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일째 대답 없는 실종자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현장] 14번째 기다림의 버스, 팽목항으로 떠나던 날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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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06 08: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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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돌아와요!”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어서 돌아오세요…”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삼켜버린 바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하고 적막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였던 5일 자정,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다다른 시민들은 실종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50일째 아무 소식도 없는 야속한 바다에 대고, 여전히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열 명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 5일 자정에 맞춰,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 실종자 10명의 귀환을 바라며 '꼭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5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맞은편 대한문 앞에서 14번째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했다. ‘차끝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먼, 진도 팽목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6월 첫째 주부터 시작한 기다림의 버스는 묵묵히 진도로 향하고 있다. 초기만 해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러워 시민들끼리 팽목항에만 갔지만, 최근부터 꼭 진도 체육관에 들른다.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며 풍등을 날리는 행사도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됐다. 이제 가족들도 ‘기다림의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도 모르게 세월호를 잊고 있는 것 같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문 씨는 세월호 사고와 무관하고 시민단체에 소속돼 있지도 않은 시민이라며 자기소개를 짤막하게 한 후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메인 목소리로 겨우 꺼낸 말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였다.
김영문 씨는 “(세월호 참사가) 너무나 쉽게, 많이 잊혀지려고 하는 것 같다. 아직도 팽목항에 계신 분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죄송스럽게도 저는 이 정도의 큰 슬픔을 당해 본 적이 없어서…”라며 “여기 오기 전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는데, 와 보니 오히려 제가 위로받게 되고 깨닫는 것이 많아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아픔이 아닌 걸로 받아들이는 순간 아무 상관이 없어지더라. 이런 일을 국가가 방치하는 걸 떠나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게 너무 화가 난다”며 “지치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어가 같이 싸우고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LA에 거주하는 차옥자 씨는 20일째 한국에 머무르는 중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이 세월호 관련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그는, 짧은 일정상 팽목항은 못 가게 될 줄 알았으나, 기회가 닿아 기다림의 버스를 탔다.
차옥자 씨는 “원래 밥만 하는 아줌마들이었다. 연예인 얘기만 하고. 그런데 이제 앵그리 맘이 됐다. 사이트를 만들어 세월호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올린다. 다들 잠도 안 자는 것 같다. 언론 보도 등 기록을 속속들이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다 보니 밖에서 볼 때 세월호 문제는 오히려 클리어하다. 그런데 한국에 전화를 하면 엉뚱한 소리만 하는 거다”라며 “언론에 광고도 내고 그러다 보니 언론 보도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 진도 실내체육관 내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서명용지도 보인다. (사진=미디어스)
오정화 씨는 “시간이 많아서 여기저기 나가며 몸으로 때우고 있다. 용산참사 미사도 가고 강정마을 관련해서 뭐가 있을 때도 나갔었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오늘 기다림의 버스에서도 몇몇 보이더라”라며 “그걸 보니 우리가 참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에 살고 있는 김낙현 씨는 “사고 전에는 버스에서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꽤 많이 봤는데 사고 이후에는 그 수가 확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계속 고민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적어도 팽목항이나 광화문에 직접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 보지도 않고 들은 걸 그저 전달하는 건 잘못이라고 봤기 때문”이라며 “제도가 개선돼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시민들의 ‘성숙’이 있고 나서야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어서 돌아오세요!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팽목항에 울려퍼진 기다림의 약속
오전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진도에 닿았다. 진도 실내체육관은 조용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추석 명절은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며 만류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끝끝내 집에 보냈다. ‘기다리는 팽목항 기다림의 버스’라는 검은 티를 맞춰 입은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을 실종자 가족들은 밝은 얼굴로 맞았다. 이미 안면이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자주 보네”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먼저 와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김밥을 먹고 있던 가족들은 떡이며 과일이며 체육관으로 온 선물을 아낌없이 건넸고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7시 50분께, 광주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 2호도 도착했다. 다 같이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에 보낼 ‘귀환 편지’를 썼다. 팽목항에 들르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샛노랗던 리본이 검게 변해 버렸다는 말에, 새로 달 리본에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는 문구를 써 내려갔다.
▲ 서울, 광주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에 보낼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팽목항은 한적했다.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켜 둔 연등과 리본, 현수막들이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을 맞았다. 생전에 쓰던 가방이 걸려 있기도 했고, 김과 포도, 과자 등 좋아하는 음식으로 꾸민 조촐한 상차림도 눈에 띄었다.
이날 하늘나라 우체통에는 대통령의 응답을 기다리며 청와대 앞에서 거리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편지도 도착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 대신 읽은 이 편지는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는 “감히, ‘가족’이라고 말씀드려 본다. 아이들이 맺어준 가족이 분명하니까…”라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진도 팽목항에, 체육관에 계신 분들과 마음은 같다. 저희보다 더 아픈 여러분들이기에 차마 위로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어 죄송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힘을 내셔야 한다”며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분노하고 뛰쳐나가야 한다”며 실종자 가족들을 독려했다.
▲ 광주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온 문정은 씨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광주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온 문정은 씨는 “올해 29살인 대한민국의 보통 청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자성과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과거 수많은 대형 참사 이후 과연 대한민국은 한 발짝이라도 나아갔는지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서해 페리호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씨랜드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제가 기억하는 것도 이럴진대 도대체 그 사고 이후에 우리는 어떤 반성과 대안을 모색했는지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짐해 봅니다. 140여일이 지난 세월호 참사를 이제는 잊어버리자고 삶을 챙기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사가 하루라도 빨리 잊혀지길 바라는 그 모든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과 싸우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고 누가 잘못해서 어떤 처벌과 책임을 다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세월호에 탑승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실과 진상을 밝히는 첫 단추인 수사와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잘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습니다. 해년마다 4월 16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놓고 무엇이 변했는지 꼬박꼬박 기록하고 점검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까지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기다림에 함께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돌아올 수 있게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돈보다 생명을, 돈보다 안전을, 그리고 저희 욕망과 욕심을 다스리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2014년 9월 5일 팽목항에서”
이후에는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풍등 날리기 행사가 있었다. 다행히 이날은 드물게 날씨가 좋았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적당했다. 실종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적힌 풍등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실종자 가족들은 어느 때보다 풍등이 환했고 멀리 날아갔다며 안도했다. “추석 전에 돌아올 거 같다”며 기대를 비친 가족도 있었다.
▲ 실종자 가족들이 풍등을 날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이날의 행사는 10명의 실종자들에게 “꼭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 2학년 1반 조은화, 2학년 2반 허다윤, 2학년 3반 황지현, 2학년 6반 남현철, 2학년 6반 박영인, 단원고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일반인 승객 권재근 씨, 권혁규 씨, 이영숙 씨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5일은 조류 흐름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의 마지막날이었다. 소조기에 수색 성과가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잊지 않고 같이 기다리겠다’는 다짐을 되새긴 채 참가자들은 팽목항을 떠났다.
▲ 5일은 축구 국가대표 친선전이 열렸던 날이었다. 그러나 KBC에 맞춰져 있던 채널은 NEWS 9이 시작하는 9시께 JTBC로 바뀌었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JTBC NEWS 9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진도 팽목항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사진=미디어스)
▲ 팽목항을 밝히고 있는 연등 (사진=미디어스)
▲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 쪽에 걸려 있다. (사진=미디어스)
▲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팽목항을 다녀간 사람들이 보낸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편지가 수백 통 쌓였다. (사진=미디어스)
▲ 세월호 참사 실종자들의 귀환을 빌며 날렸던 풍등은 어느 때보다 하늘 높이 올라갔다. (사진=미디어스)
▲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며 준비한 음식들 (사진=미디어스)
▲ 한 실종자 가족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며 띄운 풍등이 날아간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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