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면권력> 펴낸 한성훈 교수... "죽음 해석 놓고 산 사람들이 벌이는 싸움"
14.10.19 09:49l최종 업데이트 14.10.19 09:49l김성수(wad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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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훈 연세대 연구교수가 민간인 사찰의 증거인 1950년 인천경찰서에서 작성한 '요시찰인명부'를 들어보이고 있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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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훈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필자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에 근무할 때였다. 그는 의문사위에서 허원근 일병 군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고, 나는 그가 조사한 보고서를 영어로 번역해 주한 외국 특파원들과 공관원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그 후 지난 2007년 그를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다시 만났다. 진실위에서 한 교수는 보도연맹사건을 조사하던 조사 팀장이었고 나는 이번에도 그가 조사한 보도연맹사건을 영어로 번역해서 주한 외국 특파원들과 공관원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한 교수와 두 직장에서 가까이 일하면서 난 그가 '자료 왕'라고 많이 느꼈다. 그는 아무리 사소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기록도 꼬박꼬박 수집해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당시 나는 "한 박사가 언젠가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책을 몇 권 쓰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진실위 활동이 2010년 종료된 지 2년 만인 지난 2012년 그는 <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을 발간했다. 그리고 이어서 지난 9월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을 펴냈다.
책 <가면권력>에서 한 교수는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사건과 거창 민간인학살 사건을 통해 민간인 학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한 교수는 과거 이승만 정권기 민간인 학살사건을 통해 지금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거 민간인 학살사건과 지금의 세월호 사건은 둘 다 국가공권력이 불법하게 집행한 비극적 참사다.
비극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한 교수는 저서 <가면권력>을 통해 고발했다. 지난 며칠간 책 <가면권력>에 관해 한성훈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눴다. 아래는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정권이 왜 자국민을 학살했다고 보나? 특히 수구 인사 중에는 이 시기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살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민군이 서울·경기 지역을 점령하자 보도연맹원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가 그들을 총살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민군이 진주하면 이들이 북한 편에 설 것이라고 예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학살을 감행한 것은 이들의 '구체적인 불법 행위'때문이 아니고, 보도연맹원과 '요시찰인' 등 '좌익'을 유사시에 살해할 수 있다는 논리와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전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거창 사건에서 주민은 적으로 간주됐고, 물리적 가해를 실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민 유격대를 도운 '이적 분자'로 취급당했다. 대규모 살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보도연맹원이나 작전 지역 내 주민에게 씌우는 것은 책임과 비난을 떠넘기는 것이다. 가해자의 범죄를 피해자의 책임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정부 고위층과 군경지휘관들은 학살을 정당화했다. 학살당한 희생자는 전선이나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의되는 '좌익'은 상대방을 '적'으로 둔갑시키는 것과 같다. '좌익'이나 '보도연맹원', '부역자', '이적분자'와 같이 '특정집단'으로 분류해서 이들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오늘날 '종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느슨한 곳에서 인권은 쉽게 침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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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지난 7월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열린 가운데10월 항쟁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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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가해자와 희생자, 생존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가해자는 정부 최고위층부터 군대와 경찰, CIC(방첩대, 현재 기무사) 등의 책임자, 지휘관과 병사, 경찰들이 있겠다. 최고 지도자부터 살인을 수행한 하급자와 이를 지켜본 상급자는 모두 끔찍한 살인의 공범자다.
살해 명령을 내리는 이들은 '탁상 위의 살인자'다. 대량 학살은 사회의 감시나 공동체 도덕과 전혀 무관하게 일어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는데, 권력이 강압적이고 민주주의가 느슨한 곳에서 인권은 쉽게 침해된다. 가해자는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즉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취에서 살인 행위를 증폭할 수 있다.
희생자는 국민보도연맹원과 경찰의 감시대상인 요시찰인 등 정치적 반대자들 그리고 거창 사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과거 좌익이나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중에 그렇게 학살 당해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생존자는 학살 현장에서 살아난 보도연맹원과 그 목격자인데, 거창 사건도 신원초등학교와 박산 골짜기에서 총에 맞거나 달아나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잔혹 행위를 밝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줬다. 삶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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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권력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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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꽤 인상적인데 왜 <가면권력>인가?
"이 말은 법률을 비판적으로 말할 때 사용한다. <가면권력>은 많은 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와 정치, 권력을 문제 삼고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다룬다. 정치의 핵심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가면은 많은 이의 참혹한 죽음을 위장하는 것이고 최고위층과 관료들의 잘못으로 인한 죽음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치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내가 사유하는 죽음은 결국 산 사람들의 해석 속에 담긴 죽음, "죽은 자의 삶과 산 자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희생자가 '죽음'으로써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죽음은 관계 맺고 있다. 때문에 '산 사람들이 해석하는 죽음'이라는 의미다. 전쟁 당시의 학살과 마찬가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 비극을 보자. 결국 학살이나 세월호 사건은 산 사람들이 이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면'은 이 죽음을 가리고 있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 지난 1999년부터 민간인학살을 접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민단체인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를 조직했는데,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사람들의 '말'과 '삶' 때문이다. 나는 전쟁 이후 50년이 지난 1999년에 군대와 경찰이 수많은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한 시민일 뿐이다. 생존자들의 말이 나를 이끌었고, 그들이 살아온 삶이 나를 재촉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게 공동체고 사회다. 제 3자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정치고 국가의 역할이다.
나는 피해자 가족과 목격자들을 만나면서 이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족 입장에서 억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국가가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이웃이 그냥 끌려가 죽은 것이다. 이걸 한 번 상상해 보라. 우리 중에 누구라도 그렇게 죽을 수 있고, 또 우리 중에 누구라도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상관의 '명령'으로 학살을 정당화
- "우리 중에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섬뜩하다. 이 부분은 책에서 '이승만 정권기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 부분과 비슷한데 그 이유를 자세히 밝혀 달라.
"사람들은 학살이 1950년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많은 죽음을 야기했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살을 수행한 기구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들이다. 군대와 경찰, 기무사 등은 평시에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부분적 기능을 각각 수행한다.
그런데 학살을 단행한 것이 이들 조직의 별다른 특징이기보다는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관료 체제는 한국 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사회조직을 장악하고 체계화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언제든지 가해 기관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서와 논리가 우리 사회에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나 경찰이 살인 명령을 받으면 이것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증언을 들어보면 가해자는 스스로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상관의 '명령'으로 학살을 정당화한다. 관료제에서 '명령'이라는 '말'은 사실상 '법'과 같은 의미다. 병사나 경찰은 자신이 생각해도 '불법한 명령'이지만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비극은 과거에 일어난 집단살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윤리와 사회 체계에서 되풀이되는 데 있다."
- 책에서 "한국에서 '좌익'은 사상의 문제라기보다 잘못되거나 나쁜 것에 관한 상징"이라고 했는데,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좌·우파가 균형을 취하면서 공존해있다. 우리 사회나 정치권에서 '극단적 좌익 혐오증', 즉 '광신적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민간인 학살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와 국가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다. 희생자는 '내부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법의 보호에서 제외된 대상이었다. 국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집단의 권리를 빼앗는 경우는 사람을 이념적으로 구분할 때 쉽게 발생한다. '좌익'이라고 하면 시민·국민으로서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공권력을 적법하게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논리가 뒤따른다. 가장 손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이념'이라는 진공 상태의 블랙홀이다. 이런 파국적인 편 가르기는 논리와 사실이 필요 없고, 오직 자기 확신과 주장만 있으면 가능하다."
집단 살인을 국가 범죄로 다루지 않은 이유
-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했는데, 위원회의 보고서와 권고사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권침해 관행을 개선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거 청산 활동이 수구 세력의 논리대로 '사회분열을 초래했고 시간 낭비'를 한 것일까?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집단 살인은 개별 사건이나 가해자 개인 행위로 취급됐을 뿐 정치세력의 조직적인 국가 범죄로 다뤄지지 않았다. 몇몇 군경이 개별 살인 사건으로 재판에 부쳐지기도 했지만, 과연 이들이 개인적 동기로 학살을 저질렀을까? 그게 아닌데도 집단 살인에 대한 재판은 가해자 행위를 '개인적 동기'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시간 낭비라고 일컫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참혹한 죽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인간은 고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학살이 우리 인간성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공동체의 세계관은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관료제의 위계와 서열은 공무원을 단지 정치 권력의 대리자로 만들었다.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국제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진실을 조사한 후 국회와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각종 권고사항을 이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중대한 인권 침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과거와 같은 일들이 반복될 여지가 있는 제도를 고치지 않고 있다. 시민이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정치 세력으로부터 비상시에 또다시 학살당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정부는 '세계 속의 한국'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이나 피해자 명예회복에 대해서 정부는 국제인권조약의 국내 적용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권의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과거 청산 담론은 소수의 시민 활동가와 인권 변호사, 학자에 의해 방향이 설정됐고, 제도화 과정을 거쳐 일단 마무리 됐다. 일련의 과정과 결과는 상처를 흙으로 슬쩍 덮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인권이 쉽게 침해당하고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량 학살과 세월호 사건의 요점은 공권력이 불법하게 집행됐다는 것과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의 분절화된 시스템 때문에 말미암은 행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민주주의 원리를 확장하고 폭넓게 적용하기 위해 제도적 규범을 바꿔야 한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체계를 일관된 국제 인권법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관료 문화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성훈 교수 : 대학에서 사회학(정치·역사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역사와 공간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1999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된 후 사회인문학 관점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시작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고, 지은 책으로 <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돌베개, 2012), <인권사회학> (다산출판사, 2013 공저)이 있으며 전쟁과 남북한 정치사회변동, 정치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민과 시민, 국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저자와의 대화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 2014년 10월 30일(목) 오후 7시 30분부터 책방 이음에서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culture/716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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