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순방, 완벽한 '헛·다·리'
▲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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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방미로 미일 신밀월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외교 부재와 무능에 대해 곳곳에서 따갑게 질타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고래를 흔드는 새우이고,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다. 한국이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한반도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구한말이나 해방 이후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베의 물타기와 유체이탈
지난 4월 22일 아베 총리는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났다. 아베는 2차대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가서도 2차대전에 참전해 희생 당한 미군에 대해 깊은 추모의 뜻을 표현했다. 아베가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2차대전뿐만이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통절하게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거론도 안 했다.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교묘한 물타기와 유체이탈 화법만 사용했다. 아베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라고 해 국가의 책임을 부인했다. 또 "무력분쟁은 늘 여성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며 위안부 문제는 모든 무력분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물타기했다. "위안부의 인신매매는 가슴 아프고 여성들이 인권 학대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한 유체이탈 화법은 아베 역사왜곡의 절정이었다.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회동하고 양국관계 현안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의 회동은 이번이 두번째이며 지난 11월 이후 5개월여 만이다. | |
ⓒ 손병관 |
일본이 1970, 80년대 동아시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아베의 상하원 합동연설은 대동아 공영권을 연상 시키는, 모골이 송연한 발언이었다. 이미 아베는 대동아 공영권의 창시자인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요시다 쇼인은 오키나와, 조선, 만주를 점령하고, 타이완과 필리핀 루손을 노획하자고 주장했던 19세기의 인물이다.
아베는 미국과 중국과 같은 큰 나라를 향해서 그들과 벌인 아시아 태평양전쟁을 반성했을 뿐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방문해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자신의 성인 아베(Abe)가 '에이브'가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자신이 이름을 링컨의 애칭인 '에이브'라고 발음하는 것을 활용하며 자신의 이름에서 링컨을 연상하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링컨 기념관을 방문한 것도 이러한 효과를 노린 연출이다.
한국의 헛다리 외교
하지만 아베의 눈에 한국은 없었다. 반둥회의 참가에 이어서 미국을 방문한 아베의 순방외교는 잘 차려진 것이었다. 그 사이에 한국의 외교는 남미에 집중했다. 물론 대통령의 남미 순방을 소홀히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일 신밀월시대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완벽한 '헛다리 외교'다. 우리는 방관자가 되었다. 외교의 부재와 무능에 대해 질타 받을 만하다.
아베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인 4월 28일에 맞춰서 미국을 순방했다.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범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무임승차 시키는, 역사상 유례 없는 '관대한' 조약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위한 미일 협상에서 일본측 대표는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였다. 요시다는 미국의 덜레스 협상대표에게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참여하면 일본에 대한 재산 청구권과 배상금을 주장하게 되어 일본이 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조약 초안에는 한국도 조약 서명국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한국은 참가할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한국을 배제하고 일본에게는 관대하게 체결된 조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았던 파키스탄도 조약에 초대를 받았다. 심지어 중남미 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들도 참여했다. 오늘날까지 한일 두 나라 사이에 과거사 문제가 청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 원인은 한국이 조약 서명국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본 회귀정책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 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미소의 대결과 중국의 공산화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이 필요했던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산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의해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군국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은 채 재무장의 길을 걸어왔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서 일본을 재무장 시켰다. 현재의 미일 신밀월관계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회귀정책(Pivot to Asia)은 중국 견제를 위해 북한 위협을 강조하면서 일본을 중시하는 '일본 회귀정책'(Pivot to Japan)이다.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제압한다'는 미국의 '이일제중(以日制中)'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2기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2016년은 임기 마지막 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전에 들어가므로 올해는 업적 만들기를 위한 마지막 해다. 오바마는 아시아 회귀 정책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일본과 협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일본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웬디 셔먼 국무차관의 '값싼 박수' 발언이나 에슐린 카터 국방장관이 '미래의 이익' 발언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활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아베 일본 총리는 영악하게도 이같은 오바마 정부의 처지를 직시했다. 일본이 과거 전쟁과 침략의 범죄에 대한 사과 없이 국제사회에 무임승차했던 날인 4월 28일에 맞춰서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동안 아베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집착해 왔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61년이 되는 2013년 4월 28일에 '주권 회복 및 국제사회 복귀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또 4월 28일을 '주권 회복의 날'로 정하고 일왕에 대한 만세도 불렀다.
아베는 그 '주권회복의 날'에 맞춰 미국을 방문하여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4.27), 미일 정상회담 개최(4.28), 역사상 첫 상하의원 합동연설(4.29) 등 거리낌 없는 행보를 했다. 마치 앞으로는 4월 28일을 일본 주권강화의 날로 삼으려는 듯한 기세였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일본 자위대는 미군이 가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가는 것이 보장됐다. 주일미군과 함께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와 주변지역에 진출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이 미군 지원 명목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고, 동중국해를 비롯하여 제3국의 분쟁에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과 미국을 매개로 해서 일본과 함께 글로벌 동맹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한미일 3국 군사력의 공동작전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1951년에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할 때는 2차대전 전범국가 일본에는 자위대가 없었다. 따라서 미일 안보조약에는 일본은 미군에 기지 제공하고 미군은 일본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 발생할 경우에 방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명시됐다.
이후 일본에서 안보투쟁으로 알려진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1960년에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일본 유사시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공동방위를 명시하여 자위대의 군사 역할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이렇게 안보조약 개정을 통해서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을 명시한 사람은 아베가 존경하는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다.
미일 안보조약과 미일 가이드라인
하지만 미일안보조약에는 미군과 자위대의 역할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자위대의 구체적인 역할을 명시한 것이 바로 1978년에 만들어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78)이다. 1997년에는 북한의 핵위협 등 안보환경 변화에 맞춰서 1차 개정(가이드라인97)을 한다. 이번에 다시 2차 개정(가이드라인 15)을 하게 된 것이다.
방위협력 지침은 그 자체로서는 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일본은 괸련 법을 제정해서 뒷받침해왔다. 주변사태법, 자위대법이 관련 법이다. 아베는 가이드라인 개정에 따른 일본법 개정을 미국 의회연설에서 약속했다. 아베는 자위대의 역할을 미일안보조약에 처음으로 명시한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뜻을 계승해서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아베가 미국 의회에서 일본의 국내법 개정을 약속한 것에 대해 일본 의회가 월권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아베는 속전속결로 단행할 기세다.
가이드라인 개정 이후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두나라 정상은 '동맹의 전환'을 강조했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미일동맹이 이제는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베의 위안부 발언에 대한 충분하지 못했다는 미국 내부 언론보도도 있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와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비슷한 입장이 표현됐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베는 패전 70주년을 맞아 연설(8.15)을 통해 일본의 패전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보통국가로 첫 출발을 내디디려고 하고 있다. 그 수순의 하나로 미국 방문이 기획되었고, 아베는 준비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었다.
분단체제를 재생산하는 동아시아 질서
▲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 |
ⓒ 청와대 |
하지만 아베의 미국 방문으로 동아시아는 미일동맹과 중국의 갈등, 긴장, 견제, 협력의 복잡한 양극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양극구조의 한 가운데에는 한반도의 분단이 자리잡고 있다. 아베는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이유로 북한의 위협을 들었다. 현재의 동아시아 상황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미국 중심의 유일 패권이 관철되는 시대였다. 미일동맹과 중국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동아시아 질서는 과거 두차례 남북 정상회담 당시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질서가 분단체제를 강압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관계가 동아시아 대결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남북관계는 통일대박은커녕 남과 북 사이에 골목길 하나 제대로 내기도 힘겨운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외교부관리들이 서울에서 사드 문제를 가지고 다툴 정도로 한반도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정치의 실패는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심판해서 교정하면 된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외교의 실패는 향후 수십년간 우리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해서 징벌 없이 일본 재무장을 용인한 것이 아직까지 한일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미치고 있는 것처럼.
○ 편집ㅣ박순옥 기자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글쓴이는 김창수는 코리아연구원 원장으로서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과 통일맞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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