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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1일 금요일

박근혜 뽑았던 농민, 벼 들고 상경한 까닭

[현장]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전국농민대회, 1000여 명 농민 참가

15.07.31 21:47l최종 업데이트 15.07.31 21:5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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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쌀용 쌀 수입에 분노한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미국산 칼로스 쌀 포대를 망치로 내리치고 있다.
ⓒ 유성호

"우리 쌀 반드시 지켜 주겠다드마 잘 지켰네, 잘 지켰어! 우리 집에 못 판 쌀이 쌓여있어!"

'두 줌'의 벼를 들고 여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남윤관(61)씨는 "벼 두 줌이 밥 한 공기인데, 100원이야 100원!"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현재 산지 쌀 한 가마니(80kg) 값은 약 16만 원이다. 한 가마니로 150공기의 밥을 지을 수 있으니, 벼 '두 줌'은 약 100원인 셈이다. 그는 이 가격이 1995년 쌀값과 같다고 주장했다.

1000여 명의 농민이 31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23일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식품부)의 '밥쌀용 쌀 입찰공고'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우리 쌀이 남아도는데도 미국 눈치 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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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농민대회,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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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쌀 손수레에 싣고 정부서울청사로 향하는 농민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한 농민이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의 가면을 쓴 채 수입쌀을 손수레에 싣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국내 쌀값 폭락과 쌀 재고 문제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밥쌀 수입을 강행하는 것은 정상적 정부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며 "정부의 밥쌀 수입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오는 11월 14일 10만 농민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수입쌀은 두 종류로 나뉜다. 밥쌀용과 가공용이다. 밥쌀용은 말 그대로 밥 짓는 데 사용된다. 막걸리 등 쌀을 넣은 가공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가공용이다. 밥쌀용은 실제 밥상에 올라가는 것이므로 품질이 좋고 가격이 높다. 따라서 밥쌀 수입은 쌀값이 정해지는 데 중요한 요소다.

쌀 시장 개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관세를 매기거나 의무수입물량을 정하는 것이다. 수입쌀에 부과하는 관세의 수준을 정하는 방식이 쌀 관세화이다. 다른 하나는 정해진 물량만큼 쌀을 수입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쌀 관세화 이전까지 한국은 의무수입물량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중에서도 30%는 반드시 밥쌀용을 수입해야 했다.

지난해 정부는 쌀 관세화를 추진했다. 513%의 관세를 매겨 쌀을 수입하겠다는 '양허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지난해 9월 제출했다. 이때 양허표에서 30%의 밥쌀용 쌀 수입을 비롯한 의무 조항 또한 삭제되었다. 그래서 관세화로 인해 밥쌀 수입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쌀 수입을 계속 추진해 농민들이 화가 난 것이다. 올해는 쌀 수입을 두 차례 시도했다. 지난 5월 정부는 쌀 수입을 추진했으나 농민들의 반대로 인해 유찰되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는 밥쌀용 3만 톤을 포함한 쌀 4만1000톤을 수입한다는 구매입찰 공고를 지난 23일 냈다.

"나도 박근혜 뽑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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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농업 챙기겠다는 약속 이행하라"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한 농민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적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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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써 키운 벼 뽑아 집회 참석한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여당 대표가 미국에 가서 하는 짓 보셨습니까? 우리나라 여당 대표 맞습니까? 그러니까 미국이 쌀 사라고 얘기하면 밥쌀 수입하지 않겠다던 우리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 이동필 장관은 '미국 쌀 판매과장'입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마이크를 잡는 순간부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13% 관세율로 쌀 관세화를 했으면 의무수입을 없애는 게 주권국가의 자세"라며 "우리나라에 쌀이 남아도는데도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밥쌀을 수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여주 농민회의 박아무개(63)씨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에 새누리당이 온 농촌 지역을 돌아다니며 우리 쌀을 지켜내겠다고 홍보했다"라며 "나도 박근혜를 뽑았었다"라며 탄식을 했다. 이어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노인들도 이 사안만큼은 비판하고 있다"라며 "이제 대놓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는 농민 단체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3학년 남아무개 학생은 "지난 5월에도 (시위하러) 서울에 올라왔는데, 또 올라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 꿈은 농사를 짓는 것"이라며 "수시 합격한 대학교 학과도 농사 관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사를 공부하기도 전에 쌀값 폭락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상경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답게 살려고 농사지어도 남는 것은 쭉정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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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위해 거리로 나온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집회 현장은 농사꾼 특유의 흥으로 메워지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하던 중 한 아이가 벼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동필 장관의 사진을 내려쳤다. 농민들은 박수를 치며 다 같이 함성을 질렀다. 농민들은 서로에게 "노래 한 소절 해보라"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한 농민들은 수입 쌀 여러 포대를 바닥에 깔고 큰 망치로 내리쳤다. 쌀 위에는 이동필 장관의 사진도 함께 놓여 있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청사 앞에 있지만, 사실은 미국 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같다"라며 "한국과 미국의 대표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두 대표가 나와 협상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다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밥쌀 수입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아낼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라며 "우리는 11월 14일 10만 농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선포했다.

농민들은 이날 집회 현장을 '아스팔트 농사'라고 표현했다. 집회 중엔 수시로 농민들의 노랫가락이 곳곳에 퍼졌다. 마지막 정리 집회 또한 노래로 마무리됐다.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사람답게 살겠다고 죽자사자 일해도 남는 것은 쭉정이뿐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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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농민대회, '밥쌀 수입 중단하라'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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