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작곡자도 놀란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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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행 시인, 호남평화인권사랑방 의장 최종업데이트 2015-05-17 11:14:15 이 기사는 현재 1692건 공유됐습니다.
올해도 보훈처는 정부 주관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하게 했다. 2년 전, 여야가 합의해 5·18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박승춘 보훈처장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거부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무슨 노래이기에 이명박 정권 때부터 줄곧 7년째 거부되고 있을까? 이 노래는 1982년 5월 경에 만들어진 노래로, 그해 2월 영혼결혼식을 올린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김종률이 작곡하고 황석영이 백기완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작사한 노래다.
작곡자 김종률 “군 휴가 중 노래 듣고 놀라”
윤상원 열사는 1980년 5·18민중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계엄군의 흉탄에 목숨을 빼앗긴 분이고, 박기순 열사는 1978년 들불야학 강학(교사)으로서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세상을 떠난 분이다. 두 분 다 들불야학 강학으로서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살다가 가신 분이기에 사후에도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1982년 5월, 황석영씨 집 2층(현 광주문화예술회관 자리)에서 황석영(총연출), 김종률(작곡), 전용호(조연출), 오정묵, 임희숙, 김은경(이상 보컬), 윤만식(징), 김선출(꽹과리), 이훈우, 김선출, 임영희 등이 모였다. 두 분의 영혼결혼식을 노래극(‘넋풀이:빛의 결혼식’)으로 만들어 두 분을 기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를 결집하기 위한 노래극을 만들자는 게 모임의 취지였다.
김종률은 1979년 문화방송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수상한 전남대학생이었다. 그는 이 노래극을 위해 5·18 이후 작곡한 자신의 노래들을 썼다. 다만, 맨 뒤에 모두가 불러야 할 행진곡이 없어 고심 끝에 하루 만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곧바로 거실 유리창을 담요로 가리고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노래극을 녹음했다.
김종률은 5·18민중항쟁을 겪은 뒤 그에 관한 노래들을 작곡했다. 필자의 시 ‘바람과 꽃씨’를 노래로 작곡하기도 했다. 그 노래나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오월 영령들이 앞서 갔지만 산 자들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민주화를 위해 나아가자’는 내용의 서정적인 노래다.
그는 언젠가 필자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노래극을 녹음하고 나서 얼마 뒤 군에 입대해 복무하다 다음해 3월 휴가를 나왔다가 친구를 만나 연세대 앞을 지나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가 들렸단다. 시위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빨리 보급될 줄을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독청년협의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녹음테이프 2천 개를 만들어 전국 사회과학서점과 사회운동단체 등을 통해 삽시간에 보급된 것이다.
1982년 박관현 열사 시위에서 본격적으로 불려
광주에서는 1982년 10월 13일 박관현 열사(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가 옥중 단식투쟁 중 전남대병원에 옮겨졌다 세상을 떠나자 5.18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때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이 본격적으로 불리었다.
그 이후 이 노래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현장은 물론,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생존권 투쟁 현장 어디서나 힘차게 불리어졌다. 비장하면서도 씩씩한 이 노래는 수많은 민중을 민주와 평등의 길로 이끌었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은 오월 영령들이 산 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투지를 북돋았다. 이 노래는 이와 같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5.18을 북한군 특수부대의 소행으로 왜곡하고, 정당한 항쟁을 폭동으로 왜곡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북한영화 배경음악”이라는 억지 논리를 보훈처가 그대로 차용해 ‘님을 위한 행진곡’ 공식 지정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5.18과 민주화운동을 상징해온 노래를 앞장서서 거부하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훈처인가?
일부 종편과 극우세력의 5.18역사왜곡을 규탄하는 현장에서도, 학살책임자 전두환의 집 골목에서도 필자는 목이 쇠도록 이 노래를 불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5.18묘지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헌법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폭력을 자행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로,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으로 민중들은 끝없이 이 노래를 부를 것이다. 제창을 하지 못하게 하면 노래는 더욱 널리 퍼질 것이다. 바람에 더 널리 퍼지는 꽃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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