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다.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추모할지 세월호 1주기 며칠 전까지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당일 하루 정도는 애통해 하는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 그리고 슬픔에 잠긴 국민들과 함께할 줄 알았다. 적어도 1주기 이 날 만큼은 대통령답게 행동할 줄 알았다.
간 보고 떠보다 여론 악화되자…
곳곳에서 추모행사 준비가 한창인데도 청와대는 함구하거나 모호한 화법으로 피해갔다. 세월호 1주기 그날 대통령 일정이 무어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여러 방안을 갖고 검토 중이며 많은 건의도 듣고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이렇게 버티다가 지난 10일에야 드디어 입을 열었다. 1주기 당일부터 12일 동안 남미 4개국을 순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놀랐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국가적 참사 1주기 당일 해외순방이라니. 청와대가 ‘추모 못지않게 외교도 중요하다’며 불가피성을 역설했지만 유족들은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여론도 들끓었다. 그러자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1주기 행사 일정 고려하고 있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간보기’를 하다가 여론이 악화되니 슬쩍 말을 바꾼 것이다.
정부가 주관하는 ‘안전다짐대회’에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예기도 나왔지만 이에 대한 여론 역시 매우 비판적이었다. 1주기 전날 오전까지도 대통령 일정은 베일에 쌓여있었다. 비판여론에 밀린 청와대가 15일 오후가 돼서야 주요 추모행사에 해당 장관들을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 모종의 추모행사를 가질 거라는 얘기를 흘렸다.
유족은 대통령 찾고, 대통령은 유족 피하고
‘추모 대신 해외순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간보고 떠보고 찔러보던 청와대가 어쩔 수 없이 ‘탑승 전 추모’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때부터 유족들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1,2부로 나뉘어 진행된 ‘숨바꼭질 퍼포먼스’. 첫 번째 숨바꼭질의 술래는 유족들이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을 피했고, 유족들은 대통령을 찾았다. 유족들은 ‘선체 인양과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약속해 달라고 요구하며 안산 합동분향소에 모여 박 대통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유족들을 피해 팽목항으로 향했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언론에 엠바고를 걸고 극비리에 진도행 헬기를 탔다. 팽목항은 안산 못지않게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추모하기에 적절한 장소일 뿐 아니라, 유족들과의 대면도 피할 수도 있어 청와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두 번째 숨바꼭질은 팽목항에서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술래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을 피했고, 대통령은 가족들을 찾았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 시행령과 선체 인양 늑장 검토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떠난 상태였다. 분향소 주변에는 ‘대통령령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대형 펼침막과 ‘박근혜는 물러나라’ ‘분향소에는 들어갈 수 없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팽목항에서 벌어진 두 번째 숨바꼭질
청와대의 비밀작전보다 세월호 가족들의 판단이 한수 위였다. 대통령 방문을 예상했던 세월호 가족들은 “진정성 없는 추모에 배경 그림이나 돼 줄 수는 없다”며 박 대통령 당도 직전인 당일 오전 팽목항 임시 철수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특별법 시행령 폐지”를 외치며 항의하는 시민들을 제치고 분향소로 향한 박 대통령은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분향에 실패한 채 방파제 부근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읽었다. 주변에는 미리 와 있던 해수부장관, 함께 내려온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경호를 위해 겹겹이 둘러싼 전경들뿐이었다. 유족도 떠나고, 국민도 떠난 곳에서 홀로 추모사를 읽은 셈이다.
노란 리본조차 달지 않은 차림이었다. 배우 오드리 햅번 등 외국인들도 리본을 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해외 프로구단까지 추모 성명을 내는데도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던 박 대통령의 옷엔 노란 리본이 없었다. 왜 달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들어 있었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시행령 폐기 얘기는 없었다.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진상규명을 막은 시행령을 밀어붙이면서 진상규명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입에 올린다. 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저러는 걸까?
유족도 떠나고 민심도 떠나고… 대통령 맞나?
2002년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1주기 하루 동안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할애했다. 당일 아침엔 추모예배와 국방부 추모행사를 가졌고 이어서 비행기가 추락했던 펜실베니아 생크스빌에서 유족들을 만났다. 오후엔 참사 현장을 방문했으며, 밤 9시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뉴욕에서 대국민 연설을 했다.
1주기 그날 비행기에 오른 박 대통령. 불가피한 일정 때문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첫 행선지인 콜롬비아 정부에 세월호 1주기임을 내세워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는 세계인이 함께 애도한 사건이다. 얼마든지 일정 조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국민이 본 것은 황당한 숨바꼭질이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세월호 가족들을 홀대하고 적대시한 결과다. 참 못난 정부다. 국민에게 이런 꼴불견이나 감상하라고 강요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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