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흡사한 어두운 계곡에 둥지 새끼 4마리 성공적으로 길러
날씨 가물어 지렁이 대신 메뚜기를 주 먹이로, 기후변화로 번식지 북상
» 짧은 목을 한껏 치켜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팔색조.
» 가평군 계곡의 팔색조 둥지(위). 제주도의 둥지(아래)와 계곡 환경이 매우 비슷하다.
팔색조의 깃털은 무지개와 같은 선명한 밤색, 검은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 붉은색, 흰색 그리고 파란 형광 색을 띤다. 다른 새와 결코 혼동할 수 없는 모습이다. 팔색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철새의 하나다.
그런데 이곳 팔색조는 지렁이보다 메뚜기를 주로 잡아다 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곤충류와 작은 파충류를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팔색조는 지렁이를 선호해 주식으로 먹고 새끼를 키우는 것이 보편적이다.
» 황급히 나무위로 도망가는 다람쥐.
날씨 가물어 지렁이 대신 메뚜기를 주 먹이로, 기후변화로 번식지 북상
» 새끼에게 줄 메뚜기를 물고 있는 팔색조. 세계적 보호종이다.
지난 7일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남양주시 김응성 지회장과 유회상 자문위원으로부터 경기도 가평군 야산에서 팔색조가 번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봄과 가을 통과시기에 팔색조가 가끔 관찰된 사례가 있고 새끼를 발견한 적이 최근에 있지만 경기도 지역에서는 번식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번식은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팔색조는 깃털은 화려하지만 숲속에서 은밀히 움직이면 주변 색과 어우러져 잘 보이지 않는다.
» 주변을 살피는 팔색조. 매우 조심스러운 새이다.
그동안 경기도 지역에서도 번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몇 년간 찾아보았지만 개체수도 적고 경계심이 강한데다 은밀하게 움직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팔색조의 둥지를 찾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경기지역에서 번식한다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 팔색조는 이동할 때 주변의 작은 바위를 정거장처럼 이용한다.
» 팔색조 부부가 만나는 한 때. 팔색조는 암수가 모두 비슷하게 화려하다.
경기 내륙에서 번식하는 팔색조의 생태를 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지난해 어떤 영문인지 알1개와 함께 둥지를 포기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경기 내륙에서 팔색조가 번식할 것이란 확신을 갖게 했다.
7월14일 둥지를 튼 곳은 험준한 계곡을 40분가량 오른 곳이었다. 무더위에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사람들이 아예 찾지 않는 깊숙한 계곡의 어두운 비탈에 팔색조의 둥지가 있었다. 위장이 얼마나 완벽한지 바로 앞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주 맑은 날씨였지만 계곡 바닥은 어둑했다. 숲이 우거져 햇빛이 잘 투과하지 못해서다. 서식지 환경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제주도의 번식지 환경과 너무나 흡사했다. 나무의 종류만 다를 뿐이었다.
» 바위로 올라서려는 팔색조 지렁이와 곤충을 함께 물었다.
» 바위에 올라선 팔색조.
팔색조 새끼 4마리가 태어나 있었다. 처음 발견한 다음날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태어난 지 7일 정도 돼 보였다. 엿새 뒤면 둥지를 떠날 것이다. 팔색조는 18일 정도 알을 품고 깨어난 새끼가 둥지를 떠나기까지 12~13일 걸린다.
둥지는 돔 모양인데 외부는 나뭇가지로 만들고 마른 나뭇잎으로 위장한다. 들머리 가까이엔 마른풀로 마무리를 하고 안쪽에는 가는 뿌리로 둥지를 틀고 알자리엔 이끼를 깐다. 팔색조는 둥지를 틀 때 주변을 치밀하게 살핀다.
» 가까운 거리는 날지 않고 통통 뛰어 이동하는 팔색조.
» 나무위에서도 이동할 때는 가볍게 뛴다.
» 팔색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색깔의 깃털이 온몸을 덮고 있다.
위협요인은 없는지 먹이는 풍부한지 사전에 파악한다. 또 빗물에 비탈의 둥지가 쓸려 내려가지 않고 동물들이 지나가지 않는곳 을 택한다. 바위나 나무위에 둥지를 짓기도 한다. 둥지를 지은 뒤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주로 땅에서 은밀하게 생활하며 새끼를 키운다.
» 둥지 주변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날갯짓으로 경고를 한다.
» 경고!
» 날갯짓은 둥지 주변의 침입자가 물러설 때까지 계속된다.
머리가 크고 짧은 목과 짧은 꼬리, 유난히 긴 다리와 통통한 몸매인 팔색조는 땅에서 주로 생활해서인지 나는 모습은 왠지 어설퍼 보인다. 오히려 땅이나 바위, 나뭇가지를 오가며 통통 튀는 움직임이 더 민첩하다. 긴 다리와 탄력적인 체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새들과 다른 특징이다.
» 땅으로 이동하여 바위에 앉아 둥지에 가까운 횃대로 올라가려하는팔색조.
» 힘차게 횃대로 날아오르는 팔색조.
» 횃대로 올라온 팔색조.
» 쏜살같이 둥지로 향하는 팔색조. 민감한 장소로 향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동작이 매우 민첩하다.
번식지는 어둡고 습기가 적당해야 한다. 새끼를 기를 때 지렁이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지렁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그렇다. 팔색조는 둥지로부터 반지름 약 20m 거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지렁이를 잡아온다.땅위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에 위협요인이 많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게 위해서다.
» 자개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팔색조의 깃털.
» 먹이를 물고 있지 않은 팔색조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 깃을 단장하는 팔색조.
사냥 행동도 독특하다. 약간 아래로 굽은 튼튼한 검은 부리로 낙엽을 들쳐가며 잡은 지렁이를 한 움큼 모아 입에 문다. 잡은 지렁이를 잠시 땅바닥에 두고 다른 지렁이를 재빨리 사냥한 뒤 먼저 잡은 지렁이와 합쳐 새끼가 먹기 좋도록 다듬는다.
먹이를 문 다음 종종 걸음으로 둥지 주변으로 향해 둥지와 가까운 횃대에 올라서서 둥지로 날아든다. 먹이는 새끼들에게 차례로 주고 새끼 분변을 가지고 나온다.
» 먹이를 주고 새끼의 배설물을 받아 무는 팔색조.
» 분변은 멀리 내다버린다. 냄새로 인해 다른 동물들이 둥지로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속된 가뭄으로 인해 계곡의 물이 마를 정도였으니 지렁이가 건조해진 낙엽 밑에 있지 않고 땅속 깊이 들어갓을 것이다.
찾기 어려운 지렁이보다는 곤충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역시 지렁이를 사냥하듯 곤충을 무더기로 입에 물고 땅바닥에 놓았다 물었다 수차례 반복하며 다듬어 새끼들에게 차례로 나누어 준다.
» 지렁이처럼 여러 마리의 메뚜기 등 곤충을 입에 가득 문 팔색조.
»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전 팔색조 부부가 횃대에서 만났다.
» 지렁이가 부족하여 곤충을 사냥하여 부리에 잔득 문 팔색조.
팔색조 부부는 언제나 먹이를 함께 가져와 주위를 살핀 다음 한 마리가 먼저 둥지로 들어가 먹이를 주는 동안 배우자는 주위를 살핀다. 상대가 둥지에서 먹이를 주고 떠나자마자 신속하게 교대를 한다.
모든 새들이 그렇듯이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순간에는 철저한 경계를 한다. 먹이를 먹이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 곤충과 지렁이를 부리에 물고 있는 팔색조,
» 새끼를 기르는 어미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 커다란 지렁이를 한 마리만 물고 오른 팔색조.
7월16일 계속해서 다람쥐 가족이 나타나 둥지 주변과 팔색조가 이동하는 횃대와 바위를 오가며 이리저리 뛰며 난리다. 어디선가 팔색조가 쏜살같이 나타나 다람쥐를 위협한다.
팔색조는 다람쥐가 눈에 거슬리고 혹시나 새끼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안절부절하며 날개를 펴고 위협적인 몸짓으로 다람쥐에게 계속해서 경고를 보낸다. 결국 다람쥐들이 자리를 피한다. 자주 다람쥐가 이곳에서 목격된다. 팔색조에겐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 불청객 다람쥐가 나타나 여유를 부린다.
» 쏜살같이 나타나는 팔색조.
» 날갯짓으로 다람쥐에게 경고를 하는 팔색조.
7월18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그늘진 계곡이지만 열기가 대단하다.
팔색조도 먹이를 나르느라 무더위에 지친 듯 목욕을 하고 나타났다. 먹이를 물고 나뭇가지와 바위를 오가며 젖은 몸을 말린다.
» 목욕을 한 듯 온몸이 푹 젖은채 먹이를 물고 나타난 팔색조 어미.
» 젖은 깃털을 털어 말린다.
» 이제 다 말랐다.
7월20일 비가 내린다. 어미는 작은 먹이로 새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자주 둥지를 찾지도 않는다. 새끼를 밖으로 유인하려는 낌새가 보인다. 저녁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이소는 하지 않았다.
» 새끼가 눈에 띄게 컸다.
7월21일 10시께 팔색조 둥지에 도착했다. 이미 둥지는 비어 있었다. 어제 촬영을 하며 새끼들이 내일이나 모레쯤 둥지를 떠날 것이라고 한 예측이 들어맞았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뭇가지 위에 둥지 밖을 나온 새끼가 보인다. 아직은 새끼에게 계곡이 낯설지만 내년에 이들이 다시 이곳에 찾아와 화려한 자태를 뽐냈으면 좋겠다.
» 둥지 밖으로 나온 팔색조 새끼.
» 다정한 팔색조 부부. 이들이 힘을 합쳐 무사히 새끼를 길러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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