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4년 9월 6일 토요일

달의 미스터리, 뒷면 보기까지 35억년 걸렸다


원종우 Headshot 원종우 팬 되기 파토. 과학과 사람들 대표, 딴지일보 논설우원 이메일 게시됨: 2014년 09월 06일 14시 09분 KST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06일 14시 34분 KST 거의 매일, 고개만 들면 하늘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는 달. 달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신비한 존재다. 그래서 이 개성 강한 천체는 많은 신화와 스토리의 원천이 되었고, 고대로부터 인류의 문화와 예술,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는 많은 위성이 있다. 소행성대 너머 멀리 자리한 거대한 가스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각각 수십 개에 달하는 위성을 거느리고 있고, 이들의 위성은 지금도 계속 발견되는 중이다. 지구 지름의 절반 정도인 화성에조차 두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 하지만 이들 속에서도 우리 지구의 달은 유별난 존재다. 왜 그럴까. 위성치고는 엄청난 크기 일단 달은 아주 크다. 물론 태양계에는 가니메데, 타이탄, 칼리스토, 이오 등 달보다 덩치가 큰 위성이 여럿 있지만 이들은 목성과 토성 등 자신들의 모행성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 그런데 달은 지름이 자그마치 지구의 4분의 1이나 될 정도로 상대적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만약 목성에 이런 위성이 있었다면 해왕성보다도 많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태양의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목성 안쪽의 행성들 중 그럴듯한 위성을 가진 것은 우리 지구뿐이다. 수성과 금성은 위성이 아예 없고, 화성은 지름이 몇㎞에 불과한 두 개의 바윗덩이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달은 지름이 약 3500㎞나 돼서 화성 위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해 전까지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고, 지금은 왜소행성이 된 명왕성보다 더 크다. 그런데 지구의 무게와 중력을 고려했을 때 우리 달의 크기는 고작 지름 수십㎞ 정도가 적당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왜 지구는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달을 갖게 된 걸까. 그 비밀은 달이 생겨나게 된 과정에 숨어 있다. 약 46억년 전, 태양계는 생성의 파괴적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많은 성간물질들이 뭉쳤다가 흩어지면서 덩어리를 형성하고, 때로는 궤도가 겹치면서 충돌해 또 새로운 덩어리로 만들어지던 당시의 태양계는 지금의 안정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불타는 세상이었다. 그러던 중 화성만한 크기였던 초기 행성 '티아'가 그만 지구에 너무 가깝게 접근했고, 결국은 파국적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 엄청난 충격으로 티아와 지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면서 물질들이 합쳐지고 또 우주 속으로 뜯겨 나가게 된다. 그렇게 흩어진 잔해들은 지구의 중력에 다시 묶여 돌게 됐는데, 이 잔해들이 오랜 세월 지구를 공전하면서 다시 뭉쳐 천체를 형성해간 것이 바로 우리의 달이다. 이런 특별한 탄생의 드라마가 있었기에 다른 위성들과 비교해 월등한 몸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달은 실은 지구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달의 크기와 관련해서 더 신비한 점은 기묘한 우주적 우연으로 지구상에서 달의 크기가 태양과 거의 같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태양의 지름은 달에 비해 400배나 커서, 달이 손톱만한 크기라면 태양은 지름 4m의 거대한 공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태양은 달에 비해 거의 정확히 400배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이유로 지구에서 보는 크기, 즉 시지름은 달과 태양이 약 31분으로 거의 일치하게 되는데,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개기일식이 지구상에서만 관측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태양계 내 160개가 넘는 위성들 중 모행성과 이런 관계에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우리가 속한 은하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동일한 겉보기크기 덕에 우리 인간의 심리 속에서 달은 태양과 동등한 상징적 무게를 지닌 채 어둠과 밤을 주재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고,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신화는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적 세계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음과 양을 서로 균형을 이루는 힘으로 인식하고 그 조화를 통해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해석하는 독특한 철학은 우리가 바윗덩어리만한 위성 둘을 거느린 화성에 살았다면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default 아폴로 16호가 1972년 촬영한 달의 뒷면.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 우리는 달의 앞면만을 볼 수 있다. 매년 4㎝씩 멀어지는 달 이런 달도 언제나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티아와의 충돌로 만들어진 이래 달은 조금씩 지구에서 멀어졌고 지금 이 순간도 매년 4㎝씩 지구로부터 떠나가고 있다. 인류 문명이 유지된 기간 동안 알아볼 정도의 차이는 아니지만, 공룡이 보던 달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한가위 보름달은 휘황할 정도로 환하지만, 달은 해와는 달리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돌덩어리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은색 달빛은 모두 반사된 햇빛인데, 해와 달이 서로 정반대에 있고 지구가 그 가운데에 일직선상에 있을 때 한가위 달 같은 보름달이 만들어진다. 반면 지구와 90도를 이루면 반달이 되고, 달이 태양 쪽으로 있어 반사된 면이 아예 보이지 않으면 그믐달이 되어 사라진다. 이 사이클이 대략 29.5일에 한 번씩 반복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달에는 우리가 절대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뒷면이다.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따라서 우리는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이 새겨진 한 면만을 늘 본다. 그래서 인류가 달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1959년 소련의 무인탐사선 루나 3호가 달의 궤도를 돌며 첫 사진을 보냈을 때에 이르러서였다. 까마득한 옛날 지구에 박테리아가 처음 나타난 이래로,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달의 뒷면을 한 번 보는 데 장장 35억년이나 걸린 셈이다. 달의 뒷면이 가진 이런 신비함과 은밀함 때문에 자칭 유에프오(UFO) 접촉자인 조지 아담스키는 달의 뒷면에 풀이 자라고 외계인이 거주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고, 1970년대 영국의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는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을 통해 인간 심리와 사회의 그늘진 면을 달의 뒷면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듭된 유무인 탐사선의 조사로 달의 앞면과 뒷면 모두 정확한 지도가 작성돼 있고, '구글 문' 서비스를 통해 일반인도 접근이 가능하다. 달의 뒷면 모습이 밝혀진 이래, 주로 평평하고 낮은 앞면과 평균 고도가 높고 험한 산이 있는 뒷면의 지형이 왜 그리 다른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현재 유력시되는 학설 중 하나는 티아와 지구의 충돌로 인해 지금 달 지름의 3분의 1쯤 되는 작은 달이 하나 더 만들어졌고, 이 두 달이 비슷한 궤도를 돌며 긴 세월 동안 천천히 합쳐졌다는 것이다. 마치 치즈 두 장을 문질러 하나로 만들듯 앞면 쪽에서 크고 작은 두 달이 눌러져 하나가 됐기 때문에 앞면은 평평한 상태가 됐다는 말이다. 이 학설은 아직 더 구체적인 증거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지구와 다른 행성의 충돌로 만들어진 두 개의 달, 그리고 그 두 개의 달이 다시 뭉쳐지는 과정이 연상시키는 스케일과 드라마는 가히 환상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회자되는 달 착륙 음모론이 그것이다. 미국의 메이저 케이블 방송사인 <폭스 티브이>를 비롯해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들,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인류가 실은 달에 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중요하게 지적되는 '음모'의 증거 몇 가지를 반박해보자. 공기가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나부끼는 듯 보이는 이유는 그렇게 보이도록 위쪽으로 금속 바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한눈에 드러난다. 또 달에서 찍은 사진들의 배경에 별이 없는 이유는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찍기 위해 카메라의 노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도 밤에 인물사진을 찍으면 배경으로 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많은 이들이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광원이 태양 하나뿐이어야 하는 달에 여러 방향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문제도 지형적인 높낮이와 굴곡을 통해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 소위 음모의 증거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반박될 수 있는데도 의심이 끊이지 않는 점은 신기할 정도다. 특히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달에 간 것이 아폴로 11호 한 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총 7번의 시도가 있었고 고장으로 착륙하지 못한 13호 외에 6번의 달 착륙이 실제로 행해졌으며, 그 결과 12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을 밟았다. 만약 아폴로호 달 착륙의 실체가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네바다주 세트장에서의 촬영이었다면, 그런 조작을 굳이 예닐곱번이나 반복할 아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달 착륙 음모론에도 나름의 논리적, 심리적 배경이 없지는 않다. 1961년 5월25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가 미 의회에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달 착륙은 미국의 위신이 걸린 전 세계와의 약속이 되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최초의 우주여행 생물, 최초의 우주인 등 우주 경쟁의 모든 면에서 소련에 뒤처져 있었고 잦은 실패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인간의 달 착륙을 지상목표로 삼은 아폴로 계획은 그런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빅카드였던 것이다. default 아폴로 11호의 파일럿인 버즈 올드린이 달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 '달 착륙 음모론' 근거 없다 이렇게 냉전체제 아래서 자존심 경쟁의 의미가 있었던 만큼 당시 아폴로 계획을 수행하던 미 항공우주국의 예산은 미국 내 총생산의 4%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고, 수많은 고급인력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잦은 사고는 물론 인명의 희생도 감수하는 전쟁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약 정해진 기간 안에 달 착륙이 불가능할 경우 조작을 통해서라도 승리를 선언하는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름 60㎝도 되지 않는 금속 공일 뿐이던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를 비행한 지 불과 12년밖에 지나지 않은 1969년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사람 3명을 달에 보내고 귀환시킨다는 일이 과연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그리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선에서 쓸 만한 컴퓨터조차 없던 45년 전 옛날에 어떻게 그런 일이 실현됐을까. 그 비밀은 달이 생각보다도 우리에게 아주 가깝게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태양이나 직녀성, 안드로메다은하와 마찬가지로 신비한 천상의 존재지만, 실은 지구 둘레의 10배 정도 거리만 여행하면 도달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게, 생성 때부터 달은 우주의 심연 저편보다는 도리어 지구에 더 속해 있는 존재다. 그래서, 오래전 지구 반대편을 찾아 떠났던 마젤란이나 콜럼버스처럼 인류가 달에 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첨단의 과학기술보다 과감함과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비록 상상 속의 토끼는 사라졌더라도, 그 도전 덕분에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경이감과 명징한 과학적 진실의 빛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한가위의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Twitter에서 원종우 팔로우: www.twitter.com/patoworld 더 보기: 파토추석달원종우IT·과학달의 뒷면아폴로 11호블로그음모론루나 3호IT·과학허핑턴포스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