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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5일 일요일

'새 시대의 맏형' 되기 위한 연합정치와 연성정치

 김동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mindle@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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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우군 없이 내란세력 뿌리 뽑을 수 없어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새 시대의 맏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적절한 판단이었지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구시대의 막내가 되지도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구시대를 더욱 퇴영적인 방식으로 연장했고, 그 극단적인 사건이 바로 지난 12.3 비상계엄, 즉 내란 사태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5공, 3공, 심지어 6.25 전후를 방불케 하는 통치 방식, 담론, 세력을 부활시켰다. 물론 이명박 이후 지난 15여년 동안 지구적 신자유주의 위기, 심각한 불평등으로 신우익, 신파시즘 세력이 창궐한 시기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중간에 촛불의 힘을 업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구시대를 끝내지도, 새 시대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윤석열 즉각 탄핵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이호 작가 사진

압도적 승리보다 국힘당의 압도적 패배가 바람직한 이유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안보와 성장을 무기로 한 국민의힘과 한국의 주류 보수세력의 지도력과 국가운영 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후 두 번의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은 계속 패배해서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영남 ‘텃밭’과 서울 강남 부자들의 변함없는 계급적 이해, 검찰, 사법, 행정 엘리트, 주류언론, 거대 로펌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버텨왔다. 결국 작년 윤석열의 ‘자살골’로 국민의힘의 지도력은 파국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시기처럼, 또다시 ‘광장의 시간’이 끝나고 ‘선거 정치’의 시간이 다가왔다. 광장의 시민은 이제 개인 유권자로 파편화되었다. 탄핵의 에너지는 주로 광장의 시민에게서 나왔지만, 그것을 법 제도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은 정치세력인 민주당에게 있다. 민주당은 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서 내란 세력, 즉 냉전/ 반민주/ 특권/ 부패/ 지역주의로 무장한 구세력을 퇴출하자고 외친다. 그런데 촛불/응원봉 세력은 물론 내란세력 처벌을 지지한 다수의 대중은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가 구시대를 종식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새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 상당수는 박근혜 탄핵을 지지했으나 이후 민주당 정부에 등을 돌린 경험이 있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압승하여 내란세력을 확실히 응징하고, 정부, 사법부, 검찰 등 권력기관 제도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행이지만, 또다시 개헌 작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현재의 양당 독점 구도에 안주한다면 이번 내란 사태에 등장한 극우세력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압승보다는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투표의 60%를 얻으면 압승이라 할 수 있고, 강한 개혁의 동력이 생기겠지만, 그런 일은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이 55% 정도를 얻어도 압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40%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재명이 55%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준석, 권영국 후보가 합해서 15%를 얻고 국민의힘의 김문수 30%에 못미치는 지지를 얻는다면,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는 민주당의 독주를 가져올 위험이 있으나,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는 민주당이 청년, 노동자 등과 힘을 합쳐 내란세력을 퇴출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2003.3.9.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발호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연합정치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재의 대통령 선출 제도/한국식 대통령제/양당 독점체제 하에서 집권세력은 소수 정당의 정책을 반영하거나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공동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연합정치를 실천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설사 집권세력의 의지가 있어도 권력 독점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즉 현 제도에서는 대통령실이 집권 여당을 압도하기 때문에 여당은 존재감이 없어지고, 정책적 의제를 둘러싼 생산적 논쟁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제도는 정치를 정권 지지/반대로 양분화 한다. 그래서 우리가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에서 보았듯이 집권 세력의 국가 운영의 실책은 집권 후반기에 식물정권으로 이어지고, 동시에 정권 유지/교체를 건 사활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부른다.

즉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압승한다고 하더라도,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자 몸사리기, 민감한 사회정책 손안대기로 일관할 수도 있다. 특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책적 오류는 죽어가는 국민의힘과 내란세력의 부활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야권 일반과 촛불/응원봉 세력이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가질 것인가가 집권 후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몸으로 막은 광장세력과 시민들은 윤석열 파면에 이은 조기 대선이 민주당과 함께 저항적 시민의 공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선 이후 집권의 성과를 민주당이 독식할 경우, 점점 비판 세력으로 돌변할 것이다.

즉 집권 민주당 대통령이 연합정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경우, 내란 세력을 완전히 고립시키지 못할 위험이 있고, 지지율 저하를 맞았을 때 맞서 도와줄 우군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조국혁신당 등 소수당과의 연합정치는 물론이고, 제도권에 대표부를 갖지 못하지만 탄핵을 주도한 광장 세력과 공동정부에 준하는 정부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료 구성에 권영국 후보를 끌어들이거나 여러 정부 위원회의 대통령 몫을 개방해서 국회 및 시민사회의 몫을 늘여야 한다. 연합정치가 필요한 이유는, 지난 5개월 동안 우리가 계속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보았듯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치개입, 사법부, 관료, 검찰, 언론의 지속적인 개혁 방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5개 야당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열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18. 연합뉴스

연합정치를 궁극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개헌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선거법 개정을 통해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 이번 이재명의 개헌안에서 이런 내용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으나, 집권 후 국민에게 다시 약속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각료 구성, 정부의 각 위원회의 위원 임명에서 대통령 추천 몫은 가급적 줄이고, 국회 추천, 그리고 시민사회 추천 몫을 확대해야 한다. 과거 민주당은 입법과정에서 이런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정권을 잃은 다음에는 국가교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인권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 중요한 위원회가 파행을 겪거나 설립 목적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시민들을 정치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연성정치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수도권 과집중, 제조업 경쟁력 강화, 경쟁교육 등의 과제는 대통령과 국회 등 제도권 권력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연합정치가 다양한 정치 사회세력의 연대와 타협의 기반을 구축하여 내란/탄핵 지지 세력을 고립시키고, 정치를 정상화하는 작업이라면, 연성정치는 정치 밖 정치, 즉 시민정치, 시민참여를 제도화하고 활성화하는 작업이다. 즉 광장 시위와 선거 참여 외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표출할 수 없는 시민들을 정치와 정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여, 국가의 실질적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국민주권정부’를 내건 것도 이것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 개정 작업을 제도권 여야의 합의로만 진행하면 그 헌법은 기성 양당의 이해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내용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시민회의’ 도입 등을 통해 각계 각층 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숙의의 과정을 거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의 개정 역시 시민의 참여가 배제된 채로 진행되면 지난번처럼 위성정당의 설립으로 귀결되고 비례성 확대의 목표는 생색내기에 그치게 될 것이다.

1987년 6월 1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단 신부들이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홈페이지

87년 민주화 이후 여전히 모든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지역주의를 끝내기 위해서는 영남에 민주당 기반을 강화하거나, 호남에 국민의힘이 세력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영호남를 포함한 모든 지방과 지역사회의 조례 제정이나 정책 수립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거나 자치를 실질화하는 일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 제도정치의 문턱은 너무 높고, 시민의 일상적 요구는 시장의 힘에 눌려서 제대로 제기되지 못한다. 5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농민, 외국인 노동자들은 교섭권이 없다. 지방의 모든 문제는 주민 일반과 청년들에게 절실한 문제이나, 수도권으로 이전을 결정하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막을 수 없다. 필수의료 등 국민건강 문제에서 잠재적 환자인 국민들은 전공의들의 파업에 맞설 수 있는 발언권이 없고, 주택문제는 모든 세입자, 청년들의 절실한 관심이나 실제로는 건설업자나 수도권 건물주나 아파트 소유자들의 이해에 따라 결정된다. 이들 조직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발언권과 교섭권을 부여하는 것이 곧 연성정치가 될 것이다.

결국 연성정치는 연합정치의 아래로부터의 기반이 되고, ‘선거’와 ‘광장’이라는 극단적 선택지의 빈 칸을 메울 수 있는 미래지향적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선거와 광장의 극단적인 이분법과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연성정치가 활성화되어야 아래로부터의 극우세력의 창궐도 막을 수 있고, 골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이 미래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오른쪽’ 자처한 만큼 ‘왼쪽’ 위한 제도 개혁 앞장 서야

선거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와 비토가 교차하는 열광의 도가니다. 그런데 이 열광은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냉정한 일상, 생존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대부분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그 일상은 감내하기 어려운 벅찬 삶의 현실이다. 보통 시민들에게 비상계엄, 탄핵, 대선은 자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엘리트들의 전쟁일지 모른다. 며칠 전에도 SPC 계열사 제빵회사에서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 2022년 이후 세 번째다. 회사는 첫 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했다고 했으나, 이 비극적 결과는 변화의 부재를 웅변한다.

지난해 노동자 사망 및 잇단 부상 사고가 발생한 SPC의 한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에서 8일 또다시 근로자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41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소재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 A씨가 근무 중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사진은 성남시 샤니 제빵공장 모습. 2023.8.8. 연합뉴스

민주당이 집권 한다면 미완의 과거청산, 내란 세력을 정치권에서 몰아내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그 세력이 계속 기득권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 법, 언론, 판결, 판검사 관료 엘리트 양성 체제, 교육을 개혁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여기서 구시대의 마무리와 새 시대의 시작은 사실상 분리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이후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 저출생, 수도권 집중 문제의 해결, 그리고 다가온 산업전환,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시대에 대처하는 일은 지금 바로 시작해도 너무 늦었다.

무엇보다도 윤석열이 영혼없이 외쳐 댄, 낡은 ‘자유’의 담론을 걷어내야 한다. 민주당이 이제 스스로 ‘오른쪽’이라고 했으니, ‘왼쪽’ 세력의 등장과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 개혁에 앞장서야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기성층과 기득권층을 의식해서 여전히 부국강병, 성장주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집권하면 산업전환, 생태, 돌봄, 주거 안정, 경쟁교육 청산 등 사회적 의제와 씨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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