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공기에 봄 내음이 나는 게 두려워요"
[귀농통문]세월호·① 4월16일
지난해 8월 어느 날, 나는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을 만나려고 대구로 갔다. 대구지하철참사가 일어난 날은 2003년 2월 18일. 그로부터 1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희생자 대책위원회' 사무실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듯 조금은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윤석기 대표와 황순오 씨가 나를 맞아주었다. 인사를 건네고,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숨 쉬는 것조차 일순 멈춰버렸다. 그곳에는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가득 담긴 커다란 현수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192명.
대구지하철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숫자다. 그 '숫자'가 그 순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세월호 이전의 참사에서 나는 한 번도 희생자 '개인'을 기억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대형 참사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만큼이나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던 지난 참사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겪었고 또 어떻게 잊어버리게 되었는가. 아마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의문이었을 것이다. 그 대답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춘천 산사태…. 뉴스를 가득 채웠던 참사들을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그때 뉴스를 꽤나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분노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정 사진들 앞에 선 나는 자신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미 '아는 것'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게 되었나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의 일원으로, 나는 지난해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에 함께했다. 그 기록은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펴냄)이라는 책으로 올해 초 세상과 만났다. '금요일'은 화요일에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생각해본다. 기록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어떤 사건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가슴아파하면서도 조금씩 관심의 거리를 떨어뜨려갔을지 모른다. 일상의 관성에 이겨보려고 해도 삶이 주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며, 혹은 나날이 쏟아지는 새로운 사건에 짓눌려 '아이고, 힘들다' 하며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뜻에서 세월호 참사 기록에 참여한 것은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펴낸 뒤 작가기록단은 책에 실린 열세 분의 부모님들과 안산에서 만남을 가졌다. 책을 내기 전과 후의 생각의 변화 그리고 이 책을 받아든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날 함께 자리해준 2학년 4반 고 김동혁 군(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쓸 때마다 '고'자를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 늘 망설인다. 아직 아이의 '사망 신고'를 하지 못한 부모들이 많다.)의 엄마 김성실 씨는 책을 읽고 난 소감을 묻는 말에, 책에 실린 부모들이 "달리 보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세희 아빠하고는 어디 발언할 때만 같이 한 번씩 가서 '진상을 규명해야 되고…' 이런 얘기만 막연하게 들었지 세희에 대해서 들은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건우 엄마도 우리 반이긴 하지만 워낙에 얌전하시고 대화를 잘 안 하시니까 건우에 대해서도 나는 잘 몰랐어. 그냥 '건우라는 아이가 있고 그 엄마가 아프다'고만. 근데 그 정도인지는 몰랐지.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세희 아빠를 봤을 때는, 그전에는 그냥 먼발치서 이웃집에 창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봤다면 이제는 한방 안에 같이 있는 느낌. '저 사람 마음도 내 맘하고 똑같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이 사람의 눈빛을 보고 책을 읽었을 때 저 사람의 무너지는 마음이 느껴졌던 게 보이는 거야."
7반 고 이준우 학생의 엄마 장순복 씨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겪었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또 같이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도 다 똑같은 마음인데 그걸 이번 기회에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들이 더 숨 쉬는 느낌도 나고. 어제는 한 분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우리 아이는 말이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달라 보인다는 거예요. 책을 읽고 우리 아이에 대해서 다시 소중하게 느꼈다고 감사하다고."
동혁 엄마와 준우 엄마의 말에는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대할 때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이 말은 분명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참 추상적이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구체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그때 '안다'는 것은 단지 사고의 '직접' 원인을 밝히는 것에 한정되지 않으며, '창 밖'에서 고통을 바라보는 데 머무는 것 또한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집안 풍경도 살피고, 얼굴도 마주보고, 손때 묻은 물건도 펼쳐보며 이야기도 나누어야 한다. 그 안의 사람이 '풍경'이 아닌 '숨 쉬는' 존재가 되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이때 우리의 '기억'이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굉장히 의식적인 행위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남기고 기억할 것인가
기록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 '무엇'에 대해 고민하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생생히 살려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목격자이자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보여준 온갖 병폐와 부조리에 대한 생생한 증언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특히 유가족들의 참사 이전의 삶에 주목했다. 그것은 단지 희생된 아이들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가족들은 균질한 존재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 304명의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아닌 304개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하듯이 희생된 이의 가족과 이웃, 친구들의 고통도 한 덩어리가 아니다. 저마다의 삶의 맥락을 살펴볼 때만이 이들이 진정으로 이 참사로 '무엇을 빼앗긴 것인지'가 드러난다.
나는 한편으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두려워하거나 극복하는 것, 두 가지의 서사만이 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제 한 인간이 고통에 반응하고 그것을 겪어내는 과정은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속에 오래 있어 시신이 훼손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본 사람은 본 사람대로, 안 본 사람은 안 본 대로 후회했다. 그런가 하면 얼굴이 없어진 아이 모습을 확인하고 무너진 마음을 '살아 있을 때 좋았던 모습만 생각하라고 안 보여주고 갔구나' 하고 다잡는 사람도 있다. 그중 어떤 것도 더 낫거나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그저 저마다의 최선이 있을 뿐이다. 하나하나의 슬픔을 마주하면서 내가 깨닫게 되는 것은, 그 모든 슬픔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사실이다.
참사를 낳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개인의 삶에서 해야 할 실천부터 구조적인 문제까지 아우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단원고 2학년 5반 오준영 학생 어머니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서울 북콘서트'에서 "공기에 벌써 봄 냄새가 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창 밖'이 우리는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지만, 고통의 '집안'에서 유가족들은 도저히 흩어지지 않는 기억에 붙잡혀 신음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슬픔의 위로는 '진상 규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상처를 지우거나 유가족들의 일상을 참사 이전으로 복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유가족들이 짊어진 기억의 무게를 나누어 질 수는 있다. 희생자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사회적 기억이 될 때, 유가족들의 눈물이 우리를 마주보고 흐를 때,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며 함께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신호성 군이 쓴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세월호 참사와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통렬한 은유가 살아 있는 시다.
나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9월 현재 71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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