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을 푸른 기와집에 살게 해준 그 남자들에게만 환하게 웃어줬다
임병도 | 2014-10-30 08:54: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밤새 기다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퇴근길을 서두른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떠날 수가 없었다. 내일 그녀를 꼭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핫팩 하나로 언 손을 녹이려고 했다. 추운 날씨보다 과연 그녀가 내일 우리를 향해 무슨 말을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온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경찰들은 이미 국회 본관 앞에서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우리 아이도 살았다면 몇 년 후에는 경찰이나 군인이 됐을 텐데… 참 고생이 많다. 그래도 내일은 우리가 그녀를 볼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경찰이 아니라 그녀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오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추위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그녀가 올 시간이 다가왔다. 문 앞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젯밤 경찰보다 더 많이 등장했다. 괜찮다. 그녀가 우릴 향해 다가오리라 믿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밤새 추위에 언 몸을 안아주면서 그녀가 웃어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우리 국민이 겪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세요’
‘당신이 울면서 했던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켜주세요’
그녀가 우리 말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또 믿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말을 조리 있게 할지 되새기고 되새겼다.
그가 왔다.
무릎을 꿇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릎을 꿇는 일조차 창피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 제발, 제발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가 도와준다면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는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선거만 도와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우리는 믿었다. 저렇게 힘 있는 사람이 팻말을 들고 거리에서 약속했는데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그가 떠났다.
차 문을 매몰차게 닫고 떠난 그의 차를 보면서 눈을 감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힘없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나중에라도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볼지 막막했다.
그녀가 왔다.
‘오 마이 갓’ 그녀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그녀를 만나야 하는데, 그녀는 왜 우릴 보지 않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손을 잡아주던 그녀가 맞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분명 그녀가 맞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냥 우릴 지나쳤다.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끝나고 나올 때 오려고 지나쳤나 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그녀가 나온다.
이제 정말 우리를 봐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쳤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그저 돈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하고, 똑같은 아픔이 이 땅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가 웃어준 사람은 우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푸른 기와집에 살게 해준 그 남자들에게만 환하게 웃어줬다.
그녀가 떠났다.
힘이 풀렸다. 풀썩 주저 앉았다. 밤새 추위에 떨면서도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버텼는데…
결국, 벽에 기대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으리라 약속했었다.
아니 더는 눈물이 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눈물이 자꾸 났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힘 있고, 돈 있고, 출세한 사람들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불쌍했다.
왜 나는 금배지를 달지 못하고, 푸른 기와집에서 살지 못했지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꿈에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무어라 말하지
너희가 태어난 이 땅의 지도자가 너희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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