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 엄마’ 김성실 씨 “미디어, 소리 없이 퍼지는 진실의 알림장 되길”
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하얀 스크린 속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달리고 있었다. 계절은 4월이었고, 교정은 분홍빛 벚꽃으로 물들었다. 봄 햇살을 맞으며 걷는 도언이와 예진이, 예은이, 시연이, 주이, 예슬이, 영은이 일곱 명의 여고생은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꺄르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비를 보면 나비 춤을 추고, 꽃을 보면 꽃춤을 추었다. 스크린 밖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에 두툼한 검은 점퍼를 추스리며 눈물을 닦았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과 함께 하는 세월호 추모 영상제’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정지영 감독, 영화배우 문성근 씨 등이 참여했다. 퇴근길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광장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한 두방울 떨어지던 가을비는 영상제가 시작할 무렵 신기하게 그쳤다.
영상제 사회를 맡은 백재호 감독은 “오늘 저녁에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다행이다”라며 “한 어르신께서 ‘우리 아이들이 영상제 잘 치르라고 도와주는 거다’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강주희
이날 영상제에는 본선에 진출한 10개의 작품이 상영됐다. 김은택 감독의 ‘유리창’을 시작으로 ‘그 날 그 때 그곳에’(감독 이승준), ‘잊지 않을게’(감독 김인영), ‘꿈’(감독 김홍경), ‘미안해 내가 못난 어른이어서’(감독 하헌기), ‘2반의 빠삐용들’(감독 박동국), ‘잊지 못할 세월’(감독 문지은), ‘The Striker vol.2’(감독 김인영), ‘유가족 직접 행동에 나서다’(감독 안경낀화원), ‘화인’(감독 김철민) 등이다.
시민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 모습, 유가족의 오열과 눈물이 스크린에 나올 때 마다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도 했다.
공모작 상영에 이어 416 영화인 단편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 6편도 상영됐다. 민병훈 감독의 ‘생명의 노래’, 김홍익 감독의 ‘잊지 말아줘요’, 백승우 감독의 ‘기도’, 이정황 감독의 ‘다녀오겠습니다’, 유성엽 감독의 ‘주홍조끼를 입은 소녀’, 김경형 감독의 ‘같이 타기는 싫어’ 등이 스크린을 물들였다.
▲ ©강주희
특히 백승우의 감독의 ‘기도’는 지난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을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연상시켰다. 세월호 천막을 지키며 점점 야위어가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만나러 지상에 내려온 딸의 짧은 대화는 이내 광화문 광장을 숙연케 했다.
퇴근길에 영상제를 찾았다는 직장인 신지현씨는 “영상을 보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신씨는 “광화문 광장을 매일 지나지만 이 곳을 지키는 유가족과 많은 시민 봉사자들을 가까이서 보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그 분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고 밝혔다.
총 21편의 모든 영상이 상영된 후에는 시상식이 열렸다. 등수가 없는 모두가 1등인 시상식이었다. 유가족들과 영상제에 출품한 감독들은 함께 단상에 나가 영상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유가족들은 감독들에게 직접 꽃을 달아주며 인사를 나눴다.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추모 영상제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재능있는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랬고, 울음을 참으면서 봤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 ©강주희
김씨는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내놓고 정말 많은 일을 겪는 것 같다. 우리 부모들은 익숙치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많이 어색하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남겨놓은 사명이 있고, 미디어라는 것이 소리 없이 퍼질 수 있는 알림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이 드릴 게 많이 없다. 알다시피 (유가족들이) 그리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미리 준비해놓은 것도 없다. 하지만 끝까지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여기 출품하신 모든 분들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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