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사항조차 제대로 준비 안 한 광주·전남 지자체장, 꼼꼼히 준비한 울산광역시장... 이 대통령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2조 원을 내놓으라' 이런 식은 곤란하다."
지난 25일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를 향해 날을 세웠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땅만 만들면 기업들이 들어온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준비 부족을 꼬집었다.
허공을 향한 질타가 아니었다. 눈 앞에 앉은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직격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끝내, 이 대통령은 두 사람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 대통령,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수차례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쳇바퀴 대답
330만 광주·전남 시민을 대표하는 두 지자체장은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요청하며 지역 발전의 그림을 펼쳤지만, 색채도, 방향도 흐릿했다. 강 시장은 AI(인공지능)와 모빌리티 산업이 융합된 '직주락' 신산업단지를 소개했다. 해당 산단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2조 원의 인프라 개발비를 중앙정부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어떻게 지원해 달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며 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능한 실효적인 방안을 요구했다. "장밋빛 그림을 그려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건 좋은데,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되어야 한다", "산단 부지만 만들면 기업이 입주한다는 전제를 하는 것 같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강 시장은 결국 산단에 입주할 기업이 있다고만 되풀이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태양광 발전 규제의 근거가 되는 전력 계통 포화 문제에 대해 전문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지사님은 조사 안 해보셨나"라고 묻자, "우리 능력이 안 돼서..."라며 말을 흐렸다. 전력 계통 연결 문제, 송전망 투자, 계통 계획 변경과 같은 핵심 의제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된 기초자료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이어 김 지사는 외국 기업이 전력확보가 안 돼서 전남에 입주를 철회했다며 한전이 기존의 전력 계통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건 돈 문제예요? 규제 문제예요?"라고 묻자 "한전 측은 기존 계획을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라며 한전의 방침만을 되풀이했다.
이 대통령이 전력 계통 계획을 바꾸기 힘든 이유로 재차 재정과 규제 중 어느 쪽 문제냐고 물으며 "계획을 바꾸면 되지 않나, (한전은) 왜 안 바꿔줍니까"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계획 변경이 굉장이 어렵다고 하더라"는 같은 대답의 반복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본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국가산단이 폼 난다'는 수준이면 도와주고 싶다가도 마음 접는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지역 발전이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전략과 설계 없이 손 내미는 행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어떻게 지원해달라는지, 무엇이 급한지"를 정리해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능에 가깝다.
실제로 광주와 전남은 지난 수년간 산업단지 조성과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평이 갈린다. "산단 개발만 해 놓으면 기업들이 입주하나, 제 생각에는 아니다"라는 이 대통령에 김 지사는 "전남의 산단 분양률이 98%"라고만 답했다. 이 대통령이 듣고 싶었던 건 단순히 분양률을 넘어 그 산단들이 실제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 고용 창출력, 지속가능성 등에 대한 자체 평가 결과였을 테다.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이 대통령이 "산단 만드는 건 도시공사나 전남도에서 승인해도 되지 않나"라고 지적하자 "지방산단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산단으로 만들어야 폼이 난다고들 한다"라고 답하는 수준으로는 대통령이 도움을 주고 싶다가도 마음을 접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제가 뭐 기대가 너무 컸는지 모르겠는데"
가장 뼈아픈 말은 대통령의 이 한마디였다. 지역을 살릴 해법을 기대하며 간담회를 연 대통령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위성만 설파하고 대안은 없는 자리, 중앙정부에 두루뭉술한 내용만 요구하며 명확한 수치는 말하지 않는 태도에 대통령은 거듭 "뭘 하면 광주나 전남이 먹고 살 수 있는지 그 얘기를 해보시라"고 재촉했다.
그럼에도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는 "우리는 이러저러한 계획을 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구체적인 재정 추계, 민간 투자 유치 전략, 중앙정부 협의 계획, 지역 주민 동의 확보 방식 등은 없었다.
또한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광주·전남 7대 공약을 말하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광주의 경우 이 대통령은 'AI 국가 시범도시 조성'과 '대한민국 대표 모빌리티 도시 조성'을 공약한 바 있다. 'AI·모빌리티 신산단'을 만들겠다는 강 시장의 계획과 정확히 일치함에도 강 시장은 이런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만난 김에 뽕을 뽑으시려고" 김두겸 울산시장과 비교돼... '장밋빛 그림'에 멈추지 않길
한편 지난 20일 이 대통령을 만난 김두겸 울산광역시장은 "AI를 산업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이 울산"이라며 AI 산업 관련해 중앙정부가 울산에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이 "지금 광주에서 AI 특화도시한다고 연구하던데..."라고 광주를 언급하자 "그래봤자 사용하는 건 울산"이라며 "판매 수용처가 있는 울산에 (AI)산업의 밸류체인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제조AI는 확실히 울산이 강점이 있다"며 수긍했다.
이외에도 김 시장이 '수중 데이터센터 단지구축 연구지원'과 '산림청을 산림부로 승격' 그리고 '2028 울산국제정원박람회 지원' 등을 건의하자 이 대통령은 "만난 김에 아주 뽕을 뽑으시려고... 잘하십니다"라고 웃음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국제정원박람회의 예산 규모를 물으며 관심을 보이자, 김 시장이 곧바로 "7천억 원 정도 소요되는데 이중 국비는 현재 8백억 원밖에 책정이 안 됐다"고 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대통령이 야당 소속 김 시장에는 웃음을 보이고 칭찬까지 건넨 반면, 같은 당 소속인 강 시장과 김 지사에게는 야박하게 군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지역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시한 지차제장과 그렇지 못한 지자체장 중 전자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보다 더 빨라야 한다. 현실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주민과 가장 자주 만나며, 가장 구체적인 대안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지역민의 여론, 기업 유치 프로세스, 법적 규제 및 제약, 예산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해 제시하는 것, 그것이 준비된 지자체의 책임이다.
광주·전남 지방정부는, 이제라도 구체적인 전략과 대안을 갖고 중앙정부와 다시 마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대통령의 말대로 장밋빛 그림은 또다시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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