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무민 마마’…국민 80%에 박수 받고 내려온 대통령
등록 : 2014.09.04 10:12수정 : 2014.09.04 10:57툴바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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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국민 엄마’로 불리는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12년 재임 기간 동안 복지와 고용 중심의 정책으로 핀란드를 살기 좋은 강소국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할로넨 전 대통령의 퇴임식.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포럼 기조연사 타르야 할로넨은 누구
* 무민 마마 :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엄마
“핀란드를 사업하기에 가장 적합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보고서에) 쓰여 있는데, 저는 사업가들에게 가장 좋다는 게 모두에게 좋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핀란드 경영인협회(우리나라의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표단에게 던진 말이다. 규제 완화를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재계 대표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을 때다. 그는 재계의 요구를 “특수한 이익단체에 관련한 문제”로 규정하고 “저의 판단 기준은 (사업가 단체가 아니라) 전체 국민입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오는 10월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22~23일)의 기조연사로 한국을 찾는 할로넨 전 대통령은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오늘을 일군 여성 지도자로 손꼽힌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삼림 외에는 자원이 많지 않은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다. 러시아와 스웨덴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은 역사를 갖고 있다. 핀란드는 할로넨의 재임 시절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교육경쟁력 1위 국가로 변모했다. 경제적으로도 1인당 국민소득 3만6000달러의 강소국을 일궜다. 세계에서 전·현직 여성 대통령과 총리는 100명이 넘게 나왔지만 할로넨은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았다. 2000년 50%를 조금 웃도는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퇴임할 때 지지도는 80%에 달했다.
용접공·재봉사 부모 둔 노동계급
의회 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36살 때 국회의원으로 첫 당선
미혼모로 낳은 아기와 등원도
재계에 “특수 이익단체” 못박고
“제 판단 기준은 전체 국민이다”
국가청렴도·교육경쟁력 1위 올려
‘사람 중심 리더십’ 밑거름으로
유일하게 재선 성공한 여성 리더
젊은 시절의 할로넨과 어린 딸.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그의 리더십은 별칭인 ‘무민 마마’(Moomin Mama)에서 잘 드러난다.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의 엄마라는 뜻인데, 무민 마마는 늘 가족들을 편안하고 다정하게 챙겨준다. 핀란드인들에게 무민 마마는 ‘케이크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엄마’로 통한다. ‘대통령으로서 모든 핀란드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할로넨의 기본적인 통치철학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할로넨은 좋은 리더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도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하고 또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리더는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퇴임한 뒤 집 근처 재활용 수거장에서 낡은 액자를 주워 가거나, 종종 혼자 천바구니를 들고 동네 슈퍼마켓을 돌아다닌다. 이런 소박하고 탈권위적인 언행은 핀란드인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평소 ‘리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례다.
그가 연말 각료회의 때 양말을 선물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각료들 한명 한명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건네주며 “나중에는 마음대로 교환해도 되지만 제 앞에서는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당부했다. 2000년 취임 직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평범한 행동’이 화제가 됐다. 집에서 쓰던 다리미를 가져와 직접 옷을 다렸고, 호텔 미용사를 보냈더니 “머리 손질은 내가 한다”며 거절했다. 그는 지금도 머리카락을 몇차례 빗어 올리는 게 머리 손질의 전부다.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이자 자신의 애칭인 ‘무민 마마’ 인형을 들고 있는 할로넨.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할로넨은 여성과 소수자 정책에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핀란드 여성의 1유로는 80센트와 같다는 말이 있다”(임금차별)며 여성 할당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현재 핀란드는 여성이 사주인 기업이 전체 기업의 33%이며, 200대 대기업의 직원 중 절반가량이 여성이다.
할로넨은 용접공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를 둔 노동계급 출신이다. 의회 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1979년 36살 때 국회의원이 됐다. 의원 당선 직전에 미혼모로 아이를 출산한 그는 모유 수유를 위해 갓난아이를 데리고 국회에 등원했다. 그는 “모든 여성은 세심한 엄마이면서 동시에 좋은 세상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전사입니다. 양성평등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라고 말한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할로넨의 국정철학에는 노동조합 변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의식, 동성애 단체의 회장직을 맡으며 함께한 소수자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 있다”며 “지난 세기에 군림하고 지배하던 리더를 대치하는 새로운 리더의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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