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 에디터
"검찰 수사권은 일부 범죄만 수사하도록 축소됐고, 경찰 수사의 적정성을 검사가 판단하는 수사지휘권은 폐지됐다. 건국 후 70년간 시행돼 온 제도가 변경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수당이 합리적인 입법 과정을 생략한 채 남은 일부 수사권마저 완전히 박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수사에 관한 검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힘 있는 사람은 처벌하지 못하고 힘없는 다수의 국민은 피해 회복이나 인권보장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 봉욱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2022년 참여했던 <이른바 검수완박에 대한 전직 검찰 간부들의 의견> 입장문 중
"수사의 목적은 기소 여부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다. 검사의 수사가 문제라면 똑같은 이유로 경찰의 수사도 문제인데, 이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종국적으로 폐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사의 수사권만을 박탈하면서 경찰 권력을 더욱 비대화시키고 실체적 진실 발견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번 입법이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부당한 수사권 박탈 입법 추진을 반대한다." -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2022년 참여했던 <검수완박에 대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반대한다> 입장문 중
이재명 정부의 '불가역적' 검찰개혁을 실행할 주요 보직인 민정수석과 법무차관에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이진수 전 대검찰청 형사부장이 각각 임명됐지만 다수 국민의 반응은 그리 흔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적극 지지층조차 불만과 우려, 또는 혼란스러운 심정을 SNS 등을 통해 여기저기서 쏟아내고 있다. 이달 초 오광수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기용했을 때보다 부정적 정서가 더 심상치 않게 확산되는 기류다.
무엇보다 봉욱 수석과 이진수 차관 둘 다 단순히 검찰 내부 인사라는 점을 넘어 '검찰개혁에 반대했던 고위 검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봉욱 수석의 경우 불과 3년 전인 2022년 4월 김수남·문무일 전 검찰총장, 김경수 전 고검장, 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 등 전직 검찰 간부 51명과 함께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축소였다)에 대한 반대 입장문을 발표한 사실이 우선 꼽힌다. 그러나 남들이 하자고 해서 수동적으로 집단행동에 묻어간 차원이 아니라, 검찰 수사권 수호 및 강화는 그의 오랜 개인적 소신이었다.
그는 2022년 5월 매일경제에 <검수완박, 글로벌 스탠더드인가>라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유럽 각국과 미국의 검찰 제도를 아전인수격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이 글은 결국 '검수완박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서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형사법 개정이 국제 표준에 맞는지 논란이다. 법안을 밀어붙이는 쪽은 검사는 기소만 하고 수사는 경찰에 맡기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고 운을 뗀 뒤 "경제 범죄, 부패 범죄, 공직자 범죄는 법리가 까다롭고 정치적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보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검찰이 수사하는 추세"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검찰이 수사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는 요지인데, 대한민국 검찰이 그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얼마나 무수히 배반해왔는지에 대한 고찰이나 반성은 일절 없었다. 그는 이 칼럼을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올리면서 "기소와 수사를 분리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전부 또는 일부 박탈하는 형사법 개정이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어 살펴본 글"이라며 "1801년 프랑스 근대검찰이 탄생한 이후 1950년대까지는 검찰의 역할이 주로 기소와 공소유지에 한정되었지만, 20세기 후반 복잡한 금융재정 범죄가 증가한 이후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세계적 추세"라고 재차 강조했다.
봉 수석은 과거 행적에서 다른 문제들도 있다. 지난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 때 그는 '검찰 2인자'인 대검찰청 차장으로서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를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현 조국혁신당 전략위원장)에게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2021년 윤석열 정치검찰에 의해 정적 죽이기용으로 악용됐을 때 봉 수석은 자신의 지시 사실을 철저히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불법적으로 금지했다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법정에서 시종일관 "당시 의사 결정과 지시를 한 사람은 대검 차장검사"라며 "청와대가 아니라 봉욱 차장의 사전 지시로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발송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진술과 자료도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면 봉 수석은 "나는 어떤 지시나 승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거나 "구체적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회피했다.
오랜 수난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규원 조국혁신당 전략위원장은 이번에 페이스북에서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봉욱 대검 차장검사가 이규원에게 김학의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조치를 사전에 지시했는지 여부였다. 봉 수석은 이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봉욱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했다"며 "심지어 출국금지 과정에서 저에게 업무 지시를 했다는 취지로 봉욱이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봉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전 지시 사실을 부인했고, 검찰도 이를 눈감고 지시를 받은 저만 기소했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봉욱이 김앤장에서 호의호식하는 동안, 한 젊은 검사는 4년 반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세월은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적어도 봉욱이 민정수석이라는 중책을 맡으려면 임명장을 받기 전에 저에게 사과는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분이 검찰개혁 과제를 수행할 적임자인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저는 그저 사람답게 사는 법,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은 것"이라고 당시의 거짓말에 대해 지금이라도 사과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한 가지, 봉 수석은 2019년 6월 검찰에서 퇴임한 뒤 겨우 7개월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들어감으로써 지탄을 받은 일도 있었다. 대검 차장 재직 시절 서울중앙지검이 대대적으로 수사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사건 관련 수사 상황을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팀으로부터 상세히 보고받았음에도 검찰을 나온 지 얼마 안 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형사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삼성 내부 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3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인 변호사 업무를 수행해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며 대한변협에 봉 수석에 대한 징계처분을 촉구하는 진정서까지 냈다.
봉 수석은 게다가 2022년 10월부터는 사법 카르텔의 주요 축인 대형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 활동했다. 윤석열 검찰독재정권 시기에 단 한 번도 공개적인 비판 목소리를 낸 적이 없고 심지어 비상계엄 이후 망국의 갈림길을 오가며 수많은 국민이 고통받았던 내란 사태 과정에서도 사회적 발언은 일절 없었다. 성품은 점잖을지 몰라도 냉정하게 평가하면 보신에만 능한 채 법조 기득권의 삶을 한껏 누리며 살아온 인물이니 이래저래 검찰개혁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밖에 없다.
이진수 법무차관 또한 2022년 4월 서울남부지검 1차장검사로서 다른 남부지검 간부들과 함께 '검수완박'에 강력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던 행태가 우선 거론되지만, 이후에도 '검찰주의자'로서 그의 면모는 거듭 확인된다. 윤석열 정권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2024년 5월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발탁됐는데, 그해 7월 이원석 검찰총장이 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등 정치검사 4명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이재명 대표의 형사처벌을 모면하겠다는 방탄 탄핵"이라고 맹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때 옆에 도열해있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 차관은 특히 지난 3월 7일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심우정 검찰총장과 대검 부장단이 '만장일치'로 즉시항고를 하지 않고 그대로 석방해주자는 결론을 내릴 때 회의에 동참했던 멤버다. 당시 회의에는 심 총장과 이진동 대검 차장, 대검 부장을 맡고 있는 검사장급 간부 7명 전원이 참석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수본 측이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란수괴 윤석열을 '탈옥'시키는 데 이 차관 역시 한 패거리로 가담했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던 사실상 내란 동조 행위였다. 이밖에 김건희 명품백 수수 무혐의 처리 과정에서도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침묵 또는 방조했다. 본인이 윤석열 사단의 일원이었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이 차관과 사법연수원 29기 동기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민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내란 종식과 검찰개혁, 친윤 검찰 청산을 완성해야 하는 지금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에 복무한 친윤 검사의 법무부 차관 임명은 우려스럽다. 법무부 차관이 실무적으로 검찰국장을 통솔해 검찰 인사를 할 것이고, 친윤 검찰이 다시 검찰을 장악할 것"이라며 "김민석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후보자에 대한 사건 배당을 하고 수사를 시도한 것처럼 친윤들이 장악한 검찰은 내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이다. 친윤은 청산하면 되는데 그 친윤은 괜찮다며 집에 들이고, 그와 친한 친윤을 또 집에 들이고, 그런 불행 속에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봉욱 수석과 이진수 차관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깊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30일 논평을 내고 "검찰 출신만이 검찰을 잘 알고, 따라서 검찰개혁의 컨트롤타워는 검찰 출신이어야 한다는 신화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검찰과 검찰을 잘 아는 인물들이 주도하는 셀프개혁의 가능성은 이미 소멸했다"며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검찰권 오남용의 과거사에서 자유로우면서, 수사-기소 분리 등의 형사사법 체계 개혁 과제를 불가역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가지고, 검찰과 검찰 네트워크의 집요한 반발과 저항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검찰과 장단기적 이해관계가 얽힌 대형 로펌 소속 검찰 전관에게 검찰개혁을 맡길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박근혜 정부 우병우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의 검찰개혁 법안 추진 시 윤석열 대검의 최선봉에서 국회 대응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면서 "문재인 정부 말기 검찰 수사권 전면 폐지를 시도할 때도, 남부지검 간부 및 평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주도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의 최전선에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물이 법무부의 핵심 요직인 차관에 내정된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진수를 차관에 임명한다면 이후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핵심 요직에 '찐윤' 검사들이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 만약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검찰국장과 검찰과장, 그리고 최대 수사기관인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윤석열 라인으로 채워진다면 이는 검찰의 '되치기'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핵심 요직에 검찰개혁에 부정적이었던 인물들이 포진할 경우,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은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적인 개혁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반민특위 해체 이후 친일 경찰이 공권력을 장악하며 민족의 자주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지연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는 시민사회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시즌2의 서막'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폭주가 이어졌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며, 이재명 정부에서도 동일한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면서 "초기 인사 실패는 개혁의 방향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고, 그로 인한 국민적 실망은 차기 국정과제 수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무 경험'이라는 명분 아래 과거 개혁에 저항했던 인사들을 요직에 앉히는 것은, 단기적인 안정성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검찰개혁의 근본적인 실패를 야기하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고언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 짐을 싸던 검사들이 다시 짐을 풀어놓고 있다 한다. 검찰개혁은 단순히 법안 통과를 넘어 검찰 조직 내부의 자정 노력과 권한 남용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수반되어야 한다"며 "국민 추천제를 한다기에 많은 국민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인사 발표를 바라보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결코 정부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욱 공고히 하고, 검찰의 '되치기' 시도에 단호히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란 과정에서 용감히 검찰과 맞섰던 인물들을 중책에 기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봉욱 수석과 이진수 차관의 께름칙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국민과 지지층은 이재명 대통령의 확고한 검찰개혁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자신이 정치검찰의 최대 피해자인 이 대통령이 심사숙고해서 분명한 복안과 계획을 갖고 인선을 했으리라고 판단하고 일단 두 사람의 행보를 지켜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정해진 임기도 없고 대통령이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이들 정무직 공무원의 운명은 결국 누구보다 투철한 각오를 갖고 검찰개혁에 임하고 있다는 '개과천선'의 신뢰감을 국민에게 얼마나 심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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