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송아지가 어미젖 거부하다 죽어"…이주 원하는 주민들
윤나영 기자(=경주) 2014.09.18 07:55:32
30살 넘은 월성 원전 1호기가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경주 시내에서 버스로 2시간가량 더 들어가야 나오는 이 작은 마을은 을씨년스러웠다. 낡은 다방 간판이 간신히 자리를 지탱했고, 건물 곳곳에는 '임대' 혹은 '매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음식점에는 손님이 없었다.
17일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 마을 사람들 20여 명이 천막을 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대부분 60대~70대 노인인 이들은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에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지난 11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한 할아버지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원성을 쏟아냈다. "남한 사람들이 남한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요. 월성본부장이 대화를 안 해줘 가."
30년 수명을 다한 월성 원전 1호기는 잦은 사고로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1호기가 고장 나면 또 고치고, 작동하고 고치고, 작동하고 한다 아입니꺼. 자꾸 고장 나는데 위험하지. 근데 우리가 '위험하다' 카믄, 즈그(한수원 임직원)는 '안 위험하다' 카믄서 여그 안 살고 울산으로 나가 살아. 사택에 마누라, 자식을 안 데려옵니더. 우리는 삼중수소(방사능)를 코로 들이마시는데, 즈그들은 (원전에) 들어갈 땐 다 방진복 입고, 무장해 가 안 들어갑니꺼?"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김윤나영)
죽음의 땅, 죽은 바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죽음의 땅, 죽은 바다'라고 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일터를 빼앗겼다. 어부들도 일손을 놓았다.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는 최관두(68) 씨는 "옛날엔 조개도 캐먹었는데, 지금은 이 부근에서 회도 안 먹는다"고 말했다. 예전엔 해수욕장이 있어서 그래도 한철 장사는 했다던 이곳은 이제는 외지인들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작년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여기 횟집을 예약했어요. 그런데 막상 와서 여기에 월성 원전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일본인들이 사색이 돼서 그 자리에서 돈만 주고 차려놓은 회도 안 먹고 가버렸어요."
변삼식(59) 씨는 해마다 소 한 마리씩을 이유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큰 소 2마리는 웬일인지 사료를 안 먹고 말라서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수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여 봐도 소용이 없었다. 송아지 2마리는 어미젖을 거부하다 죽었다. "살려보려고 애를 썼는데"도 소 4마리를 잃은 그는 2011년부터 소 키우기를 포기하고 지금은 백수다. '원전 때문이려니' 한다.
▲ 월성원전 1~4호기. ⓒ프레시안(김윤나영)
▲ 월성원전 1~4호기. ⓒ프레시안(김윤나영)
사람도 시름시름 앓았다. 월성 원전 인근 바닷에가 사는 정연조(72) 씨는 2008년 아내를 위암으로 떠나보냈다. 자신의 건강도 불안하다. 그는 2011년 '경주시 월성 원전·방폐장 민간 환경감시기구'로부터 몸속에 방사능(삼중수소) 농도 측정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수치가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옆에 있던 주민이 거들어 말했다. "여그 집집마다 암 환자 없는 사람 있나?"
농성장에 있던 나아리, 나산리 주민 20명에게 물어보니, 그중 8명은 본인이나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있다고 답했다. 위암(62세·아내), 뇌종양(63세, 아내), 위암(남·본인·63세), 갑상선암(58세·아내), 위암(남· 본인·76세), 위암(60대 초반·남편), 폐암(71세·아내), 대장암(42세·아들), 폐암(67세·남편), 유방암(74세·본인) 등이었다.
한 할머니는 암 환자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용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옆에 있던 주민이 "저 분도 남편이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마음이 아파서 말 안 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뜬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주민도 많다고 했다.
박희순(62) 씨는 "집집마다 암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정부가 제대로 조사도 안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는 매일 삼중수소(방사능)를 들이마시고 사는데, 우리가 실험용인가? 마루타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월성 원전이) 내뿜는 삼중수소가 사람 인체 전체를 골병들게 하는 발암물질 아입니꺼."
▲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서 농성하는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서 농성하는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퇴근하는 임직원, 피케팅하는 주민들
주민들을 이주를 간절히 원하지만,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발이 묶였다고 호소했다. 참다 못 한 주민 73명은 지난 4월부터 '월성 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주대책위원회는 대화를 요청했지만, 월성본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김승환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8월 29일 윤청로 월성본부장과 만나 9월 5일까지 실무협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추석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어서 지난 11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생계를 잃거나 찾는 이가 없어 장사가 안 되는 주민들은 농성장을 지키는 게 요즘 가장 큰 일과가 됐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주민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도 양쪽에 서서 손팻말을 들었다. 주민들은 한수원 직원들이 출근할 때, 식사하러 나갈 때, 퇴근할 때에 맞춰 하루 세 번씩 피케팅을 한다고 설명했다. 풍물패가 '못 참겠다 짝퉁 부품, 월성 원전 폐쇄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풍물놀이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한 할아버지가 깃발을 흔들었다.
월성 원전에서 퇴근하는 한수원 임직원들의 차량이 줄을 이어 손팻말을 든 할머니와 깃발을 든 할아버지 사이를 빠져나갔다. 오후 7시께 긴 차량 행렬이 끝나자, 주민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털고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이 내린 나아리에 적막감이 맴돌았다.
▲ 17일 오후 6시 30분께 월성 원전에서 퇴근하는 차량들이 빠져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17일 오후 6시 30분께 월성 원전에서 퇴근하는 차량들이 빠져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피케팅하는 월성 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 피케팅하는 월성 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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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경주)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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