산 정약용의 <솔피 노래(海狼行)>를 다시 읽는다. 물고기의 왕 고래가 솔피 무리의 공격에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시다. 1800년 정조대왕의 갑작스럽고, 의문스런 죽음을 에둘러 묘사하며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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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피 노래(海狼行)>

솔피란 놈, 이리 몸통에 수달 가죽

가는 곳마다 열 마리 백 마리 무리 지어 다니는데

물속 날쌔기가 나는 듯 빠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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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덮쳐오면 고기들 알지 못해.

큰 고래 한입에 천석 고기 삼키니

한번 지나가면 고기 자취 하나 없어

솔피 먹이 없어지자 큰 고래 원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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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래 죽이려고 온갖 꾀를 짜내었네.

한 떼는 앞쪽에 들이대고 한 떼는 뒤를 에워싸고

한 떼는 왼편 노리고 한 떼는 오른편 공격하고

한 떼는 배를 올려치고 한 떼는 등에 올라탔네.

상하 사방 일제히 고함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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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죽 찢고 깨무니 얼마나 잔혹한가.

고래 우뢰처럼 울부짖으며 물을 내뿜어

바다 물결 들끓고 푸른 하늘 무지개 일더니

무지개 사라지고 파도 차츰 가라앉아

아아! 슬프도다 고래 죽고야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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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무리의 힘 당해낼 수 없어라

약삭빠른 조무래기 드디어 큰 짐 해치웠네.

너희들 피투성이 싸움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나

본뜻은 기껏해야 먹이싸움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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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다 끝없이 넓기만 하여

지느러미 날리고 꼬리 흔들며

서로 좋게 살 수 있으련만

너희들은 어찌 그리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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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 싸움에서 고래의 죽음은 다산에겐 노론 벽파가 정조를 사정없이 물어뜯던 모습으로 비쳤으리라. 완성되지 못한 개혁의 종착점이 고래의 죽음으로 상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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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민주주의가 압살되는 형국이나,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세력을 고발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의 죽음을 통한 항거와 그다운 명백함의 의사 표현을 구경거리 삼아온 우리의 졸렬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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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불현듯, 다산의 글을 다시 떠올리며, 지금 우리는 민족사의 어느 파고를 헤쳐 나가고 있는지 묻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에서 정의로움은 패배당하고 마는가?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숱한 상념이 고개를 수그릴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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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사대와 작은 기득권의 끊임없는 강화가 민족사를 어지럽힌 주범이라면, 이 처연한 슬픔은 행동으로 넘어서야 하리. 그것이 죽음을 삶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기에.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한 대목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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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9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난 뒤 한 시민이 자신의 마음이 담긴 문구가 세겨진 종이를 들며 화장장으로 떠나는 장례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2009.5.29. 연합뉴스

주변에 미안해하고,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이라는 망자의 처연함 뒤엔 문득, 광주 망월동을 외로이 지키고 선 무수한 혼령들의 작은 빗돌처럼 그의 ‘오래된 생각’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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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을 공격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그 ‘솔피 무리’는 16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2월 3일 국민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벌어진 일대 폭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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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우리는 똑같은 질곡의 역사를 16년 지난 지금 이렇듯 또다시 반복하는가? 또 어떻게 국민들은 공격받은 민주주의를 다시 들쳐업고 분연히 일어나는가? 자연히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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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복되는 반역의 역사를 끝장내야 한다. 6월 3일. 무거운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아니 윤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무너져온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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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겨울의 어둠을 뚫고 다시 봄이 왔듯, 이제 우리는 퇴행의 역사를 밀어내고 새로운 각오로 내일을 다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만세! 라고 다시 외쳐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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