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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7일 화요일

“강제노역 아냐” 오리발, 정부 일본 꼼수 몰랐나?


일제 만행 현장이 세계유산? 정부의 외교적 야합이자 굴욕
육근성 | 2015-07-07 15:42:0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국민이 징용되어 가혹한 조건으로 강제 노역을 했다.”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대사 / 세계유산 등재 결정 직전)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불법적 형태로 강제노동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관방장관-외무장관 / 등재 결정 직후)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은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룬 값진 성과...우리의 우려가 충실히 반영된 형태로 (등재가)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 등재 결정 직후)

결정 전 “강제노역” 결정 후 “아니다”
일본 군함도 등 23개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을 위한 막바지 회의가 열렸던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결정 심사가 진행되자 “조선인 징용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막겠다”던 한국정부는 일본대표단과 절충을 벌였다.
일본대표단이 전체 회의석상에서 ‘한국인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이 발언 내용을 등재 결정문에 넣어 달라는 게 한국정부의 요구였다. 일본정부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꼼수를 부렸다.
일본은 그 내용을 본문이 아닌 ‘주석’에 반영하자고 했고, 한국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다. 양측이 절충한대로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대사가 ‘강제 징용과 노동’ 문구가 들어간 발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유네스코는 일본의 요구대로 23개 시설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일본의 오리발… 외교부 일본 꼼수 몰랐나?
결정이 되자마자 일본은 숨겼던 발톱을 드러냈다. 일본정부 대변인 스가 관방장관은 ‘유네스코 일본대사의 발언문 내용이 조선인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노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강제징용 배상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최종 해결된 것”이라고 다시 못 박았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조선인이 의사에 반해 일본에 온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강제노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강제징용과 강제노역을 인정해놓고 등재가 결정되자마자 완전히 말을 바꾼 것이다. 단물만 쏙 빼먹고 오리발 내민 일본... 한국정부가 또 당한 건가? 아니면 짜고 친 건가?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일본측 발언문/영문)
강제징용과 노역을 인정하는 문구(against their will, forced to work)가 일어판에는 ‘의사에 반해 일본에 와서 일하게 됐다’ 등의 유화된 표현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래도 국민 앞에선 자화자찬
이러는 동안 한국 외무부는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강제노역’ 사실이 등재문에 포함됐다며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은 정상외교와 장관회담, 국제사회 공조를 비롯한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거둔 성과”라고 자랑하기 바빴다.
황당하다. 본문도 아닌 각주에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한 둘을 넣은 게 그토록 대단한 성과란 말인가?
일본정부의 ‘오리발’이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영문표현(forced to work)은 국제 관례상 ‘강제성’을 뜻하기 때문에 영어원문 그대로만 믿으면 된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일본은 아니라는데 우리만 그렇다고 믿으면 된단다. 어떻게 이 따위 말을 하나. 이러니 한국외교가 국제무대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거다.
외교부의 ‘지독하게 순진한 해명’은 계속됐다. 이런 일본이 등재 결정 직전 밝힌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는 정보센터 개설’ 약속을 지키겠느냐는 질문에 “후속조치 이행 여부는 일본 양심의 문제”라고 답했다. 외교부가 일본정부에 맞설 카드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둔하고 답답한 외교부’가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6일 일본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은 없었으며 일본대표의 발언도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주장을 논리화해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앉아서 부인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발로 뛰며 홍보전을 벌이겠다는 얘기다. 외교부는 그제야 허둥지둥 움직임을 보였다.
<자화자찬하던 외교부, 비판 쏟아지자 부랴부랴 '팝업창' 띄워 국민설득에 나섰다.>

황당한 외교부… 당했나? 짜고 쳤나?
7일 외교부는 홈페이지 팝업창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등재에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노역한 역사’를 반영”이라는 한글로 된 게시물을 올렸다. 영문본에는 ‘강제징용과 강제노역’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정부와 드잡이를 할 것이지 왜 국민을 설득하려 드나?
결국 잔혹한 착취와 비인간적 만행이 자행됐던 강제노역 현장이 “인류를 위해 보존해야 할 보편적 가치의 장소”로 둔갑했다. 이러는데 한 몫을 한 게 바로 박근혜 정부다. 일본 우익이 염원해온 ‘과거사 지우기’에 한국정부가 나서서 거들어 준 셈이 됐다.
<이국언 대표 페이스북>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이국언)은 “일제 강제징용 시설이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그 시설물들의 부가가치만 높여준 꼴을 자처했다”며 “이번 결과는 역사 인식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굴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1938년부터 조선인 강제징용 야욕을 드러낸 일제는 1941년 노무조정령과 총동원연맹, 1942년 근로보국대 창설, 그리고 마침내 국민징용령 확대적용(1944년)을 통해 약 8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1965)에 서명하면서 103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더니 그의 딸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현장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동의해 줬다. 굴욕적이다.
아무리 말 바꾸기 잘하는 일본이라도 외교적 합의를 단 몇 분 만에 뒤집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해도 뒷탈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다면 몰라도… 이런 확신을 일본 정부에게 준 이가 누굴까? 어떻게 일본이 외교적 상식을 깨도 그만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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