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갖고 실망 마세요"... 망월동서 만난 5.18과 4.16
▲ 5.18 구묘역 방문한 세월호 가족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 북구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5.18 구묘역)를 방문해 오월 어머니의 위로의 말을 들으며 흐느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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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국가는 절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 2014년 4월 16일, 국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35년 전 국가의 만행과 1년 전 국가의 방기는 5월 어머니와 4월 어머니가 손을 맞잡게 만들었다.
5.18민중항쟁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이 광주를 찾았다. 이날 오전 1시 광주광역시 북구 시립공원묘지(5.18 구묘역)에 도착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정원석(단원고)군의 어머니는 시야를 가득 메운 봉분을 보고 가슴을 쥐어 짰다.
"두려워요. 이렇게 많이, 이렇게 많이…. 이렇게 많은 묘를 보고도 깨닫지 못한 대한민국이 용서가 안 돼요."
이날 구묘역과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을 참배한 4월의 가족들은 "5.18 정신을 계승해 4.16 진실을 밝혀내자"고 다짐했다. 어떤 아버지는 5.18 희생자 묘비에 쌓인 먼지를 연신 닦았고, 어떤 어머니는 묘 앞에 털썩 앉아 눈물을 훔쳤다. 하늘을 향해 든 손을 어색하게나마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5월 어머니 위로에 4월 어머니 눈물
▲ 세월호 가족 손잡은 오월어머니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어머니집 회원인 이귀임씨와 인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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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가족이 5월의 가족을 위로했다. 5월의 가족은 4월의 가족을 보듬었다.
신묘역 앞,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정차웅(단원고)군의 어머니가 흰 소복을 입은 이귀임 오월어머니집 이사의 옷고름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았다. 이 여사는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나도 여러분과 함께 하겄소"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저희도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서로 손을 맞잡았다.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마이크를 잡자, 세월호 유가족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안 전 관장은 이날 오후 1시 30분 구묘역에서 열린 '4.16연대 진실규명다짐대회'에 참석해 "여러분, 제발 아프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중학교 1학년 방광범(1980년 5월 24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멱을 감다 11공수여단 63대대의 무차별 사격으로 사망)이라는 애기가 오늘처럼 이렇게 더워서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저 멀리를 쳐다봤나 봐요. 그런데 그놈들이 쏴 죽인 거예요. 광범이 아빠는 애기 시신을 보고 눈이 뒤집혀 정신병이 와버렸어요.
광범이 엄마가 남편과 자식의 아픔을 안은 채 동전을 모아 넣은 핸드백을 휘두르며 전경들과 싸웠어요. 그렇게 참 열성적으로 하던 광범이 엄마도 긴 세월에 지쳐 버립디다. 지금 광범이네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모라요. 광범이 엄마만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여러분, 어떤 경우라도 아프지 말고, 서로 힘을 주십시오. 밥 안 먹으면 밥 먹으라고 말해주고, 울다 지치면 이제 울지 말고 힘내자고 말해주세요."
▲ 세월호 가족, 5.18 앞두고 광주 방문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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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세월호 가족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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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관장은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고 덧붙이며 흐느꼈다.
"여러분, 그래도 여러분은 정보과 형사가 집 앞을 지키고 있진 않죠? 우린 집 밖으로 나가도 못하게 했어요. 직장에서도 다 쫓겨나고요. 망월동 묘역(구묘역)을 없애려고 전두환·노태우가 가족끼리 싸움도 엄청 붙였어요. 1050만 원 줄테니 묘를 옮겨가라고 해서 묘 27개가 옮겨갔어요. 엄마들은 찬이슬 맞아가며 묘를 지키고 그랬어요. 맨날 울고만 있을 수 없으니 세수하며 울었어요.
여러분, 1년 갖고 실망하고 울지마세요.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인이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이 바른 나라를 세우겠다, 내 자식이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심정으로 포기하지 마세요. 진실이 밝혀지고 물 속의 애기들을 다 건져낼 때까지 저도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다신 이런 고통 없도록..."
▲ 세월호 가족, 국립 5.18 민주묘지 방문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 후 둘러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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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관장의 외침에 유경근 위원장은 "35년 동안 엄청난 고통을 온몸으로 안고, 오히려 누명을 써 가며 이 긴 세월은 인내하고 싸워 온 5월 가족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한다"고 답했다.
"1980년 저희는 초등학생,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몰랐습니다. 당연히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5월 가족들이 싸워올 때 관심을 갖지 않았고, 위로의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4월 가족들께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그렇게 싸워오신 그 모습을 저희가 본받아, 우리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유 위원장은 "다시는 국가에 의해 국민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35년을 고통 속에 살아온,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5월 어머니의 말을 반드시 기억하겠다"며 "더 이상 이런 고통, 이런 억울함, 이런 한을 어떤 분들도 다시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세월호 가족 손잡은 이한열 열사 어머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17일 광주 북구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5.18 구묘역)를 방문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영석 엄마' 권미화씨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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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묘역 참배를 마친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으로 자리를 옮겨, 광주시민대성회, 민주대행진, 전야제에 참여했다. 18일 오전 10시에는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5.18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식 제창 거부에 항의하며 국가보훈처 주관의 신묘역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옛 전남도청 앞에서 따로 기념식을 열기로 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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