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코리아 | 작성자 허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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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2014년 09월 30일 18시 13분 KST 업데이트됨: 1시간 전
홍콩 도심 점거시위가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이번 시위가 ‘제2의 천안문(톈안먼) 사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홍콩 시민들은 왜 시위를 하는 걸까? 앞으로 시위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번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모든 사건이 다 그렇듯,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1. 홍콩은 어떤 나라인가?
hong kong
홍콩.
아시아 금융 중심지이자 무역의 중심,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쇼핑천국’으로도 널리 알려진 홍콩은 사실 알고 보면 기구한 팔자를 지닌 도시다.
세계에서 홍콩만큼 팔자가 기구한 도시도 드뭅니다. 탄생부터 그렇습니다. 아편전쟁의 산물입니다. 이 전쟁에서 진 중국이 영국에 홍콩섬을 강제로 빼앗기면서 도시가 시작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부도덕했던 전쟁의 사생아인 셈입니다.
중국은 이후 2차 아편전쟁에서도 패배하면서 현재 홍콩의 도심인 주룽 반도를 분할해줬습니다. 그리고 1898년 2차 베이징 조약을 통해 지금 면적의 90%를 이루는 신제와 부속 도서를 99년 기한의 조차지로 내놓으면서 홍콩이 완성됐습니다. (SBS ‘월드리포트’ 9월2일)
홍콩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 건 1900년대 초반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다.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입지를 다지게 됐고, 인구도 빠르게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홍콩은 밀려드는 사람과 돈에 힘입어 경제를 꽃피웠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자유'를 누렸다. 모두 영국 통치 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제 자유무역항으로 성장한 홍콩은 2차 세계대전 때(1941년) 일본에 먹혔고 4년 뒤 다시 영국령이 됐다. 1949년 국공내전을 피해 돈과 기술을 가진 중국인이 대거 몰려왔다. 그 덕에 홍콩상하이은행과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일취월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땐 외자공급원이 됐고 마침내 글로벌 서비스업 중심지와 쇼핑천국으로 부상했다. (한국경제 7월2일)
시간이 흘러 1997년이 됐다. 영국은 약속대로 홍콩에 중국을 반환해야 했다. 홍콩 시민들은 불안에 빠졌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화려한 성장을 일궈왔던 홍콩 시민들에게 중국 ‘공산당’이 반가울리 없었다. 중국 정부는 ‘묘수’를 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중국의 ‘신의 한수’는 ‘1국 2체제’ 약속이었습니다. 홍콩이 반환돼도 기존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적어도 50년은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허용하고 간섭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홍콩의 민심은 급속히 안정됐습니다. 영국은 홍콩 반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이 잘 키운 홍콩이라는 과실을 중국은 거의 아무 손실 없이 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SBS ‘월드리포트’ 9월2일)
이 덕분에 홍콩은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중국 중앙정부와 별도로 자체적인 행정·입법·사법체계를 유지해온 것.
2. 왜 ‘민주화 시위’인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한 대학생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당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민주적인 선거가 보장되고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원한다. 그것뿐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9월29일)
이 대학생이 말한 ‘민주적인 선거’는 2017년에 열릴 예정인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출 선거를 말한다. 홍콩 정부의 대통령격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는 그동안 간선제로 치러져왔다. ‘체육관 선거’였다는 얘기다.
2012년 임기 5년의 4대 행정장관에 선출된 렁춘잉은 1200명의 선거인단이 뽑았다. 선거인단 선출에 참여한 유권자는 25만명으로, 그해 홍콩 유권자 347만명의 10%에 못미쳤다. 2002년 행정장관에 연임된 둥젠화(董建華)는 당시 지지율이 10%에 못 미쳤지만 중국의 지지 덕에 당선됐다. (경향신문 8월27일)
2017년 선거는 사상 처음으로 직선제로 치러진다. 투표권을 가진 모든 홍콩 시민들이 직접 뽑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여전히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하는 걸까?
중국 정부가 입후보자의 자격을 ‘친중국 인사’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오는 2017년 처음 직선제로 치러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후보자격에 대해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인사여야 한다”고 최종 결정했다. (연합뉴스 8월31일)
전인대는 2017년 선거부터는 홍콩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후보자는 1200명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은 2~3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문제는 업계 관계자 등 친중파가 ‘후보추천위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민주파 인사가 행정 장관직에 입후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조선비즈 9월1일)
그러니까, 직선제는 직선제인데 아무나 후보로 나설 수는 없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가 허락하는 후보들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홍콩의 야권과 시민들이 ‘가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홍콩 민주화시위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WSJ의 영상.
반면 중국 정부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오드리 유 홍콩 공민당 당수는 28일 집회 연설에서 “행정장관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한다면 ‘일국양제’ 원칙이 어떻게 지켜진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은 다르다. ‘일국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체제의 원칙이며, 정치체제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한겨레 9월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2일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둥젠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과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 그룹 회장 등 중국 공상계 지도자 40명을 만나 “홍콩에 대한 중앙정부의 기본 방침과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 주석은 이날 “행정장관의 인선은 중앙의 신임과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는 인사가 필수 요인”이라며 “보통선거는 균형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중앙일보 9월27일)
3. 홍콩 시민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을 인터뷰한 외신 보도를 보면, 이번 시위가 단순히 2017년 선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사'가 있다.
hong kong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을 당시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하에 50년간 홍콩의 기존 체제 유지와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국양제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2003년에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수십만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서자 포기했고 2012년에는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다 ‘정치적 세뇌’라는 반발에 부딪혀 역시 지정 계획을 포기했다.
두 사안 모두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홍콩 사회에 중국 당국이 홍콩의 사회·정치 체제에 개입하려 한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연합뉴스 9월30일)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발간한 ‘홍콩백서’라는 책은 홍콩 시민들의 불안을 더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백서는 “헌법과 홍콩기본법이 규정하는 특별행정구 제도는 특수한 관리제도로 중앙 정부가 홍콩특별행정구의 전면적인 관할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이어 관할권과 관련, “중앙이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 존재하며 홍콩특별행정구가 법에 의해 고도의 자치를 시행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중앙이 감독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6월10일)
요약하면, ‘홍콩은 중국이 통치한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이런 책을 낸 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뒤 처음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8월말 중국 정부가 2017년 선거안을 자신들의 뜻대로 확정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은 '여기에서 더 밀려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수년간 홍콩 시민들은 자치정부를 허용하도록 중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중국과의 직접 충돌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제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요구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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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는 어떨까?
우선, 홍콩이 누려왔던 경제적 자유와 안정이 중국 정부에 의해 침해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CNBC는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홍콩 시민들의 경제적 엘리트 의식이 최근 중국의 각종 규제로 상처 입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자본통제 수위가 높아지면서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본토인이 홍콩으로 대거 이주해오면서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뛰고 인구밀도가 높아져 홍콩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홍콩 아닌 상하이(上海) 등 다른 도시를 금융허브로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홍콩 내 반발도 거세다. (아시아경제 9월30일)
다른 한편으로는 반환 당시와 비교했을 때 중국과 홍콩의 경제적 지위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즉,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불안정한 사태가 경제적인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18.7%→2.96%.
1996년과 2013년 중국의 명목 GDP(국내총생산)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을 당시만해도 중국에게 홍콩은 절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홍콩은 중국에 자본과 노하우를 전수하던 ‘갑’에서 중국으로부터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원하는 ‘을’로 바뀌었다. (중앙일보 9월27일)
시위로 인한 불안이 홍콩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지만 보다 장기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오히려 (이미) 앓고 있는 (홍콩) 경제가 홍콩의 불안정한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분기 홍콩 경제는 침체에 접어들었고, 반전될 것이라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홍콩이 경기불황으로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복스 9월29일)
Hong Kong protests: Occupy Central row in 60 seconds - BBC News
역사적인 차원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홍콩 시민들이 중국 공산당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울러 홍콩 시민들이 '천안문사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번 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 등을 보며 수천명이 숨진 당시의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홍콩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민이거나 난민의 후손이다. 1950년대 사람이 초래한 기아에서 도망쳤거나 십 년간 수많은 이들을 죽인 문화혁명을 피해 달아난 이들인 것이다.
홍콩 주민들은 홍콩 거리에서 벌어졌던 최악의 폭력 사태가 1967년 마오쩌둥의 홍위병이 문화혁명을 홍콩에 들여왔을 때라는 사실을 오늘날에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전경과 대치하면서 조악한 수제 폭탄을 던져댔다. (월스트리트저널 9월1일)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군대가 베이징을 비롯한 다른 도시에서 시위대를 진압해 2600명이 숨진 1989년 천안문사태를 홍콩 시민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시 영국 통치 하에 있던 홍콩은 그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홍콩은 매년 추모집회를 열어왔다. 천안문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강력하게 검열돼 상당수의 중국 젊은 층들이 그 사건을 들어보지도 못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인들을 대신해 천안문사태를 기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만, 진지하게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지난 주말 홍콩 경찰들이 마치 군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자신들을 향해 최루탄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홍콩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거기에 있다. 1989년의 폭력이 반복된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복스 9월28일)
4. 젊은 층의 참여가 높은 이유는?
이번 시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학생들의 참여가 많다는 부분이다. 홍콩 대학생들은 지난 22일 수업을 거부하는 동맹휴업투쟁에 나섰고, 곧바로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수업거부 운동에 동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홍콩 시위에서 드러난 ‘세대 간 갈등’을 소개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학생들은 취업 문제, 치솟는 집값, 중국 현지 인력들과의 경쟁 등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반해 중국의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군 홍콩 구세대들은 민주화 시위로 자칫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금이 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구세대들은 전통적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둬 왔던 홍콩이 정치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데일리 9월29일)
보도에 따르면, 홍콩의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중국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사업을 키워왔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이들은 더 큰 사업 기회를 중국에서 발견했고 부를 축적했으며, 홍콩으로 중국의 자본이 몰려든 데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이들은 당연히 '현상유지'를 바란다.
반면 젊은 층은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부모 세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택 가격은 까마득하게 오른 반면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것. 이 같은 세대 간의 갈등은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홍콩중문대 여론조사 결과 15~24살 사이의 응답자 가운데 75.8%가 행정장관 선거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시한 반면 40~50대 가운데 반대한다는 응답은 45.3%에 그쳤다. (한겨레 9월29일)
쉽게 말해 세대 간의 갈등과 경제적 갈등이 서로 얽혀 정치적 이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WSJ은 이런 세대 간의 엇갈린 경제적 조건이 시위 그룹 내에서도 관찰된다고 전했다.
일요일 오전, 대표적인 시위 그룹인 'Occupy Central(OC)'이 정부 청사 앞에서 농성 중이던 대학생들과 합류했다. OC는 홍콩 시내의 경제 중심가를 점령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들과 대학생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중년의 대학 교수나 야당의 원로들로 구성된 OC의 지도자들의 등장은 이틀 동안 그 자리에서 노숙투쟁을 벌여왔던 학생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월스트리트저널 9월28일)
5.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중국 정부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다는 문제가 하나 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중앙정부는 홍콩에서 법질서와 사회안녕을 깨트리는 위법행위에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우리는 특구정부의 '의법처리'를 충분히 신뢰하며 굳건히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9월30일)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30일 계속되는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 자격을 제한한 결정을 철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9월30일)
hong kong
중국정부가 쉽사리 물러설 수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거꾸로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잔뜩 경계합니다. 이런 민주화 움직임이 소득 수준이 높아진 중국 본토의 다른 도시로 옮겨 붙을 수 있다고 내심 걱정합니다. 공산당 1당 지배체제에 시비를 걸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이 흔들리면 소수 민족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지역에 대한 통제력 약화가 도미노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BS ‘월드리포트’ 9월2일)
실제로 홍콩 시위가 격화되자 대만은 즉각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대만도 홍콩 시위를 거들고 나섰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29일 "중국 당국은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체제)'를 내걸고도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이 모델을 대만과의 통일 방식에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조선일보 9월30일)
또 다른 문제는 세대 간의 갈등에서도 나타나듯 시위를 지지하는 홍콩 시민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홍콩중문대가 지난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46.3%의 홍콩 시민들이 Occupy Central 운동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31.3%였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지지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조사에 따르면, 40-59세에서는 20.9%만이 찬성한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24세 이하 응답자 중 47%는 운동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 9월28일)
이에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문대가 이달 중순 광둥어를 사용하는 주민 1006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센트럴 점령하라’를 매우 지지한다는 의견이 14.2%인 반면, 매우 반대한다는 33.8%를 차지했다. (중앙일보 9월27일)
Hong Kong Protesters Sing in The Rain (WSJ)
결국 지난 주말의 대규모 점거 시위 이후 여론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러니까, 이번 주의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홍콩의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라도 이번 주는 매우 중요하다. 시위대는 중국 정부가 발표한 2017년 선거안과 지속적으로 홍콩의 자유를 후퇴시키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을 자극하길 원한다. 반면 베이징(중국 중앙정부)과 홍콩 정부의 친중국 행정장관은 매우 이례적인 강력한 탄압을 통해 늘 보수적이었던 홍콩 주류계층의 주의를 환기시켜 그들이 '현상유지'를 선택하고 시위대에 등을 돌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범민주 시위대와 중국 정부 모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중국 정부가 홍콩 정치에 더 많은 통제권을 갖도록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민들이 조용히 중국 정부의 2017년 선거안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율성을 좀 더 제약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반면 홍콩 시민들이 모두 함께 시위대에 참여한다면, 2017년 선거안뿐만 아니라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 약속을 거부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복스 9월28일)
한편 일각에서는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일단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중국 정부는 겉보기와는 달리 홍콩의 여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먼저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 주말의 '최루탄 발포'가 광범위한 분노와 세계의 관심을 자극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 그렇다.
홍콩 경찰 병력만으로 사태가 진압되지 못할 경우, 중국 인민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전투경찰은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에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제 2의 톈안먼 사태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말 사이에 시위대에 최루탄을 쏜 이후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론이 거세게 일자, 중국 정부는 29일(월) 전투경찰을 철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 9월30일)
The protests in Hong Kong, explained in 2 minutes - Vox
사태가 장기화되면 홍콩과 중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홍콩의 시위 사태는 미국·유럽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 증시는 금융주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 지수가 0.25% 내린 1만7071.22를 기록하는 등 미 증시도 부진했다.
홍콩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중국에도 악재다. 지난해 중국은 1240억달러(약 130조8324억원)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홍콩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홍콩에는 현재 3700여개 해외 기업 지점이 설립돼 있다. 이 가운데 80%가 중국 기업이다. 홍콩은 역외 위안화 거래의 72%를 차지한다. (아시아경제 9월30일)
변수 중 하나는 경제다. 정세가 불안해지면 아시아의 금융 허브 중 하나인 홍콩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진다. 이럴 경우 홍콩과 중국 모두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안정을 어떻게 조화롭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향후 홍콩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앙일보 9월27일)
홍콩은 역사적인 갈림길에 섰다. 최근의 사건들은 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 어쩌면 홍콩의 미래를 좌우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홍콩은 이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민주주의 투쟁은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홍콩이 첨단 금융도시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의 도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홍콩은 시민 (민주주의라는) 꿈을 위해 어떤 위험과 희생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도시다. (Ying Chan 홍콩대 교수, 가디언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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