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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일 목요일

23년전 노랫말에도 “민주인사와 기자는 믿지마라”


[데스크칼럼] 세월호 특별법 협상 유족 뜻 못지킨 야당이 새겨들어야 할 정태춘·박은옥과 안치환의 노래들 입력 : 2014-10-02 18:06:54 노출 : 2014.10.03 09:42:25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이 세차례나 유가족의 뜻과 배치된 결과로 나온 연유를 두고 대한민국 정통 야당이자 제1야당을 자부해온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른바 ‘야합’, ‘굴복’이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여당의 몽니 못지않게 박근혜 정부 2년과 이명박 정부 5년 간 충분히 경험해온 야당에겐 현실적인 힘의 한계, 기울어진 운동장 탓만을 하기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 규명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이른바 제도권 야당에 대해 ‘무능하다’는 질타를 넘어 배신과 원망에 이른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야당 판 참사”라는 개탄까지 나왔다. 이런 상처는 집권세력에게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야당과 민주 재야 인사들에 대한 이런 배신감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화운동 직후에도 이렇게 믿었던 인물들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당한 쓰라림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당시를 은유적이면서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표현한 노랫말이 여럿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선택을 보면서 이런 노랫말 속의 구절이 연상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가수 정태춘씨가 부인 박은옥씨와 함께 1991년 내놓은 앨범(‘아 대한민국’) 속 타이틀곡 ‘아 대한민국’(노래제작은 1990년 10월) 속 노랫말이다. 작사가인 정태춘씨는 당시 대한민국을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땅”으로 규정했다. 그는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 대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우리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라는 이어진 구절은 전체 노랫말 듣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진실을 담고 있다. 1993년에 정씨가 내놓은 음반(‘92년 장마 종로에서’) 타이틀곡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랫말은 군부독재의 폭압에 마지막 희망을 가졌던 ‘시민 군중’과 ‘기자’에 대한 절망이 그려져있다.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이어 정씨는 이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도 접고 절망도 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정태춘 박은옥 6집 앨범 '92년 장마 종로에서' 이밖에도 민중가수와 대중가수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안치환씨의 초창기 노랫말은 더욱 야당, 재야, 지식인의 위선을 질타하는 구절을 담았다.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안씨가 내놓은 3집 앨범(‘자유’)의 자유는 애초 1987년 발표된 고 김남주 시인의 ‘자유’(시집 <나의 칼 나의 피>)가 그 원가사이다. 안씨는 ‘자유’에서 “만인을 위해 일하거나 싸울 때, 몸부림칠 때”, “땀흘려 일하고 피흘려 싸울 때” 만이 자유를 얻는 길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안씨는 현실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설했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결국 겉으로만 목소리를 높일 뿐 속으로는 잇속만 챙기는 민주인사들의 위선을 꼬집고자 하는 내용이다. 안씨는 2년 뒤인 1995년 내놓은 4집 앨범(‘내가 만일’) 수록곡 ‘수풀을 헤치며’(안치환 작사·곡)에서는 당시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허탈함, 달콤한 현실에 안주한 이들을 질타했다. 안씨는 “수풀을 헤치며 물길을 건너 아무도 가려하지 않던 이 길을 왔는데 아무도 없네 보이질 않네”라면서 “울며 웃고 마시고 취해서 떠드는 사람들속에 그댄 없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들에 대해 “어디서 무엇을 하면 자신의 안위를 즐기는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1987년 대투쟁 이후 민주진영의 대선 패배에 이은 총선 승리(여소야대) 국면에서 발생한 노태우·김종필·김영삼의 1990년 ‘3당 합당’ 이른바 ‘야합’은 민주화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구타 치사사건까지 벌어져 군부정권 막바지 반정부투쟁이 고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편파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시민을 버린 기자들에 절망했다. 또한 이듬해(1992년) 말 처음으로 집권한 문민정부인 YS 정권에 대한 기대감으로 적잖은 민주인사들이 정권에 투항했다. 잇단 배신과 절망이 쏟아져나오던 때였다. 안치환 4집 '내가만일' 2014년 10월에 벌어지고 있는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야권의 모습은 단지 무기력하다는 것을 넘어 20여 년 전 시민들에 큰 생채기를 줬던 동지의 배신을 노래한 구절을 연상케한다. 1990년대 초반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노래단 ‘조국과 청춘’과 ‘노래마을’에서 활동해온 민중가수 손병휘씨는 1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한 새정치연합을 보면서, 시민사회의 수준이 독일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것이 우리의 수준으로 과거 전대협 때 그많던 잘난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반문했다. 손씨는 “지금은 정치인, 학생사회, 기자사회에서도 인물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후졌다”고 지적했다. 손시는 “과거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할 사람들과 집단이 역사에 대해 겸허하지 못하다”며 “역사 앞에 겸손해야 결정적일 때 이런 선택을 안한다”고 지적했다. 조현호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media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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