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나은 고릴라, 고당도 과일의 속임수 이겼다
칼로리 없고 설탕 2000배 단 열매와 영장류의 진화 ‘군비 경쟁’
영장류 가운데 고릴라만 돌연변이로 단맛 못 느껴 헛고생 안 해
»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의 주식은 과일과 식물이어서 둘 사이의 공진화와 군비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Jackhynes,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봉과 카메룬 등 서아프리카의 숲에는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오우블리’라고 부르는 덩굴식물(학명 Pentadiplandra brazzeana)이 있다. 여기서 열리는 자두만 한 열매는 아주 달다.
오우블리란 말은 ‘잊다’는 뜻인데, 젖먹이가 이 열매를 한 번 맛보면 집에 돌아가 엄마 젖을 찾는 걸 잊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씨앗을 둘러싼 섬유조직에 ‘브라제인’이란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당도가 설탕의 2000배에 이른다.
» 서아프리카에서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가 즐겨 따먹는 고당도의 열매 펜타디플란드라. 토착 이름은 오우블리이다. Scamperdale, 플리커스
게다가 칼로리는 거의 없어 당뇨병 환자에게 안전한 저칼로리 설탕 대체 감미료 원료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브라제인을 인공합성해 기업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그린피스는 원주민의 토착 생물지식을 약탈하는 ‘생물 해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식물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토착 지식도 유인원이나 원숭이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 사는 50종의 영장류는 모두 이 열매를 즐겨 먹는다.
» 설탕보다 2000배 당도가 높고 칼로리는 거의 없는 브라제인의 분자구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달기만 하고 칼로리가 없다는 건 당분 과다 섭취가 문제인 현대 사회에서는 매력적인 속성이겠지만 자연 생태계에선 일종의 속임수다. 달콤해서 영양분이 많은 줄 알고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먹었는데 몸에 남는 효과가 없다면 그 시간에 다른 과일을 먹는 것보다 못하다.
물론, 식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너지를 덜 들이고 그럴듯한 열매를 만들어 동물을 끌어들인다면, 적은 비용으로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자연의 선택을 받는 멋진 적응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아프리카에 사는 서부로랜드고릴라는 이 열매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미국 브렌다 브래들리 조지워싱턴대 인류학자 등 연구자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했다. <미국 자연인류학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은 고릴라와 속임수를 쓰는 식물 사이에 진화의 ‘군비경쟁’이 벌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고릴라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열매를 먹는데, 오우블리의 분포구역은 고릴라의 먹이터와 완전히 일치한다. 연구자들은 다른 영장류를 그토록 잡아끄는 단맛을 고릴라는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그런 가설이 맞았다. 사람 등 다른 모든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고릴라만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 단맛 수용기를 나타내는 고릴라의 TAS1R3 유전자에는 두 개의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 서아프리카 열대지역 원산인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는 온대 지방 동물원에서 늘 식물을 탐색한다. Wikihobb,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자리 잡은 것은 아주 오래여서 원숭이와 유인원이 분리된 2500만~3000만년 전 이전의 일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고릴라는 영장류를 씨앗 확산자로 값싸게 부리려는 식물의 전략에 반기를 들었다. 맛은 좋지만 몸에 나쁜 열매에 끌리지 않도록 돌연변이가 일어난 고릴라가 더 잘 적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 고릴라의 서식지에는 이 식물이 전혀 분포하지 않는데도 돌연변이가 그대로 있다는 데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동부 고릴라와 서부 고릴라가 분리된 100만년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장류와 속씨식물은 열매를 제공하고 씨를 퍼뜨리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함께 진화했다. 그 관계가 늘 호혜적인 것은 아니다. 슬쩍 속이고 상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바로 진화의 군비경쟁이다.
연구자들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 속임수의 비슷한 사례로는 말벌의 먹이를 흉내 내 끌어들인 말벌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하는 난을 비롯해, 지방산이 있는 것처럼 화학적 속임수로 개미가 씨앗을 퍼뜨리도록 하는 식물 등 많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속임수와 나아가 이에 대한 대항 적응이 단순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laine E. Guevara et. al, Potential arms race in the coevolution of primats and angiosperms: brazzein sweet proteins and gorilla taste receptors.
The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DOI: 10.1002/ajpa.23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영장류 가운데 고릴라만 돌연변이로 단맛 못 느껴 헛고생 안 해
»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의 주식은 과일과 식물이어서 둘 사이의 공진화와 군비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Jackhynes,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봉과 카메룬 등 서아프리카의 숲에는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오우블리’라고 부르는 덩굴식물(학명 Pentadiplandra brazzeana)이 있다. 여기서 열리는 자두만 한 열매는 아주 달다.
오우블리란 말은 ‘잊다’는 뜻인데, 젖먹이가 이 열매를 한 번 맛보면 집에 돌아가 엄마 젖을 찾는 걸 잊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씨앗을 둘러싼 섬유조직에 ‘브라제인’이란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당도가 설탕의 2000배에 이른다.
» 서아프리카에서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가 즐겨 따먹는 고당도의 열매 펜타디플란드라. 토착 이름은 오우블리이다. Scamperdale, 플리커스
게다가 칼로리는 거의 없어 당뇨병 환자에게 안전한 저칼로리 설탕 대체 감미료 원료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브라제인을 인공합성해 기업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그린피스는 원주민의 토착 생물지식을 약탈하는 ‘생물 해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식물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토착 지식도 유인원이나 원숭이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 사는 50종의 영장류는 모두 이 열매를 즐겨 먹는다.
» 설탕보다 2000배 당도가 높고 칼로리는 거의 없는 브라제인의 분자구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달기만 하고 칼로리가 없다는 건 당분 과다 섭취가 문제인 현대 사회에서는 매력적인 속성이겠지만 자연 생태계에선 일종의 속임수다. 달콤해서 영양분이 많은 줄 알고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먹었는데 몸에 남는 효과가 없다면 그 시간에 다른 과일을 먹는 것보다 못하다.
물론, 식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너지를 덜 들이고 그럴듯한 열매를 만들어 동물을 끌어들인다면, 적은 비용으로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자연의 선택을 받는 멋진 적응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아프리카에 사는 서부로랜드고릴라는 이 열매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미국 브렌다 브래들리 조지워싱턴대 인류학자 등 연구자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했다. <미국 자연인류학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은 고릴라와 속임수를 쓰는 식물 사이에 진화의 ‘군비경쟁’이 벌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고릴라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열매를 먹는데, 오우블리의 분포구역은 고릴라의 먹이터와 완전히 일치한다. 연구자들은 다른 영장류를 그토록 잡아끄는 단맛을 고릴라는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그런 가설이 맞았다. 사람 등 다른 모든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고릴라만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 단맛 수용기를 나타내는 고릴라의 TAS1R3 유전자에는 두 개의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 서아프리카 열대지역 원산인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는 온대 지방 동물원에서 늘 식물을 탐색한다. Wikihobb,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자리 잡은 것은 아주 오래여서 원숭이와 유인원이 분리된 2500만~3000만년 전 이전의 일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고릴라는 영장류를 씨앗 확산자로 값싸게 부리려는 식물의 전략에 반기를 들었다. 맛은 좋지만 몸에 나쁜 열매에 끌리지 않도록 돌연변이가 일어난 고릴라가 더 잘 적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 고릴라의 서식지에는 이 식물이 전혀 분포하지 않는데도 돌연변이가 그대로 있다는 데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동부 고릴라와 서부 고릴라가 분리된 100만년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장류와 속씨식물은 열매를 제공하고 씨를 퍼뜨리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함께 진화했다. 그 관계가 늘 호혜적인 것은 아니다. 슬쩍 속이고 상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바로 진화의 군비경쟁이다.
연구자들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 속임수의 비슷한 사례로는 말벌의 먹이를 흉내 내 끌어들인 말벌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하는 난을 비롯해, 지방산이 있는 것처럼 화학적 속임수로 개미가 씨앗을 퍼뜨리도록 하는 식물 등 많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속임수와 나아가 이에 대한 대항 적응이 단순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laine E. Guevara et. al, Potential arms race in the coevolution of primats and angiosperms: brazzein sweet proteins and gorilla taste receptors.
The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DOI: 10.1002/ajpa.23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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