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13 20:13
최종 업데이트 15.07.13 22:08
"사고 후 팽목항에서부터의 기억은 괴롭지만, 이건 오롯이 아이와 지낸 시간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라 괴롭지 않았어요. 사실 유족간담회 등 많은 장소를 다니지만, 어딜 가서도 우리 윤민이 자체에 관해 얘기할 기회는 많지 않거든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고 최윤민 학생(단원고 2학년 3반)의 어머니 박혜영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의 생전 삶을 기록으로 복원해내는 약전(略傳) 집필이 올해 초부터 진행 중이다. 약전은 "아이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하던 박씨는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윤민이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다가 끝내 울먹였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고 최윤민 학생(단원고 2학년 3반)의 어머니 박혜영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의 생전 삶을 기록으로 복원해내는 약전(略傳) 집필이 올해 초부터 진행 중이다. 약전은 "아이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하던 박씨는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윤민이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다가 끝내 울먹였다.
▲ '짧은, 그리고 영원한 너희들의 삶'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의 생전 삶을 기록으로 복원해내는 약전(略傳) 집필이 올해 초부터 진행 중이다. 올해 말 총 12권으로 출간될 이 책은, 내년 초 단원고 2학년 희생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 때 헌정된다. | |
ⓒ 유시춘 |
<짧은 그리고 영원한(가제)>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말 출간 예정인 이 책의 집필에는 작가 총 126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작업을 처음 경기도교육청에 제안한 뒤 활동을 이끄는 유시춘 소설가(66세,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는 "국가의 무능으로 인해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죽어간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었고, 그들이 잊히지 않도록 할 기억 투쟁의 방법을 고민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혔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누나이기도 한 유씨는, 1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는 반세기 동안 오로지 경제성장만 외치며 달려온 사회에 던지는 경고"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개개인이 어떤 희망과 절망을 안고 살았는지를 기록해 근육과 속살을 채우는 것이 작가들의 소임"이라고 덧붙였다.
집필진에는 동화작가, 소설가 등 직업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여성이 많다. 유씨는 "작가들은 대부분 엄마로서 '새끼 잃은 어미의 심정'으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좀 천천히 성장하더라도 장애인 등 소수자를 보듬고 함께 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 12권으로 나올 책은, 내년 초 단원고 2학년 희생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 때 헌정된다.
"어둡고 슬픈 참사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했다"
▲ 유시춘 작가. 사진은 2011년 4월,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김은숙씨를 위한 음악회에서 응원의 말을 하고 있는 유 작가의 모습. | |
ⓒ 연합뉴스 |
- 집필 작업은 어떻게 처음 제안하게 됐나.
"제가 딱 희생 학생들 비슷한 나잇대 아이들을 14년 동안 가르쳤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라가 왜 이 꼴이 되었나, 내 책임은 없나' 싶어서, 한동안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또래 아이들을 보지 못할 정도로 자책감이 컸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에 다다르는 나라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저는 해난사고는 부패한 회사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이번 사건은 재난당한 국민을 구해야 할 의무를 국가가 저버린 것으로 국가의 범죄라고 봤다. 국가의 무능으로 인해 먼저 가버린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었고, 아이들을 잊히지 않게 할 기억투쟁의 방법을 고민했다."
- 본인이 직접 모은 작가만 총 125명이다.
"모으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제가 2007년쯤인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각 지역·분야별로 기록해 책을 기획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엔 알고 있는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 처음엔 여성잡지 작가들이 대거 지원해 60여 명 정도가 자원했지만, 그 외에는 제가 이메일을 길게 써서 읍소하다시피 했다."
분량은 원고지 기준 학생 40매, 교사 80매로 정해져 있지만 형식은 다양하다. 작가가 유족들을 인터뷰한 뒤 인물의 생애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고르는 것. 현재까지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소설과 동화, 일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원고 70편 정도가 완료됐다. 7월 말까지 1차 마감을 거친 원고들은 9월 말에 한 번 더 탈고된다.
- 책임자로서 약전을 최종 검토할 텐데,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면.
"충격적이었다. 경제 수준이 세계 10위권인 나라에서 이렇게 가난한 아이들이 있나 싶었다. 한 학생은 1주일에 3000원, 그러니까 하루 500원의 용돈으로 살기도 했더라. 한 부모 가정들도 많았다.
가장 가슴이 아픈 건 외동아들·딸을 잃은 경우다. 이 경우 대부분 부모들은 생업을 아예 접어버린다. 원래도 2~3평 되는 공간에 세탁소, 과일가게 등 작은 자영업을 했던 분들인데 다 문을 닫아버렸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총 학생 25명 중 한 명만 살아남은 반도 있다. 그 학생은 결국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의미는 뭐라고 보나.
"'혹한기 한 걸인이 얼어 죽어도 모두의 책임이 되는 사회가 가장 도덕적인 사회'라는 톨스토이의 말이 젊은 날 제 가슴을 쳤다. 지난해 4월, 304명이 수장당해 가는 것을 우리 사회가 실시간으로 지켜보지 않았나. 이게 국가인가 싶다. 저는 이번 사고가 반세기 동안 오로지 돈과 경제성장만을 추구한 사회에 던지는 총체적인 경고이자 적색 신호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좀 천천히 가더라도 약자,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돌아보면서 가라'는 가장 비극적인 경고문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역사적으로는 사실관계라는 뼈대가 남겠지만, 우리는 (희생된) 아이들이 어떤 희망과 절망을 안고 살았는지 보여주며 근육과 속살을 채우는 게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 본인이 집필하는 데 있어 중요시한 부분이 있다면.
"저는 당시 2학년 1반과 3반을 담당하던 교사 2명과 학생 1명을 맡아 인터뷰했다. 교사 2명도 25세, 28세로 아이들과 진배없이 젊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을 가장 현실과 가깝게 쓸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또 하나 작가들이 합의한 부분은, 어둡고 슬픈 참사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16세 아이의 밝고 아련한, 수학여행 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실 그래서 더 슬프다. 원고는 모두 '엄마, 나 수학여행 갔다 올게' 하며 손 흔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죽은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자"
▲ "엄마아빠, 잘 다녀왔습니다"... '꿈으로 가는 제주여행'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261명의 삶을 복원해내는 약전 집필이 진행 중이다. 활동을 이끄는 유시춘 소설가(66세,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는 "아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할 기억 투쟁의 방법을 고민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사진은 안산 합동분향소 출구에 걸린 걸개그림으로, 생전에 제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꿈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 |
ⓒ 박호열 |
- 김초원·이지혜씨는 기간제 교사였다는 이유로 순직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안 그래도 그 얘기를 듣고, 전 국가인권위 위원으로서 도움이 될까 싶어 교사분들 이야기를 쓰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희생된 교사들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교사 일을 했다. 이건 일을 덜 해서도 아니고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건데, 국가가 할 짓이 못 된다.
논란의 소지는 있겠지만 제 관점은 이렇다. 우리 헌법에 '성별·종교·나이·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는데, 이렇듯 사회적 지위를 이유로 차별하는 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 '세월호'란 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죽은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자.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연민과 공감능력,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희생된 아이들이) 내 가족은 아이지만, 인간의 가장 유일한 능력인 '연민'을 지닌다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겠는가. '죽은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고, 더도 말고 반만 생각해보자."
고 이재욱 학생(단원고 2학년 8반)의 어머니 홍영미씨는 이번 약전이 "희생학생 한 명 한 명의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앞서 지난 2월쯤 먼저 견본 책을 받아봤다며, "저도 같은 내용을 계속 읽어보고 곱씹으면서 재욱이를 다시 되새기고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전은 추후 도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에 비치될 예정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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