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안국동과 서초동으로 뛰어가는 정치권
25.05.03 19:29최종 업데이트 25.05.03 19:29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용주, 박영재, 신숙희, 권영준, 오석준, 이흥구, 조대희, 오경미, 서경환, 엄상필, 노경필, 이숙연.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집무실과 더불어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당장 정치권의 시선은 세종시보다는 서울 서초동과 안국동을 향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정치나 입법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들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판결하면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김문기 관련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서 정한 허위사실 공표죄로 판단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정치인의 권력, 사법부 통해 빼앗으려고 했던 일들

▲2003년 5월 17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4·15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해 3월 12일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는 5월 14일까지 직무를 정지당했다.
이 발언을 헌법재판소로 갖고 간 세력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기 위한 충정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치 질서를 흔드는 진보적인 서민 대통령, 고졸 대통령을 내쫓으려는 의도가 국민들의 눈에는 더 많이 비쳐졌다. 정치권의 힘으로는 노무현을 어찌할 길이 없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긴 측면이 컸다.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로 넘긴 인상적인 사건은 1979년에도 있었다. 그해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김영삼 총재는 9월 8일에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5·30 전당대회에 참가한 일부 대의원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가처분을 신청한 쪽은 김영삼을 반대하는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지만, 소송의 배후에는 박정희 정권이 있었다. 신민당 대의원 자격에 관한 제보를 받은 신형식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이 '정치도의상 거론할 수 없다'며 묵살했는데도 사건이 법원으로까지 가게 된 배경에 대해 2016년 7월 10일자 <프레시안>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179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사건이 정국의 주요 현안이 된 건 역시 공작정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총재단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의 공작에도 차지철이 깊이 개입했다. 이 사건은 심리 도중에 배석 판사가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의아심을 샀다."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당대표가 된 김영삼은 법원 판사의 결정에 의해 총재직무를 정지당했다. 신민당 내부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 신민당과 공화당 간에 해결돼야 할 문제가 민사법원에서 처리된 특이한 사례였다.
정치문제를 사법부에 들고 가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군주나 사법부의 판단을 빌리는 형식으로 상대방을 아웃시키는 일은 예전에도 흔했다. 왕조시대에는 정적을 흠집 내는 상소문을 올려 상대방이 유배형이나 사형을 받게끔 만드는 일이 많았다.
'사법의 정치화' 불러 온 정치권의 문제해결 능력 부족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관한 대법원 상고심 선고 후 브리핑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5.5.1연합뉴스
그처럼 '정치의 사법화'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선거운동이나 정치력을 동원해 라이벌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재판부의 힘을 빌려 그렇게 하려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국민들이 선거나 여론 형성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 몇몇 판사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일도 가능해진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문제를 서초동이나 안국동에 갖고 가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정치권과 국회의 문제해결 능력이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정치권에서 해결돼야 할 이슈가 정치권을 거쳐 법원으로까지 가게 되면, 국가적 에너지의 소모도 그만큼 많아진다.
이는 재판관들의 업무 부담도 가중시킨다. 일반사건 처리에 집중해야 할 사법부의 주의력을 분산시킨다. 또 판사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도 있다. 법원이 정치 문제를 많이 다루면 사법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측면도 있지만, 서부지방법원 폭동에서 나타나듯이 법원 관계자들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국가전략> 2011년 제17권 제3호에 실린 채진원 경희대 교수의 논문 '한국에서 분점정부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상관성'은 의회 권력과 행정부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분점되는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사법의 정치화가 특히 심해진다고 지적한다.
'두 권력이 한 세력에 단점돼 있느냐 두 세력에 분점돼 있느냐'와 '헌법재판소 사건 접수 및 처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논문은 "두 변수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라며 "분점정부 시기에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이 더 많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행정부와 국회가 서로 어쩌지 못하는 여소야대 시기에 정치문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분점정부와 헌법재판소 역할의 상관관계는 2024년 3월 21일 한국학술연구원과 법률방송이 개최한 '정치의 사법화, 외교의 사법화' 학술회의에서 박종현 국민대 교수의 발표 내용을 정리하고 비평한 이철우 연세대 교수의 토론문에서도 확인된다. 이 토론문은 박종현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한다.
"박종현은 선출되지 않은 법관이 입법부나 행정부의 의사결정을 무효화하는 것이 다수결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소위 '반다수결주의 난제'가 실제 현실에서 문제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헌법재판소 설립 후 20년간의 결정례를 전수 조사해, 정치적 다수가 견고한 단점정부 시기(1990~1997, 1998.9~1999, 2006~2007)에는 정치적 다수가 견고하지 않은 분점정부 시기에 비해, 그리고 정치적 다수의 의사가 명확히 드러나는 선거 직후에는 선거 직전에 비해 헌재가 정치적 기관의 의사에 반하여 적극적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여소야대 상황과 선거 직전에 헌법재판소가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권도 헌법재판소를 더 많이 '알현'하고 헌법재판소 역시 정치권의 눈치를 덜 본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대한민국의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정치권이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현저히 낮음을 보여준다. 또 기존 의회제도와 정당제도가 새로운 정치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정치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수술과 더불어 국민통합을 위한 비상한 노력 없이는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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