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진짜안보] 도널드 트럼프 '전쟁의 길'로 끌어들인 베냐민 네타냐후와 달라야
25.06.24 06:46최종 업데이트 25.06.24 06:46
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은 대화와 평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

▲2023년 8월 30일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한반도 국제포럼'에서 온라인으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온라인 갈무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때 한반도의 전쟁 발발 확률이 낮아지고, (그래서) 북한의 핵 보유가 비핵화보다 낫다."
미국의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가 주최한 '2023 한반도 국제포럼' 기조 강연에서 한 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 보유가 한국의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력 우위 및 미국의 확장억제와 균형을 이뤄 "광범위한 관점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주장이었다.
미어샤이머에 앞서 유사한 진단을 내린 사람도 있었다. 댄 고츠는 트럼프 행정부 1기 국가정보국장 재직 중이었던 2017년 여름에 "북한이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에서 얻은 교훈은 불행하게도 '만약 핵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핵무기가 없다면 그걸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마치 '종북주의자'의 주장처럼 들리는 이러한 진단을 소환한 이유는 이스라엘에 이어 이란을 폭격한 미국의 행동이 미칠 파장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가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하겠다"며 강행한 예방적 공격은 국제 규범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침공을 당한 나라들 가운데 상당수는 핵무기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3년 3월에 미영연합군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며 침공을 강행했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땅'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블레어 정부의 '마음속'에 있었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지만, 8년 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적 개입에 의한 정권 교체를 피하지는 못했다. 1990년대 초반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의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모두 포기했지만,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이어 2022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란이 핵 협상 와중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을 당했다.
이재명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21일(현지시간)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 이후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상황실에 있는 사진을 엑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이란의 핵 시설 세 곳에 대해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수행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조선은 미국의 수법이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 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에 있다며, "지구상에 강권과 전횡이 존재하는 한 자기 힘이 있어야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며 핵무장을 옹호해 왔다. 미국의 이란 공습은 조선의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 분명하다. 조선이 이란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전략 무기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까닭이다.
이 대목에서 조변석개(朝變夕改)식으로 대외정책을 펼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행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주간의 시한을 이란에 주겠다고 해놓고선 하루 만에 "한밤중에 망치"를 이란에 내리쳤다. 이란 정권교체에 나설 뜻이 없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1기 트럼프 때 단단히 당한 조선이 이런 트럼프를 믿고 그가 여러 차례 말한 북미정상회담이나 "관계 재구축"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하고 협력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에게도 크나큰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북미회담 재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2017년과 흡사한 북미대결이 대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고 이재명 정부가 등장한 것은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처럼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을 일삼은 윤석열이 권좌에 있었다면 한반도 정세도 벼랑 끝으로 치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등장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란-이스라엘 삼각관계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트럼프가 타협 가능한 협상, 즉 이란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려는 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이를 저지하려고 한 인물이 바로 네타냐후였다. 또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데에도 네타냐후의 역할이 컸다.
이에 반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북 전단 살포 규제 및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으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에 매진해 왔다. 조선도 이에 호응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크게 안정화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네타냐후가 트럼프를 전쟁으로 끌어들였다면, 이 대통령은 트럼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첫 시험대는 매년 8월에 열리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의 실시 여부이다. 이 훈련을 중단하면 위기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꺼져가는 대화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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