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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7일 일요일

새로운 사회운동의 근거지, 지역과 공동체


[주권자 인민 정치혁명·⑤] 직접 민주주의 담은 새 헌법 만들어야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2014.09.07 17:07:14 그동안 한국의 사회운동은 계급과 민족 문제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계급과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 전략을 실천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계급과 민족에 기반을 둔 20세기 사회주의 혁명 운동 전략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한 사회의 주요 모순이 계급 모순이냐 민족 모순이냐를 놓고 이른바 민족해방파와 계급해방파가 나뉘었던 한국의 학생운동과 진보운동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엔엘(NL·national liberation)이니 피디(PD·people democracy)니 하는 용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지난날의 치열했던 사회운동 전략이 여전히 여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이 같은 계급과 민족을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 전략은 이제는 낡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조직화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이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로 백일몽이었음이 이미 입증되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혁명을 선두에 서서 반대한 것은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노동자였다. 생산력이 극대화되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잘못임이 드러났다. 21세기는 경제성장 자체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노동자 전체의 목을 조르는 시대이다. 서구 근대화 산업화가 전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지금 단지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철폐하고 사회화하기만 하면 파괴된 지구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는 생면부지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같은 직장의 동료 노동자에게조차 같은 계급으로서 형제애를 갖기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자계급 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생산직, 여성과 남성,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 등등 분단되고 분열된 수많은 층으로 사분오열 나뉘어 있다. 단지 잘못된 인식과 허위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대한민국 노동자가 고액 연봉을 중심으로 기득권화된 정규직 노동자층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층으로 확연히 분열돼 있는 것은 현실의 문제이다. 노동자가 계급을 중심으로 뭉치면 우선 당장 임금 노예로서 자신의 더 많은 임금과 더 좋은 노동조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계급의 문제나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는 관심 밖의 사항으로 뒷전에 내버려 둘 수밖에 없게 된다. 요컨대 노동자 계급운동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운동으로서는 기대할 바가 많지 않다. 1968년의 6.8혁명 이후 서구에서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신사회운동이 등장한 것은 이 같은 서구 노동자 계급의 기득권화와 계급 이기주의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요한 해결 과제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계급과 민족은 성장하는 자본주의와 국가 차원의 범주일 뿐이다. 이런 계급과 민족의 모순 구조만으로는 오늘날 초국적 자본의 공동체와 생태계 파괴, 화석연료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의 고갈과 석유문명의 붕괴 위기를 설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도출해 낼 수 없다. 더구나 국가 단위에서 계급과 민족의 강조는 결국은 극단의 계급과 민족 지상주의,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을 낳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의 해결이 개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전체주의 체제로 귀결된 사실은 지난 시기 사회운동 전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연합뉴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연합뉴스 지금은 계급과 민족으로 뭉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 시대이다. 계급과 계급이, 민족과 민족이 전쟁을 일으켜 인민의 인간다운 삶이 쟁취되는 시대가 전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인종 청소 전쟁은 지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대적 공존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적대적 공존의 전쟁과 투쟁은 21세기 사회운동 전략의 수단이 될 수가 없다. 지금은 1% 특권 지배계급을 제외한 전 인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 비상 탈출구를 찾아야 할 위기의 시대이다. 계급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협소한 계급과 민족운동만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의 새로운 사회운동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대이다. 그런 새로운 사회운동 전략 단위가 다름 아닌 공동체와 지역이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와 지역이라는 새로운 차원과 범주에서 인민의 힘을 모아 앙시엥 레짐을 타파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급과 민족, 자본주의와 국가를 포괄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서 인민 개개인의 삶을 바꾸고 자유인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공동체와 지역이다. 인민주권의 탈환과 직접 민주주의 혁명은 이 같은 지역공동체의 재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세 꼬뮨과 동학농민전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유산은 이런 자립 자치의 지역 공동체 재생운동이다. 풀뿌리 지역공동체 재생의 정치는 처음부터 한 지역에 고립된 운동으로 시작해서는 막강한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워 성공하기가 어렵다. 지역과 지역이 강하게 연대 연합해 강력한 정치운동, 경제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으로 전국에 걸쳐 풀뿌리 인민의 에너지를 결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자립자치의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연방주의 정치야말로 인민주권 실천의 민주주의 정치이다. 직접 민주주의 체제는 법과 헌법의 개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밑에서부터 법과 헌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1987년에 10번째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헌법 제128조는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될 수 있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명시되어 있다. 주권자인 인민이 헌법을 발의하고 개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는 명백히 주권자의 주권을 제한하는 조항이다. 기득권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권력을 내놓아야만 하는 직접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의 법과 헌법 개정을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 사실 지금까지 헌법 개정 논의는 정치인 중심으로 이원집정부제니 내각제니 하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노랑과 파랑의 얼룩무늬 늑대를 그릴까 노랑과 빨강의 얼룩무늬 늑대를 그릴까 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맴돌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인민주권의 헌법 개정 또는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늑대가 아니라 사람을, 자유인을, 주권자를 복원시키는 새로운 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1948년 체제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바꾸고 대한민국을 인민이 통치하는 직접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는 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인민이 헌법 개정을 할 수 없다면 주권자인 인민이 직접 나서서 헌법을 제정하면 된다. 오직 주권자인 인민만이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권리가 있다. 인민이 새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민주주의 혁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글은 협동사회독립언론 '두레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편집자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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