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의 단언컨대]118회 가성비·절차·유연성···‘3無’ 박근혜의 외교·안보
이대근 논설위원
■ 2015년 3월30일의 윤병세 외교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재외공관장 회의 개회사를 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 아닌 축복이다.” “고난도 외교 사안의 고차방정식을 1·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국내 일각에서 19세기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마치 우리나라가 여전히 고래 싸움의 새우 또는 샌드위치 신세같이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패배주의적, 자기비하적, 심지어 사대주의적 시각에서 우리 역량과 잠재력을 외면하는 데 대해선 의연하고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해주길 바란다.”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뚜벅뚜벅 갈 길을 가면 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그리고 드레스덴 구상을 포함한 모든 주요 외교안보정책은 대통령님께서 취임하시기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전략적인 토론을 통해 설계된 비전이자 국가 대전략입니다.”
■ 현 동북아 정세가 러브콜을 받는 상황인가
정말 박근혜 정부가 외교를 잘해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느라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공하면서 경쟁하는 상황인가. 그 당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윤장관 발언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더욱 명료하게 그의 발언이 사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영유권을 부정하는 중재 재판소 판결로 미중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중일은 아시아패권 경쟁을 하고 있다. 남북은 일촉즉발의 대결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내내 한일 갈등하다 미국 압력으로 일본군 위안부 협상타결 짓고는 최악 상황 벗어나 있지만 정상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국이 중국의 뒤통수를 쳤고 중국이 한국에 대해 어떤 보복을 할지 한국은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행사하게 된 미국은 한국의 약점을 확실히 잡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대일 공세를 멈추지 않던 박대통령의 고집을 꺽은 것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고,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라고 팔을 비튼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다. 미국은 박대통령에게 러브콜이 아니라 압박을 가해왔다. 중국은 중국대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서 사드 배치 말라며 가장 강력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이 사이에서 어쩔줄 모르던 정부는 눈을 딱 감고 오마바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이게 어떻게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더 나은 쪽을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모습인가?
한국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갈등하고 일본과는 그저그런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관계만 좋다. 그나마 한미관계가 좋은 이유는 한국이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한 결과이다. 미중 갈등, 중일 경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적 전략은 바로 조화 균형이다. 지금 그걸 잃은 채 어느 쪽에서 펀치가 날아올지 눈을 지끈 감고 기다리는 상황이다. 북한이 또 무슨 도발을 할지, 중국이 어떤 보복을 할지, 러시아는 어떻게 대응할지 처분만 바라는 게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면 무엇일까?
■ 박대통령도 한 때는 이랬다, 그런데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발간한 <희망의 새 시대 국가안보전략>을 펼쳐 보자.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 정치 안보 분야에서는 북핵과 통일 문제등 한반도의 핵심 사안들에 대한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유라시사 지역 진출을 위해 지역 국가들과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안정, 동북아 평화협력, 유라시아의 번영을 연결시킨다.”
“남북러 3각 협력을 계기로 동북아와 유라시아에서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고 한러 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도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북한 핵문제의 진전 없이 남북관계 발전만을 추구하거나 남북관계의 모든 사안을 핵 문제와 직접 연계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취약 계층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나 순수 사회문화 교류 등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과연 박대통령이 이 국가안보전략 대로 실천하고 있나? 정반대다. 국가안보전략은 거꾸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공약을 어긴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공약은 그래도 대통령 되기 이전의 약속이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상황이 다르다며 뒤집을 명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은 집권 기간이 일정 정도 지나서 작성한 것이다. 그런 것까지 뒤집는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동북아 불안 갈등 구상으로, 유라시아 구상은 유라시아 포기 구상으로 갔다. 남북대화로 시작해서 한반도 평화, 중국과의 협력강화로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고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유라시아로 뻗어나간다는 구상은 박대통령 스스로 깬 것이다. 그 결과, 지금 박근혜 정부는 한국을 한반도 남쪽에 가둬놓아 옴짝달짝 할 수 없는 처지로 만들었다.
■ 한국 외교의 원칙을 포기했다
진보 보수정권을 떠나 탈냉전 이래 25년간 지속되어 왔던 한국의 외교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 한국 외교의 원칙은 북한,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로 동북아 갈등 구도를 완화함으로써 해야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꽤하는 것이다. 동북아는 군사비 규모로 세계 1, 2, 3위, 그리고 9, 10위의 국가들이 중무장한 채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상대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예민한 최첨단 무기를 한반도에 들여온다는 것은 모험중의 모험이다. 예상대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 압력을 가할 때는 그렇게 북한은 비난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왜 먼저 개성공단을 폐쇄했는가? 박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중국 전승절에 참가하는 파격적인 외교를 했으며, 이제는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드라는 카드를 중국에 불쑥 내밀었는가?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행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논리는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로부터 이 모순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중국과의 대립을 선택했다. 북한 비핵화가 우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상 비핵화는 포기하고 제재와 압박만 가하면서 뭔가 하고 있다는 시늉만 내고 실제 문제 해결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 박근혜 외교의 특징
① 가성비를 따질 줄 모른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의 실효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단지 사드가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느냐, 당장 한국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주한미군이 들여오는 것이니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이다. 그런데 사드가 과연 한중간 외교 관계, 경제 협력과 맞바꿀 만한 것인가?
② 절차무시의 제멋대로 정책 결정
정부는 사드에 대해 3불 정책을 유지해왔다. 미국의 요청이 없었고, 협의도 없었으며 결정한 바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드 문제의 공론화를 막는 효과를 냈다. 시민들도 당분간 사드 배치는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지난 2월 한미간 사드문제 논의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거도 정부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구로 일관하며 결정된 바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배치결정을 발표했다. 그러더니 배치 지역은 결정되지 않았다더니 닷새 만에 배치 지역을 발표했다.
③ 박대통령 자체가 안보불안 요인
박대통령은 유연한 줄 알았더니 경직되었고, 경직되었는가 하면 중심을 잃은 채 방황한다. 유연하다는 것은 외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걸 말한다. 경직되었다는 것은 자기 고집대로 하느라 상황을 개선하는 데 실패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경직되거나 중심을 잃거나 둘 중에 하나 뿐이다. 북한의 김정은만으로는 한반도를 이렇게 까지 불안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김정은이 조성한 불안을 키워 놓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쓸 수 없게 하는 존재, 박대통령이 아니라면 한반도 불안이 이렇게 확산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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