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딸과 이명세 손녀, 이제 친일은 스펙?
KBS 이사장된 이인호 황당 변명, ‘친일은 취직행위이자 일’
육근성 | 2014-09-11 12:17: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언론계에도 뉴라이트의 공습이 한창이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원로 이인호 전 아산정책연구원장을 KBS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방송통신위와 청와대, KBS가 하나가 되어 마치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신속성을 발휘한 것이다.
일제부역자 손녀이자 친일교과서 만든 이가 공영방송 이사장이라니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인호 씨를 KBS 이사로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그 다음날 위원회 소집을 요청했고, 지난 1일 위원회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사로 추천했다. 박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이씨를 이사로 임명했으며, KBS 이사회는 지난 5일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만 모인 자리에서 그를 새 이사장으로 호선했다. ‘친일 부역자의 손녀이자 친일교과서 논란의 핵심 이인호’를 공영방송 이사장에 앉히는 마지막 작업이 완료된 것이다. 추석연휴 직전이었다. 반대여론이 부담스럽긴 했던 모양이다.
어찌해서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일의 망령이 활개 치는 걸까. 일본군 중위 출신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고, 조선의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해 친일 반민족행위 704인에 포함된 春山明世(이명세)의 손녀가 공영방송 이사장이다. 골수 나치 부역자의 후손을 프랑스 공영방송 이사장에 임명한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이사장은 조부 이명세의 친일 행적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조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며 사신 것”이라며 조선유도(儒道)연합회 상임참사(사무총장)로 활동한 것은 “(조선유도연합회에) 취직해 일을 맡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런 식으로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고 강변했다.
조부 친일 행적 비호, 가증스러운 변명
가증스런 변명이다. 그의 조부 이명세가 말하는 유학은 조선 성리학이 아니라 일본 국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요구하기 위해 유교를 접목시킨 ‘일본식 유교’였다. 이른바 ‘황도유학’이다. 2009년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명세에 대해 ‘황도유학을 주장하고 일제 한반도 침략을 찬양했으며 수탈의 원흉인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의 공로를 칭송했을 뿐 아니라 징병제 실시에 적극 앞장선 친일파’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의신청도 기각된 바 있다. 이명세 측의 누군가가 ‘반민족행위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진상규명위원회의 ‘반민족행위자 결정’을 번복해 달라며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위원회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얘기다.
그는 해방 후에도 ‘친일행위자’의 무리에 속해 있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심산 김창숙 선생은 친일파가 판을 치고 있던 성균관을 정화하고 유림을 새롭게 하고자 유도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이승만 정권에게 심산 선생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일제 때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선생이 반독재 투쟁에도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명세 일파'가 친일파 윤우경이 내놓겠다는 기부금 받고 그를 유도회부회장 자리를 주자고 하자 심산 선생은 "친일파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며 "공맹(孔孟)의 도에 어긋난다"고 거부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명세 일파는 이승만 정권과 결탁해 심산 선생을 폭력으로 내몰았다.>
정통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 몰아낸 이명세
심산 선생은 왜경의 모진 고문으로 생긴 하체 장애로 ‘벽옹’(앉은뱅이 노인)이라고 불리던 독립투사다. 일제 경찰도 그의 올곧은 성품에 혀를 찰 정도였다고 한다.
1928년 10월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일 때였다. 변호인도 없이 법정에 나온 심산 선생에게 재판장이 본적이 어디냐고 물었다. 심산 선생은 “없다”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재차 묻자 “나라가 없는데 본적이 있겠느냐”며 오히려 재판장을 나무랐다. 그를 안타깝게 여긴 조선인 변호사가 변호를 자청하자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일제 법률을 부인하면서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얼마나 대의에 모순되는 일인가.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는 것은 치욕이다.”
맞다. 일제에 잡힌 독립투사는 ‘범법자’가 아닌 ‘포로’다. 이렇게 절개 높은 유학자를 폭력으로 몰아낸 이들이 바로 이명세 처럼 일제에 부역하다가 이어 이승만 독재정권에 충성한 친일 행위자들이었다.
<김창숙 선생 빈소 찾은 박정희(1962). 심산 김창숙 선생은 병문안 온 박정희를 '일본군 장교 출신과 마주 앉아 얘기할 수 없다'며 외면했다. (사진출처: 의성 김문 집성촌 블로그)>
심산 선생에 대해 잘 알려진 일화 하다 더 소개한다. 쿠데타를 성공시켰지만 아직 대통령 자리를 꿰차지 못한 박정희가 1962년 5월 심산 선생이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았다. 사회지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박정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심산 선생은 몸을 돌려 외면했다. 일본군 장교 출신과 마주앉아 이야기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명세 후손은 ‘명문가문’ 일제-독재에 충성한 대가?
1957년 이승만 독재정권은 유림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폭력으로 심산 선생을 몰아내고 유도회와 성균관대를 손에 넣었다. 이때 유림을 장악한 이들은 일제 때 경찰서장을 지내다 이승만 정권에 빌붙어 치안국장을 역임한 윤우경 일당들이었다. 이렇게 유림을 장악한 뒤 이승만은 유도회 총재에, 이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는 성균관대 이사장에, 이선근은 총장 자리에 올랐다. 이선근은 일제 때 만주에서 관동군에게 군량미를 납품하는 인물었으며, 이후 박정희 정권이 상납 받아 만든 영남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명세 후손 중에는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 일제 땐 일제 침략을 찬양하고 이승만 땐 독재정권에 충성하며 그 대가로 일군 가문이다. 아들 이종덕 씨는 조흥은행 임원과 세방석유 사장을 지냈다. 손자 이문호는 LG그룹 부회장 출신이고, 장손녀인 이인호는 78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KBS 새 이사장이 됐다.
명문가문 답게 혼맥도 만만치 않다. 손녀 이인호 이사장의 제부인 고현욱 씨는 경남대 부총장을 거쳐 현재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으로 있고, 고씨의 형은 대법관을 지낸 고현철 씨다. 손자 이문호 씨의 맏사위이자 손녀 이인호 이사장의 친정조카사위는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장남 권용현 씨다. 권 씨는 현재 청와대 정보방송정책담당 비서관이다.
‘친일’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일까. 친일 역사교과서 편찬에 앞장섰던 사람이 자신의 조부의 친일행적을 비호한다. 일제에 부역한 행위를 “취직했던 것” “일을 맡았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KBS를 거머줬다. 그를 임명한 이는 일본군 중위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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