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사실확인노력 안 했다”… 전직 방통위원 책 “궁정동 드나는 여인 100명도 넘어”도 거짓?
입력 : 2014-10-30 17:56:56 노출 : 2014.10.31 10:45:35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고발장과 검찰 수사가 빈발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동생 박지만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혹을 제기했던 일반인들의 처벌이 속전속결로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기소당한 뒤 유죄확정 판결(대법원)을 받았거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차영민 부장판사)는 지난 7월 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도 지난 5월 16일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고창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확정 판결했다.
이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대선을 석달 앞둔 2012년 9월 미주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 실린 ‘[김현철 칼럼] 박정희의 승은 입은 200여 여인들’이라는 글을 퍼와 다음 아고라(박정규)와 트위터(고창규, 트위터 닉네임 ‘노루귀’)에 옮겼다는 것이다. 원로언론인으로 알려진 김현철씨가 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부녀를 포함한 여성 200여 명을 일회용품 내지 소모품으로 취급해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문제의 여성은 김삼화라는 영화배우로 갓 결혼해 애도 있는 여성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옮긴 고씨와 박씨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아버지의 이런 행위에 대해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재판부는 이 글의 내용과 이 글을 퍼나른 이들의 행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어떤 이유로 사실무근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 스스로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고창규씨와 박정규씨는 법정에 △원글 작성자인 김현철씨로부터 본래 한겨레저널에 기고한 칼럼 △‘김삼화가 박정희와의 관계 자세히 고백. 노이로제 걸려있어’라고 기재된 김현철의 메모 △김현철씨가 직접 문제의 여성에 대해 진술한 게 담긴 동영상 △김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작성한 사실확인서 △김삼화에 대한 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화면 출력 자료 등을 제출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연합뉴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제의 여성이 언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불려갔는지, 언제 미국으로 이민가게 됐는지 구체적 일시가 나타나 있지 않고, 메모에도 문제 여성과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은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동영상에서도 김씨가 문제여성에 대해 프라이버시 때문에 인적사항 공개를 못한다고 진술할 뿐 칼럼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실확인서 역시 김삼화의 실명이 직접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위 동영상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며 “이 자료들 외에 별도의 구체성 있는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있지 않는 이상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고창규씨와 박정규씨가 모두 의혹의 진실여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플로리다 지역 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만 게재됐을 뿐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어 칼럼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충분히 품을 만한 점이 있었는데도 사실확인에 소홀했다며 미필적 허위사실 공표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이번 판결은 두 피고인이 박정희의 여인들의 실체에 대해 사실확인 노력을 한 뒤 그런 언론의 칼럼도 옮겨야 한다는 취지를 보인다.
이를 두고 피고들은 정치재판이라고 반발하며 재심을 청구하거나 미국 법원을 통해 재판의 틀을 바꾸겠다며 반발했다.
고창규씨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법원은 글쓴이인 김현철씨의 자료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권력 눈치보기식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고씨는 “정권이 바뀌면 무조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며 “박정희가 성문란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 얘기를 한 사람에게 ‘이것을 봤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썩은 재판부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규씨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한 질문은 ‘당신이 직접 봤느냐’는 것이었다”며 “언론 보도 스크랩 조차 위조로 본다면 언론자유도 침해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더구나 해당 언론에 대해서는 정작 조치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김현철씨가 미국 시민권자이며 김현철씨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미국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검찰이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테니 그런 글을 옮긴 사람만 처벌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박씨는 특히 “칼럼이 허위사실이라면, 정확히 어느 대목이 거짓인지 짚어야 하나 모조리 다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허위사실이라는 증거를 밝히지 못한채 허위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재판 아니겠느냐. 아부하기 위한 재판”이라고 성토했다.
재판부의 판단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인들이 정말 허위의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김충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22년 전인 1992년 집필한 저서 <남산의 부장들>에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연예인 여성들과 몰래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는 증언이 나와있다.
▲ 지난 2012년 11월 27일 출간된 '남산의 부장들' 개정증보판.
김 전 위원은 저서에서 1980년 1월 25일 육군고등군법회의 김재규(8대 중앙정보부장) 재판에서 박선호(80년 5월 사형집행)가 증언한 내용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궁정동 식당을 가리켜 어느 검찰관이 ‘그 집은 사람 죽이는 곳이냐’고 질문아닌 질문을 했다. 그 집은 그런 집이 아니다. 대통령이 오시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연예인이 드나든다. 그 명단을 밝히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달이면 열 번이나 그곳에 왔다”
김 전 위원은 “당시 박선호는 예비역 대령으로 중정 의전과장이나 역할은 각하를 위한 채홍사였다”며 “또한 김재규는 80년 1월 15일 강신옥 변호사에게 박정희 사생활 몇가지를 얘기했다”고 다음과 같이 전했다.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100명 정도 된다. 임신해서 낙태한 사람도 있고…. 징징 울고 불응하겠다고 해서 배우 K모, H모 양은 오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간호여성이 임신해서 애먹기도 하고…”
김 전 위원은 박선호에 대한 변호인 접견 메모 일부라며 이렇게 제시하기도 했다.
“부장님(김재규)에게 도저히 더 하기 힘드니 그만 두겠다고 했다. (다녀간) 여자들에게도 보안상(좋지 않으니) 물러나야겠다고 했다. 1년 동안 하느라고 했습니다마는 더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장님은 ‘궁정동 일을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리면서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당일에는 가수 심수봉씨가 현장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고발 또는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사건도 모두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벌금형이 확정된 고창규는 인터뷰에서 “이 정권의 간보기는 끝났다. 1년차 2년차 들어와 인터넷 감시와 탄압이 상시화하는 것을 넘어 이젠 공인들이나 외신기자도 고발과 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들까지 고발당하면 일반인은 글을 못쓴다. 숨죽이고 몇 년 지나고 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위축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씨는 “이는 온라인 상에서의 ‘공안’ 탄압으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온라인에서 벌어진 일을 오프로 끌어내 처벌하는 것이 독재정권보다 더 심하다”고 평가했다.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인 박정규씨는 “대통령을 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이 세상에 욕 안먹는 대통령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하니 당연히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 욕한다고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수사라고밖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그런데 법원마저 그에 영합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며 “결국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조현호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mediacho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