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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2일 목요일

[다당제가 현실로] 결선투표 도입하면 국민의힘 쪼개질까

 

내란 옹호 세력과 내란 반대 세력의 불편한 동거, 정치개혁으로 해결 가능

  • 최지현 기자 cj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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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5-05-22 16:26:40  

     

  • 편집자주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원내 야5당이 대선을 앞두고 다당제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제도 개혁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원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국회의원 선거 시 비례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대로라면 양당체제가 고착된 한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다당제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대통령 파면으로 존립 자체가 위기인 국민의힘, 반대로 강력한 정권을 차지할 더불어민주당, 그 거대양당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진보정당의 미래를 전망한다.


'윤석열 내란' 이후 국민의힘이 집안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내란을 옹호할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가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결국 탈당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내분이 정리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여전히 불편한 동거가 국민의힘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친윤'들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김건희 사당'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이 화해를 하고 손을 잡기엔 견해차가 너무 크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대선이 끝나면 국민의힘은 결국 분당까지 가게 될까.

아직은 모른다. '분열하면 망한다'는 인식은 국민의힘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거대양당이 아니면 독자적으로 정치적 지위를 얻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 탈당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윤석열 비상계엄 해제 투표'에 불참하며 내란을 동조했던 정당 안에서 "제발 윤석열을 다시 구속해달라"(한 전 대표 측근 김근식 당협위원장)고 호소하는 내란 반대 세력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치제도가 바뀌면 상황은 달라진다. 야5당이 합의한 결선투표제 도입과 원내교섭단체 기준 완화, 국회의원 선거 시 비례성 확대가 이뤄지면 보수정당도 자연스럽게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진보진영의 숙원이었던 정치개혁은 이제 보수진영에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4.12.04 ⓒ뉴시스


특히 원내교섭단체 기준 완화와 결선투표제 도입은 '한동훈 독자정당화' 가능성을 높인다. 국회는 교섭단체간 합의로 운영된다. 그러나 교섭단체 구성 기준이 현재 '국회의원 20인'이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소수정당(국회의원 20인 미만)은 상임위원회 간사 배정, 의사일정 조정 등 국회 운영에서 배제되고 국고보조금 배분에서도 불이익을 당해왔다. 원내 소수정당인 진보당 관계자는 "갑자기 여야 합의로 본회의가 열려도 우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교섭단체 구성 기준을 완화한다는 건 '국회의원 20인'이라는 기준을 더 낮추는 것이다. 이는 양당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고 다양한 여론이 국회에 반영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개혁의 핵심과제로 꼽혀왔다. 현재 국회에는 교섭단체 구성 기준을 '20인'에서 '15인'으로 줄이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민주당 박홍근 의원 대표발의) 등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만약 이대로 입법이 된다면 국민의힘에서 의원 15명만 탈당해도 원내에서 독자적으로 교섭단체를 만들어 국회 논의 과정에 국민의힘과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은 18명이었다. '20인'은 안 되지만 '15인'은 넘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에 항의하며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한 김상욱 의원처럼 계엄에 반대하지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던 의원들도 교섭단체를 가진다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반윤' 세력의 구심점인 한 전 대표의 독자정당화도 현실이 될 수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를 향해 "무소속을 당 후보 만들려 불법부당 수단 동원, 중단하라"며 입장을 밝힌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석열 전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권성동 원내대표. 2025.5.9 ⓒ뉴스1

여기에 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된다면 국민의힘의 분당을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선·지자체장 선거에서 다득표한 후보를 당선인으로 선출한다. 선출된 후보가 과반수를 득표를 못해도 1등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 2명만 놓고 다시 한 번 투표하는 제도가 결선투표제다. 국민의 의사를 보다 더 정확히 반영하고, 당선자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로, 유럽 등 많은 민주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개헌 사항이지만, 지방선거 결선투표제는 법 개정으로도 가능하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포함된 개헌을 공약한 상태다. 이게 가능해진다면 대권을 노리는 한 전 대표가 굳이 국민의힘을 고집할 이유도 없어진다. 자기 반대 세력이 많은 국민의힘 안에서 내부경선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대선에 출마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때처럼 김문수에서 한덕수로, 다시 한덕수에서 김문수로 후보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황당한 일도 사라질 것이다. 1차 선거에서 진 후보가 이긴 후보를 2차 결선투표 때 지지하면 자연스럽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도 보수진영의 재구성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비례성 강화를 위해 2020년 21대 총선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법의 허점으로 이른바 '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비례성이 다시 약화되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 투표 의사가 의석수 배분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위성정당' 출현을 막고 비례성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된다면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독자정당을 꾸리겠다는 결심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뜻이 맞는 정당끼리 연합해 후보자를 함께 공천하고, 선거운동을 함께할 수 있도록 이른바 '선거연합정당'을 허용하는 것도 비례성 강화의 방안 중 하나다. 이 역시 다른 나라에선 흔한 제도다. 선거연합정당이 허용되면 국민의힘 밖에 있는 여러 보수정당이 선거 때 힘을 합쳐 '내란정당'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주류 세력을 몰아낼 수도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극우 내란세력 청산'의 한 방법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권도, 자기 배지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 의원들 입장에서는 다당제 연합정치로 가는 정치개혁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정치역사상 이례적으로 보수진영이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일이 생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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