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마철이어서 그런가, 한반도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동북아시아엔 암운이 드리워졌다. 정세가 갑자기 긴장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도발’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만 ‘도발’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한국도 미국의 도발에 방조를 했다. 최근 미국은 하루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도발을 감행했다.
하나의 도발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인권유린 혐의를 이유로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북한 내 인권침해와 검열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발송했으며, 동시에 미국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을 제재명단으로 발표했다. 또 하나의 도발은 하루가 지난 8일 미국이 한국과 공동으로 “주한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미동맹 차원에서 결정했다”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양국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의식해서인지 “사드 체계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어떠한 제3국도 지향하지 않고, 오직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만 운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묘하게도 미국이 주연을 행사한 두 개의 도발이 하루 사이에 일어났다. 미국의 ‘김정은 제재’와 ‘사드 배치’ 발표가 단순히 오비이락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이 김 위원장을 제재대상에 올리자 북한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고 존엄’을 건드렸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당일인 7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에 대해 “우리의 최고 존엄을 걸고든 것은 천추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 중의 대죄악”이라면서 ‘붉은선’(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북한은 미국에게 이번 제재조치를 “즉시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는 “미국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상 이제부터 미국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우리 공화국의 전시법에 따라 처리되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선전포고와 함께 전시상황으로 돌입했다.
미국의 사드 배치 ‘도발’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발끈했다. 중국은 당일인 8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시했으며, 러시아도 8일 외무부 성명을 통해 (사드 배치) 행위는 미국이 자주 거론하던 글로벌 전략 안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꾸짖었다. 특히, 중국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11일 중국은 사드가 배치될 경우 “중국은 자기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노골화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조선반도를 열핵전쟁 마당으로 전변시키고 이를 통해 침략적인 아시아태평양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현해보려”하는 미국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가뜩이나 꾸물꾸물하던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단박에 어두워졌다. 지금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한편에선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확연해지자 동북아에 신냉전 구도가 들어서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다른 한편에선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대 중국’이라는 G2가 개입하고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가 가세함으로써 한 세기 이전 구한말(舊韓末)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 민족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신냉전 구도는 남과 북의 분단 상태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고, 현재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구한말 재현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또 다른 나락으로 빠트리게 할 공산이 크다. 계절적·자연적 장마철이야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겠지만 새롭게 도래하는 신냉전 구도나 구한말 재현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불길한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도발로 촉발된 이 위기를 남과 북은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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