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SURPRISE.OR.KR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4-10-14)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참관 후기
-제2부, 정조대왕능행차의 그리운 풍경-
“별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있기 때문이야…!”
수원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을 통과하는 정조대왕능행차를 바라보며 ‘참 아름답고 그리운 풍경’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셔터가 그 순간을 놓칠 리 만무하다. 참으로 그리운 풍경이 또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를 뒤로하며 수원행궁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말 두 필과 능행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입고 있는 황금빛(黃色) 두루마기가 눈에 띈다. 이 모습을 200여 년 전 백성들이 봤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어린왕자>의 저자 생떽쥐베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는 먼 우주에 떠 있는 별 하나를 통해 "별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있기 때문이야."라며 별의 정체성(?)을 우리 인간들의 마음과 동일시 했다. 셍떽쥐베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때문인 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과 달랐던 것. 그러나 별은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아름답게 보이는 건 아니다.
제2부, 정조대왕능행차의 그리운 풍경
별이 절망의 반대편에서 구원의 손길을 보내거나, 별이 돈과 명예를 보장해 준다거나, 별이 내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별이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운명의 신이면 몰라도, 세상 사람들은 어두운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 전부를 빼앗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특히 도회지에선 별을 올려다 보는 수고 보다, 휘황찬란한 조명을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살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꽃 보다, 알록달록한 ‘앱’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는 지 더더욱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불과 200여 년 전쯤 조선시대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달라도 한참 다른 우주관을 가지고 살았다.
정조대왕능행차에 새겨진 오방색
인터넷에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일찌감치 과학을 통해 우주의 겉모습을 다 알아버린 코스모스는 더 이상 유토피아로 자리매김 할 수 없는 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스마트한 휴대폰 속에서 더 이상의 진화를 멈춘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주는 대략 오방색 혹은 오방정색의 프레임에서 고정돼 있었다.
“오방색은 ‘오방정색’ 이라고도 하며,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한국의 전통 색을 말한다.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오행을 생성하였다는 음양오행사상을 기초로 한다.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가 따르는데,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황(黃)은 중앙, 청(靑)은 동, 백(白)은 서, 적(赤)은 남, 흑(黑)은 북을 뜻한다.
또한, 청과 황의 간색에는 녹(錄), 청과 백의 간색에는 벽(碧),적과 백의 간색에는 홍(紅),흑과 적의 간색에는 자(紫),흑과 황의 간색에는 유황(硫黃) 색이 있어 이들을 오간색(五間色) 또는 오방잡색(五方雜色)이라고 한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에 해당하며 우주의 중심이라 하여 가장 고귀한 색으로 취급되어 ‘임금의 옷’을 만들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에 해당하며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였다. 또한,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에 해당하며,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다.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해당하며 생성과 창조.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여 가장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였다. 또한,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首)에 해당하며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하여 오방색(五方色)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혼례 때 신부가 연지곤지를 바르는 것.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해 돌이나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것이며,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두르는 것이다. 또 잔치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집을 짓거나 신년에 붉은 부적을 그려 대문에 붙이는 것. 궁궐, 사찰 등의 단청, 고구려의 고분벽화나 조각보 등의 공예품에서 이러한 오방색(五方色)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445&dic_seq=77>
정조대왕(화산)능행차가 시작됐다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이 장안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방색 가운데 황색의 의미를 떠올려 본 것이다. 오방색은 몽골로이드가 생활 가운데 주로 사용해 온 색(色)이지만, 몽골로이드의 선조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종족들이 널리 애용한 색이며 세계인들이 이 색깔로 벗어날 수 없는 '태양의 정체성(빛)'이기도 하다.
필자(‘나’라고 한다.)는 지난 12일 폐막된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능행차 연시 참관을 통해,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왜 황금빛 노란색을 그리워 하는 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어디서 비롯됐는 지 알 수만 있다면 치유가 가능할 텐데, 우리는 그 방법을 몰라 고아처럼 방황하고 있었던 것. 생떽쥐베리가 힌트를 준 것이다. 별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게 만든 커튼 하나가 ‘마음의 창’을 가리고 있었던 것. 그 지긋지긋한 어둠의 커튼을 걷어낸 건 수원화성 서장대에 걸린 황금빛 깃발이었다. 효심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 납시었던 것이다.
나는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 지,
넌지시 깨닫고 있었던 것.
사람들이 능행차 행렬이 지나는 연도에 쪼구려 앉아 학수고대 하고 있는 건, 해마다 때 맞추어 행하는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었다. 설령 그분들이 ‘열심히 준비한 이벤트를 즐기러 나왔다’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짬을 내어 손뼉을 치며 열광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들 마음 속에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구심점을 되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의 ‘선두군사(보병)’가
장안문을 나서 행궁으로 나설 때쯤,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역사적인 장면 앞에서 숨죽이며 셔터를 눌러댓다.
대왕의 행차에 따라나선 정예군사들이
화성행궁에 입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차에 합세한 병사들 때문에 열광한 건 아니었다.
(물론 능행차 연시에 참여한 분들의 수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장안문 안에서도
출입이 허가된 카메라맨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선두 행렬이 지나가면 곧 정조대왕이 용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왕의 모습을 직접 알현하고 싶은 것이다.
왕은 금방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련 포스트 (수원화성문화제,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언급한 바
왕은 선두에 위치해 있지만 장안문 앞에서 하마 한 후
수원유수(염태영 수원시장) 등의 영접으로 행차가 지체되고 있는 것.
선두행렬이 장안문을 나설 때쯤
장안문 앞에서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을 알현할 수 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능행차 행렬은 서기 2014년 10월 9일에 행해진 능행차 연시이며,출연자들은 대부분 시민들과 학생들로 구성됐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느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금 생떽쥐베리가 말한 ‘아름다운 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조대왕 납시오…!
누구나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있을 별 하나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단백질의 근원’이 아니라,
자기를 지탱해 주는 구심점이었다.
작게는 형제이며, 가족이며,
좀 더 나아가면 부모이며,
연인이며,
동지이며,
조직이며,
사회이며,
특정 국가에 속한 내가…
이들로부터 소외 되거나 멀어지면, 본래의 자리를 되찾거나 돌아가고 싶은 것.
마치 지구별에 사는 인간이 손에 잡힐 듯 허공에 둥실 매달린 달을 그리워 하는 것 같은 이치랄까.
내 앞에 납신 왕은 폭정을 일삼는 폭군이 아니었다.
조삼모사를 통해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위선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말하는 ‘닭대가리’처럼)
방금 전에 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자기가 한 말 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자기를 태어나게 해 준 부모의 고향이 노략질의 땅 아메리카 대륙이나,
시도 때도 없이 화산과 지진이 창궐하는 섬나라로 착각하는 등
‘짝퉁 정체성’을 가진 정치 협잡꾼들은 비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선조를 통털어 가장 반듯한 정조(正朝)대왕이었다.
당신께서 친히 수원화성에 납신 것이다.
대왕께옵서 친히 보잘 것 없는 한 백성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 곳은 장안문 앞이었다.
장안문 앞에서 이 모습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 한 카메라맨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포착된 이곳은, 정조대왕이 생전에 능행차를 통해13차례나 드나들던 유서깊은 곳이다.조선조 500여 년을 통해 단 13차례 왕과 백성들이 행복을 만끽했던 ‘소통의 문’이랄까.
권력 본래의 모습
화성행궁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은 동족상잔이 빚어진 6.25전쟁 당시 반파된 이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아울러 수원화성문화제가 51회를 맞이할 때까지 12번 째 정조대왕 역(役)을 배출해 오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었던 것. 나는 이 축제를 참관하면서부터 줄곧 권력의 본래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권력은 ‘칼의 속성’과 다를 바 없어서 잘 못 다루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죽음의 도구’로 변질되는 것. 그러나 잘 다루게 되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생명의 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정조대왕이 정약용으로 하여금 수원화성을 축조케 하고, 아버지 장헌세자의 능행차를 통해 지극한 효심을 드러내 보인 건, 세상을 바르게 다스려 보고 싶은 정치적 야심과 함께, 오랜 정쟁으로 상처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컷을 것.
임금은 자기를 나타내 보고자 하는 ‘빛나는 별’이 아니라
백성들의 바람을 거두어 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의 능행차 행렬이
저만치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한 수 위의 보다 큰 권위를 되새기게 됐다.
세상을 통찰하고 있는 ‘고수와 하수의 차잇점’이었다.
아이를 둔 하수의 부모는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아이를 통제하며 ‘하지말 것’을 강요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그렇지만 고수의 할아버지께선 아이와 가문 등의 비젼을 위해 ‘하라’고 내버려 둔다.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를 통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 한 게 무엇인지 단박에 오버랩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슴 속에서 늘 빛나던 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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