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미소 띤 얼굴로 유족들을 지나쳤다
등록 : 2014.10.29 11:36수정 : 2014.10.29 15:36툴바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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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유가족들 국회에서 기다렸지만 눈길 안 줘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란 단어조차 사용 안해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그러나 대통령은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전9시42분 국회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은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미소를 띤 얼굴로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 옆에는 3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족참여 특별법제정·안전한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을 성역없이 조사하라’는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대통령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의 아우성은 듣는 이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28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전날 “대통령이 국회에 오시니 만날 기회가 생긴 것 같다. 대통령을 만나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색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다. 우리를 외면하지 마시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국회 농성장에서 기다렸지만,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통령의 국회를 방문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불편한 존재’로 취급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침부터 경찰 통제선과 국회 의경들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국회 본청 현관 왼쪽에 위치한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은 경찰통제선이 ‘행동반경’을 제한했고, 의경들이 둘러싸 유가족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의경 뒤에는 사복차림의 청와대 경호 요원들이 ‘2차 장막’을 쳤다.
대통령이 지나간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많은 애들을 구하지 못하고 이 나라는 무얼했습니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에요.”, “유가족좀 살려주세요.” 10분여간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절규하던 엄마들은 결국 주저 앉아 소리를 내서 울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유가족들을 지켜봤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손을 한번 잡아주시면 약간의 관심이라도 표명해주시면 저분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국민들에게도 아주 환영받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세월호’라는 단어를 한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의 기본책무인 국민의 안전부터 확실히 지키도록 하겠다. 내년도 안전예산을 전분야에 걸쳐 가장 높은 수준인 17.9% 확대하여 14조6천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각종 적폐의 흔적들이 세월이 흘러도 후손들에게 상처로 남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세월이 흐르니 ‘세월호’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싫었을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시정연설과 여야 영수회담을 마치고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본청 현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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