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최장수 국경일인 개천절... 8·15 건국절 제정 논란과 맞물려 다시 돌아봐야
14.10.03 09:20l최종 업데이트 14.10.03 09:20l정수현(shjung38)
시절이 하 수상하다.
지나간 역사책의 페이지에나 있을 법한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치며 부활을 알린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해야 한다는 이가 국사편찬위원장에 앉았다. 제주 4·3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한 이는 한국학대학원장에 올랐다. 친일 독재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대안교과서'를 만든 사람이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자리했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총리 후보 낙마자의 연설이 감동적이었다는 이는 KBS 이사장이 됐다.
모두 2013년과 2014년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역사의 퇴행이다.
천시받는 개천절... 상해임시정부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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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절 좀 축하해줘" 지난 9월 22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국학원과 인성회복국민운동본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등 33개 시민단체가 개최한 '개천절 경축행사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 회원들이 대통령의 참석 등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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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는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 발언이라 믿을 만한 신빙성은 없지만 되새겨볼 만하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는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식민지 앞잡이의 논리로 이 땅에서 100년을 호의호식한 일제의 아류는 당당하게 그들의 본 모습을 커밍아웃했다.
10월에 들어서면 가슴 한편이 시리다. 가을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10월 3일 개천절을 보면 식민교육의 참혹한 잔재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단군왕검이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다. 이날을 마음으로부터 기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쉴 수 있는 공휴일 그 이상의 국경일로 의미를 되새겨 보는 사람 얼마나 될까.
정부 행사도 찬밥이다. 본래 국경일에는 대통령이 참석하고 그 날의 의미에 맞는 훈장도 수여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지금은 대통령 참석은 고사하고 국무총리가 대독하던 대통령 경축사마저 2011년부터는 국무총리 경축사로 격하됐다. 공휴일을 줄이자는 사람들은, "개천절까지 놀아야겠냐"며 타박하기 일쑤다.
일제 식민사학이 역사 왜곡의 첫 번째 타깃으로 정조준한 것이 고조선 역사의 '신화화'였고, 결국 명중했다. 매국에 정신적 기원을 두고 있는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친일부역세력 청산 실패를 뼈아파하는 진보의 영역에서조차도 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100년 전 이 땅에 식민교육을 심은 일제의 '백년지대계'에 소름이 돋는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후 그 해 음력 10월 3월 국무원 주재로 '건국기원절'이라는 명칭으로 기념행사가 열렸다. 10월 상달에 제천의식이 행해졌던 역사적 전통이 참고가 되었으리라.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상해는 물론이고 독립투사들이 주로 활동하던 만주, 연해주 일대를 비롯하여 국내에서도 기념행사가 매년 이어졌다. 이것이 해방 후 양력으로 날짜가 고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 중 가장 오래된 개천절의 약력이다.
건국절 제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천절 되새겨야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지 않으니, 엉뚱한 '건국절'이 탄생하려 한다. 이명부 정부 출범 즈음부터 불기 시작한 8·15 건국절 제정 추진은 지난 9월 2일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65명의 국회의원의 공동 법안 발의로 정점을 찍었다. 만약 이번 정기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는 내년부터 법적으로 8월 15일을 광복절과 건국절로 함께 기념하게 된다. 아직 온전한 해방이라 할 수 없는 분단 상태에서 정부수립일을 굳이 건국절로까지 격상시키려는 자들의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8·15 건국절 제정은 유구한 반만년 역사의 정통과 독립투쟁의 가치를 폄하하고, 친일독재 미화를 통해 1948년 이후 남한 지배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반민족적·반민주적 폭거이다. 국책연구기관, 방송통신심의기관, 공영방송을 장악한 그들이 2015년 해방 70주년을 어떤 분위기로 만들어 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내외적인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해 민족의 혼이 깨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천절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기념이 필요하다. 국수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심각해지자는 것도 아니다. 그 시절 어떤 국가도 민족도 갖지 못했던 생명존중에 대한 심오한 철학, 홍익인간의 정신을 제대로 조명해보자는 것이다.
개천절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떠한가. 북한에서도 개천절을 기념하고 남과 북이 이견 없이 함께 공유하고 경축할 수 있는 날인만큼, 통일을 향한 양국 교류의 기폭제로 삼으면 어떠한가.
인본주의 정신을 표방한 날인만큼 소외되어 힘겨워하는 이웃, 편견으로 상처받는 다문화 가정,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각지의 재외동포들을 향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떠한가.
그리고 휴일 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족의 얼과 연관된 국경일인 3일 개천절과 9일 한글날 사이의 일 주일 정도를 축제의 기간으로 삼아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는 즐거운 상상은 어떠한가.
시절이 하 수상하다. 시대를 역행하고 정의와 상식을 뒤덮는 '적폐'는 걷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광명의 날'로서 우리 사회 모두가 밝아지기를 바라며 단기 4347년의 개천절을 예전과는 다른 관심으로 맞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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