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침략당한 역사 망각하면 전철 답습"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10.28 19:16:33
트위터 페이스북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가 공동주최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28일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국제학술대회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병사를 물러나게 하고 나쁜 간신배의 관리를 쫒아내서 임금 곁을 깨끗이 한 뒤에는 몇 주석(柱石)의 선비를 내세워서 정치를 맡게 하고 우리는 곧장 농촌에 들어가 생업인 농사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크게 폐해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몇 사람의 명사에게 협합(協合)해서 합의법에 의해서 정치를 담당하게 할 생각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1895년 3월 6일자 전봉준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가 28일 개최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농민혁명 지도자인 전봉준은 집강소 설치기간 폐정개혁을 결정하면서 의사원(議事員)이라는 이름으로 합의제로 운영했으며, 누구를 지도자로 추대할 것인지를 묻는 일본 기자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소개했다.
▲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동학농민 혁명군이 지향한 반침략 반외세의 자주의식은 현재 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이화 전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이같은 지향은 근대적 입헌군주제나 선출직 국회와 같은 정치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사람의 권력집중을 막으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이 밑으로부터의 변혁을 지향하면서 기층민중의 의사를 대변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의사결정이라는 관점에서는 '소박한 수평적 리더십'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봉기 당시부터 부정한 수령과 이서를 징치하면서 청산해야 할 첫 대상으로 꼽고 집강소 기간에는 불량한 양반배와 포악한 토호를 일차 대상으로 삼는 등 당시의 지배세력을 모두 적으로 보았으며, 집강소를 통해 적어도 의사결정과 정책결정, 민중의 정치참여 문제 등을 민주적으로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동학농민혁명군 자체 역량의 한계도 있었지만 일차적으로는 일본 침략세력의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외교력에 꺾인 것에서 연유한 만큼 이에 뿌리를 둔 민족분단의 역사적 책임에서 일본은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이사장은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에서 동학농민 혁명군이 지향한 반침략 반외세의 자주의식은 현재 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족의 분단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독재정권을 맞아 민주주의를 유린한 세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이 전개됐으며,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탐욕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비춰볼 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현재적 의미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이 전 이사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치쥔지에 중국 갑오전쟁박물관 관장과 이노우에 가츠오 일본 홋카이도대학 교수의 기조강연이 있었으며,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의 사회로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의 전개와 동아시아 세계의 변동'을 주제로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치쥔지에 관장은 기조강연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와중에 벌어진 '중일갑오전쟁'(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됐는데, 중국에 끼친 충격은 대단히 강렬해서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를 앞세운 의화단운동과 나아가 신해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도발한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상대로 승리한 일본은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면서 열강의 대오에 들어서게 됐다며, "침략당한 과거를 잊으면 반드시 침략당한 역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경고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는 일본측 사료를 중심으로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동학농민군에 대한 섬멸작전은 일본 대본영과 정부가 조직한 것이었으며, '국가의 제노사이드'였다고 폭로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동학농민군의 섬멸작전을 입안, 발령하고 '토멸부대'를 파견한 것은 '히로시마 대본영'이었으나 일본군 육군참모본부는 이 작전을 전사에서 전혀 기록하지 않고 있다며, 동아시아의 장래를 위해 역사적 사실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학농민혁명, 평화·화해·상생의 시대를 열다'는 주제로 진행되는 국제학술대회는 28일에 이어 29일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짚어보고 '동학농민혁명과 동아시아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계속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