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공개 강연 방청기 ①] 쏟아진 질문에 탄핵심판 소회 밝혀… 키워드는 설득, 기다림, 관용과 자제
글: 박소희(sost) 영상: 박순옥(betrayed)
27일 오후 4시 대전광역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300명 안팎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 좌석은 대부분 꽉 차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었다. 이날 문 전 재판관은 퇴임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주제는 '법률가의 길에서 과학자를 만나다.'
그는 처음 강연 요청을 받고 의아했지만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왜 지금 만났나. 이미 오래전에 만나야 했다"며 "헌법 판례를 찾아보니 과학기술이 이미 들어와 있더라"고 입을 열었다. 이후 44분 동안 문 전 재판관은 기후소송 등의 경험을 소개하며 "기본권 제한과 과학기술의 진보, 이게 제가 여기 온 이유"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법률가, 의사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하고 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마지막 한 명이 남아야 한다면 과학자가 남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법률가는 어떤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 수 없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질문이 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질문이 많았다.
탄핵 인용론과 기각론 "당연히 둘 다 썼다, 그래서..."
주로 카이스트 재학생들이었던 질문자들은 대통령 탄핵심판의 뒷이야기, 문 전 재판관의 소회 등을 궁금해했다. 문 전 재판관도 허심탄회하게 답변을 내놨다. 그는 '대통령 파면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장일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에 놀랐다'는 말에 "기각론은 성립할 수 없다. 인용론만 가능하다. 이게 우리 (재판관들의) 생각이었다"면서도 "그런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설명했다. '설득'을 위해서였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런 사건은 당연히 인용론과 기각론 둘 다 쓴다. 그래서 인용론 입장에서 기각론을 비판하고, 기각론 입장에서 인용론을 비판한다. 그러면 인용론을 계속 수정한다. 기각론도 이렇게 간다. 가다 보면 공통적인 것을 갖고 이견이 해소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이 오기도 전에 반팔을 입는 사람이 있고,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긴팔을 입는 사람이 있다. 그걸 갖고 '너는 왜 내 속도에 못 맞추냐' 이렇게 할 수 없다.
헌법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틀림없이 한 지점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고, 모였다. 왜냐? 기각론은 성립할 수 없다. 인용론만 가능하다. 이게 우리 (재판관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린 거다. 이게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결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표결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정말 안될 때, 예를 들면 곧 10초 뒤에 폭파가 일어난다면 결론을 내야될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설득에는 그렇게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게 저는 설득이라고 본다. 짐짓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며칠 계속 얘기해보면 별로 다른 것도 없다.
기각론은 왜 성립불가였을까. 문 전 재판관은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탄핵심판 과정에서 야당의 줄탄핵, 예산 삭감 등을 내세워 비상계엄 선포를 합리화하려 했던 점을 언급하며 "군인을 동원해서 해결할 문제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헌법은 상식"이라며 "아마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이게 정상이다' 생각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라고도 했다. 자신은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란 자막을 보고 "해외토픽"인 줄 알았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쉬운 결정문이 나온 까닭
헌법이라는 상식에서 출발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학생은 그에게 '어떤 노력을 통해 쉬운 말로 된 결정문이 나왔냐'고 질문했다. 문 전 재판관은 "결정문은 TF에 속한 연구관들이 초안을 써왔고, 저희들이 토론하면서 고치는 식으로 됐는데, 선고 시간이 늦어짐으로 해서 수정본이 많아졌다"며 "제가 알기론 인용론은 열 몇 번 수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핵선고가 늦어짐으로 인해서 국민들이 속이 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문장이 쉬워졌다. 또는 정확해졌다 생각하고. 그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뭐냐. 많이 나오지 않나. 많이 읽고,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써보는. 그래서 제가 블로그를 계속하지 않나.
탄핵 반대 세력이 공격의 빌미로 삼았던 블로그에 관한 문 전 재판관의 작은 '뒤끝'에 청중은 파안대소했다. 다만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언론 인터뷰를 한 적 없다. 그 이유는, 탄핵 결정에 수긍할 수 없는 20% 내외 국민들한테 좀 뭐랄까, 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라며 그들 또한 '국민'임을 짚었다. 여전한 신변 위협으로 강의실 주변에 경찰이 배치된 상태였지만 "이름이 알려지는 게 사라질 때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8대 0이 말하고 싶었던 것
▲문형배 전 재판관이 밝힌, 우리가 '8대 0'을 만든 이유 박소희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헌법재판관 8인이 전원일치로 결정문에 꼭 남기고 싶었던 내용은 "관용과 자제"였다. 그는 "우리가 8대 0을 만든 이유"라며 "'비상계엄 사태는 전적으로 대통령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분명 국회에도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비상계엄은 아니다.' 이게 우리 생각이지, 국회는 아무런 잘못 없고 대통령이 느닷없이 어느 날 그런 일을 했다' 이렇게 쓸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관용과 자제를 잃는 순간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것이다.
관용과 자제는 설득의 힘을 키운다. 문 전 재판관은 헌재의 무기 또한 '설득'이라고 했다. 그는 "헌재는 칼도 없고, 지갑도 없다"며 "결국 국민에 대한 설득, 설득 그 하나 가지고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문 전 재판관은 '재판관한테 판단할 권리를 누가 줬다고 봐야 하는가'란 물음에 "국민이 헌법을 통해 줬다. 그래서 재판관의 덕목은 겸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사회에서 그런 합의를 했기 때문에 내가 재판하는 거지, 사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재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성적이 좋아서 판사 하는 게 아니다. (법관들이) 그걸 계속 착각하는 것 같다. 저도 그렇고. 이 사회가 우리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예를 들면 '배심 재판을 하라' 이렇게 명한다면 우리 권한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재판권을 주신 건 국민이다. 그러므로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서 재판을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
법관이 정치의 사법화 막는 법
법관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판결을 비판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문 전 재판관은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니까 저 판결은 못 믿겠다'는 식이면 답이 없다"며 보수 진영의 색깔론도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인종차별을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인종을) 고칠 수가 없어서 아닌가. 고칠 수 있는 걸 갖고 얘기해야 하는 건데, 우리법 출신인데 어쩌라는 것인가"라며 "차라리 내가 제시한 근거 중에 잘못된 것은 비판할 수 있고,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그런 것 아닌가"라고 했다.
법관을 겨눈 과도한 공격은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관련 질문도 여러 차례 나왔다. 문 전 재판관은 "정치의 사법화는 사실 우리(사법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며 "대신 급하고 중요한 사건을 먼저 처리함으로써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제가 볼 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임에도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추천권을 행사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우리가 그걸 미적미적하다 보면 그냥 재판관을 임명해 버린다. 그걸 (재판관) 아홉 명이 만장일치로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지 않나. 정치의 사법화를 막을 방법은 만장일치로, 때를 놓치지 않고 선고하는 것, 저는 그것이라고 본다."
"61% 국민이 헌재 신뢰, 가장 보람"
문 전 재판관은 사법 신뢰가 흔들리는 지금, 헌법재판소가 그나마 국민의 믿음을 지켜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는 "다른 기관은 말할 입장은 못되고, 2025년 4월 18일 현재(본인 퇴임일 – 기자 주) 헌재는 신뢰해도 된다"며 "여론조사 결과 61% 국민이 신뢰한다고 말했고, 이는 국가기관 중 1위다. 저는 헌법재판관하고 소장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것이 국민들 중 61%가 헌재를 신뢰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30명가량이 강의실 양쪽에 줄을 서서 질문을 쏟아내느라 당초 오후 5시 30분 종료 예정이던 강연은 6시를 조금 넘기고 나서야 마쳤다. 문 전 재판관은 끝으로 "저의 바람은 (카이스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서) 노벨상 수상연설에 제 이름이 거론되길…"이란 말을 남겼다.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인 그에게 부산 출신 학생이 '올해 롯데가 우승할 것 같냐'고 묻자 "한화(대전 연고)가 못하면 우승할 것 같다"고 답했을 때처럼, 청중은 또 한 번 큰 박수로 응원했다.
[문형배 특강②] "인생 고비마다 나에게 정직했다"는 문형배의 부채감
(https://omn.kr/2du2b)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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