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전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등 광화문 농성단체 기자회견'...시복 미사 아닌 이웃 방문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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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5 18: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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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광장과 그 인근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일 오전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낮은 데로 임하소서! 광화문 농성 이웃 방문 호소 기자회견'을 갖고 교황의 방한 행사를 이유로 정부와 경찰이 농성장을 철거할 것을 우려하고 교황이 농성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광화문 광장과 그 인근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일 오전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낮은 데로 임하소서! 광화문 농성 이웃 방문 호소 기자회견'을 갖고 교황의 방한 행사를 이유로 정부와 경찰이 농성장을 철거할 것을 우려하고 교황이 농성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씨앤앰, 티브로두지부) 등 관련 단체들은 오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광화문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집전하는 것과 관련해 "미사에 농성자들을 초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황을 면담하는 자리로, 교황이 소외된 이를 찾는 자비가 베풀어지며 교황의 방한을 축하하는 모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진미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4개월이 지나고 가족들의 단식이 23일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까지도 왜 아이들이 죽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또 4월 16일 이전과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하며 안전이 보장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외침도 공허하다"고 말하고 "자식을 가슴에도 묻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교황이 자비로운 손길을 보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 왼쪽부터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최진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박경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이종탁 서울희망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2년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경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대규모 수용 시설에서 나와 지역 공동체에서 살고 싶다는 장애인들의 절규가 외면당한 채 장애등급에 따른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지 못해 지난 4월 송국현 씨가 불에 타죽었다"며, 음성 꽃동네 수용시설을 방문하려는 교황의 일정은 2년 농성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으니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가한 장애인들은 '꽃동네에 가지마세요. 교황님', '교황님, 꽃동네는 향기없는 꽃들만 있어요. 거기에 있는 장애인들의 삶은 행복없는 거짓이에요. 광화문역으로 오세요'라는 손피켓을 들고 몸부림치듯 주장을 펼쳤다.
현재 광화문 광장 주변 흥국생명 앞에서 농성중인 티브로드 노조,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씨앤앰 노조를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이종탁 서울희망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자본과 권력은 노동자를 만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노동자를 치우려고만 든다"며, 노조파괴를 노린 원청회사에 의해 협력업체 변경과 고용승계 약속 파기, 계약해지 및 해고 등 노조탄압이 진행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종탁 위원장은 "'교회가 거리로 나와야 한다'고 말한 '거리의 교황'은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며 "낮은데로 임하겠다는 교황의 말씀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듯 노동3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교황의 방문은 잘못된 우리 사회에 평화와 평등,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지금 가장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이며, 이들은 돈과 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박해당하며, 죽임을 당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신승철 위원장은 "교황이 핍박받는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실 것을 기대하며, 16일 광화문에서 교황의 방한을 축하하는 모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마쳤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전문)
찬미 예수님!
교황 성하가 이 땅에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성하께서 이곳 광화문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시기 이전에 우리가 이 땅에서 지금 받고 있는 고통에 먼저 귀 기울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가운데 신자인 자도 신자가 아닌 자도 있습니다만, 여기 핍박받고 소외된 우리들은 우리가 울부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양떼를 잃은 목자인 당신께서도 단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한 명 한 명이 더 없이 소중했던 우리의 자식, 부모, 형제와 자매를 잃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떠난 여행길이 이 세상에서 걸었던 마지막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탄 배가 왜 침몰했는지, 그리고 왜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식사를 중단했습니다. 침식을 잊고 지낸 지 넉 달이 다 되어가는 육신이 차츰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세운 이 나라에서는 진상을 덮으려 하고 우리에게 침묵을 종용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이웃의 곁에서 애통해 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불의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 하느님 당신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정의로 우리의 궁핍한 처지를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 중 일부는 장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자녀들 사이에는 어떠한 차등도 없을 테지만, 이 땅에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등급을 매겼습니다. 그 등급에 따라 활동보조인의 적절한 도움을 받을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죽은 이가 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죽음과 마찬가지여서, 죽는 길이 사는 길이어서 교회에서 말하는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저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더 큰 등급을,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또 다른 등급을 매기는 자들입니다. 교황 성하. 저들에게 끊임없이 주었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사랑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중 일부는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광화문의 높은 빌딩에 자리를 잡은 투기 자본과 대기업의 탐욕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거나 자립을 이제 막 시작한 여성노동자거나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습니다. 연대성의 원리에 기반해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만든 노동조합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설치, 송출, 수리하는 노동자들이 한창 일해야 할 일손을 놓고 뙤약볕 아래 거리에 나와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 희망이 들어설 틈이 없어 절망하고 있는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 거리에서 함께하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황 성하. 우리와 함께 울어주십시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과 다 겪은 후에야 끝나게 될 우리의 시련을 위해 울어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성하께서 집전하시는 미사를 치장한다는 이유로 저들이 우리를 광장에서 쓸어내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를 찾아와 주십시오. 익숙해지지 않는 우리의 고통을 위로해 주시고 길거리에 나와 탄원하는 방법밖에 찾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우리를 몰아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멈추지 않는 분노를 깨끗이 용서해 달라고 우리 주님께 청원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또한 교황 성하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2014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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