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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재판부가 잘못 읽은 줄 알았어요. 아니 미친거 아닌가”


[인터뷰] 900명 정규직 인정 받은 울산 현대 비정규 노조, 천의봉 법규부장 입력 : 2014-09-20 18:47:02 노출 : 2014.09.21 11:03:00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62호. 민사 41부 정창근 부장판사가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근로자 파견 관계는 원고들 전부에 대해 인정한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900여명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울산 비정규직지회 소속 천의봉(33) 법규부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치겠다”고 읊조렸다. 10여분에 걸친 판결이 끝나자 법정을 나온 어깨 넓은 남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안았다. “우리가 이겼다” “정규직이다” 등의 환호도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원고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도 눈물을 훔쳤다. 4년 만에 나온 1심 판결이었다. 18일 판단에 이어 재판부는 19일 재판에서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사내하청 노동자 1100명이 정규직으로 인정됐다. 두 재판 모두에서 승소하고도 천씨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내부를 갈라놓는 판결을 할거라고 예상했어요. 의장공정(차에 부품을 장착하는 일)만 정규직을 인정하는 식으로요. 저는 재판부가 다른 판결문을 잘못 읽는 줄 알았어요. 재판부가 미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울산으로 돌아가는 천씨를 19일 오후 전화로 만났다. ▲ 지난 18일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현대차가 모두 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법원이 울음바다가 됐다. 사진=안지연 제공 “재판부가 미친 거 아닌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 싸움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2004년 아산·울산·전주 공장에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됐고 노동부는 2004년 127개 업체 1만 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천씨도 그즈음 노조에 가입했다. 당시 그는 ‘산재대체인력’이었던 그는 산재 당한 정규직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대신했다. “정규직이 산재 당해서 나가면 사내하청이 그 자리를 땜빵하는 식이었어요. 당연히 고용이 불안하지요. 정규직이 돌아오면 나는 나가야 하는거잖아요. 2004년에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보험 든다는 생각으로 노조에 가입했어요. 노조에서는 무조건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땜빵을 하다가 (사내하청) 신형 산타페 공정에 티오가 나서 일하게 됐죠.” 그때부터 6년 천씨는 차량 타이어를 장착하는 축을 조립하는 일을 했다. 공장 곳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 돼 일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처우는 절반이었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단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2010년 울산공장 하청 노동자 최병승(38)씨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 지난해 8월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자창에서 296일간의 철탑농성을 마친 천의봉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저 자식 떨어뜨려 죽여버려” 대법원 판단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또 하나의 싸울 근거가 됐다. 그때부터 안 본 게 없다. 그 해 겨울 울산 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노조 대의원이었던 천씨 역시 25일간 이어진 점거농성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그는 이 점거농성 때문에 해고됐다. 더불어 회사는 징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2년 10월에는 최병승씨와 함께 철탑에 올랐다. “병승이 저 자식 떨어뜨려 죽여버려“ 당시 이들이 철탑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사측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천씨와 최씨는 밧줄로 철탑에 몸을 묶고 신너를 끼얹었다. 철탑농성은 300일 가까이 이어졌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법을 지키라는 요구가 그렇게 어려웠다. 정규직화 요구에 대한 현대차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최병승 1인에게만 해당한다” “최병승이 일했던 의장공정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교섭도 정규직화 대신 ‘특별채용’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했다. 특별채용이 되면 근속연수는 일부만 인정되고 체불임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취하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손해볼 게 없는 셈이다. ▲ 지난해 8월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자창 송전철탑에서 최병승, 천의봉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벌써 노조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투쟁 10년, 4년을 바라보는 1심 심리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이는 ‘먹혀들었다.’ 지난 8월 18일 전주·아산 공장 비정규직지회가 특별채용에 합의했다. 울산지회는 이를 ‘쓰레기 합의안’ 이라 했다. 2010년 1900명으로 시작한 근로자 지위 소송에 1100명만 남게 된 이유다. 천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 지점이다. “철탑 농성은 그냥 있었던 것뿐이고요. 진짜 힘들었던 건 법적 판결이 나와도 현대차는 무조건 피해가려고만 했던 것들이에요. 사내하청 노동자를 촉탁직으로 고용하고 특별채용 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함께 싸웠던 지회가 갈라지기도 했고요. 조금 힘들어도 버텼다가 같이 쟁취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지요. 현대차를 더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텐데.” 그는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노동부와 법원 판단에도 아무것도 이행하지 않았던 현대차는 노동자들에게는 ‘초법적’ 존재다. 현대차의 항소 또한 예상하고 있다. “법원 판결만으로 불법파견이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이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현대차를 압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지요. 벌써부터 조합 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거든요. 2010년 대법원 판결 때 조합원이 1900명까지 올라갔으니 이번에도 기대 해봅니다.” 이하늬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haneelo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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