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반발", "국회 정상화", "소수강경파"…각기 다른 관점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됐지만 이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거부한 다음날, 조간 신문들은 제각기의 시각으로 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 신문이 있는가 하면 야당이 등원해 국회가 정상화된 데 초점을 맞춘 신문도 있었다. 이 와중에 일부 언론은 여야의 합의안을 거부한 유가족 측을 비판하는데 골몰하기도 했다.
▲ 1일자 한겨레, 경향신문의 지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일 1면에 각각 <또 유족 빠진…미완의 타결>, <여야, 유가족 반발 속 세월호법 합의> 등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과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한겨레>의 기사는 다소 중립적이고 건조한 톤이지만 <경향신문> 기사는 명시적으로 여당과 청와대의 ‘강경론’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두 신문 모두 헤드라인을 통해서는 유가족들의 반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모습이다.
▲ 1일 경향신문 3, 4면.
<경향신문>은 이어지는 3면과 4면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여야와 유가족의 3자회동을 앞두고 “새정부 2년 동안 정치권의 장외정치와 반목 정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사실상 야당을 비판해 협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여당이 다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여야의 합의안에 대해서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기소권이 없고 특검후보추천위의 경우 사실상 친여 성향 인사가 과반을 이루게 됐다고 지적했다. ‘비관적’ 전망을 전한 셈이다.
▲ 1일 한겨레 4면.
<한겨레>는 4면에 유가족들의 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게재하는 것으로 여야 합의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야당이 특검후보군 4명을 추천하는 문제에 있어서 유가족 측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안에 유가족들이 동의했으나 최종 합의안에서는 이 문제가 관철되지 않아 야당이 유가족의 신뢰를 잃게 된 상황이라는 평가다. 다만, <한겨레>는 3면 보도에서는 야당이 유가족들의 반대에도 합의번복을 선택하기 보다는 유가족들에 대한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새누리당의 완강한 태도만 강화시켜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 1일자 한국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지면.
<한국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1면에서 야당이 사실상의 ‘보이콧’을 풀어 국회가 정상화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간 각 언론들은 식물국회는 안 된다는 둥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둥의 언사를 인용해가며 국회 공전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려왔다. 그러던 상황에서 어쨌든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돼 비쟁점법안이 일괄 처리되는 둥 수확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황을 평가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1일 중앙일보 4, 5면.
특히 <중앙일보>는 4면과 5면 보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 박영선 원내대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을 의회정치를 복원한 주인공들로 한껏 추켜세웠다. 1면의 <야당이 돌아왔다>는 헤드라인을 고려하면 기쁨으로 충만한 오늘이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유가족들이 여야 합의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중앙일보>의 이러한 ‘기쁨’은 어쨌든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한 고개를 넘겨 일부 법안이 처리되는 등 성과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 1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역시 돌아온 야당 덕분에 151일만에 민생법안이 처리돼 국회가 식물 상태에서 벗어났다며 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기사들을 배치했다. <한국일보>가 1면에는 이러한 측면을 반영한 기사를 배치했지만 3면에서는 여야 합의안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평가한 것과 대조되는 편집이다.
▲ 1일 조선일보 1면.
이 날 가장 흥미롭게 평가할만한 것은 <조선일보>의 1면 편집이다. <조선일보>는 1면에 <세월호법 여야 합의 유족들 세번째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사실상 유가족들의 강경한 입장을 비판하기 위한 제목 선정으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은 <조선일보>의 이 날 사설을 통해 더욱 강하게 뒷받침된다. <조선일보>는 이 날 <여야 합의 또 걷어찬 세월호 유족, 국민 ‘인내의 한계’ 넘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소수 강경파’ 유가족들이 각종 반 정부 집회를 앞장서서 이끌어온 단체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며 세월호 유족들이 우울한 국면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국민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유족들을 단원고 희생자 유족 중심의 대책위와 일반인 대책위로 나누고 이들을 또 소수 강경파와 다수 일반국민으로 나눈 것이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이 정의당 당원이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 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이와 같은 흥미로운 편집 방향은 그간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였던 정부와 보수세력을 ‘다수 국민’의 편을 대변하는 것으로 포지셔닝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들을 ‘불순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세련된 기동으로 읽힌다. <조선일보>가 소유한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리기사들의 폭행 시비에 대해 연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과 보수언론이 합심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고립시킨 후 야당의 백기항복을 유도했다는 일부의 평가가 부당해보이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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