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전은 상처를 남긴다. 보수진영은 2007년 이명박·박근혜의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발 친박·비박 내전을 중계하는 보수언론 입장이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디어오늘이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지난 6월25일 발언 이후 2주 간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설 및 칼럼을 들여다봤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답답함이 지면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권력추의 기울기를 가늠하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통령의 무능함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사설도 보였다. 이윽고, 박근혜 대통령을 세상과 분리된 ‘여왕’으로 묘사하는 조선일보 칼럼이 등장했다. 내전 보름만의 일이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이번 사건은 2016년 총선 공천권과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통령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6월 25일자 조선일보는 청와대·친박과 비박간의 내전을 ‘여권 재정비 겨냥한 대통령의 초강수’라고 해석했다. 탈당·신당창당 등이 기사에 언급됐다. 내전에 당황한 조중동의 프레임은 ‘양비론’이었다. 조선일보는 “국회법 개정안 핵심은 국회가 만든 법의 취지를 넘어서는 행정부의 시행령과 규칙을 직접 규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위헌인지는 법조계에서도 찬반이 맞선다”(6/26사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여야가 대통령의 날선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대통령은 여당을 향해 숙제를 내주듯 법안 처리만을 일방 주문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또한 “야당이 주도하는 입법부 독주로 국정이 마비 상태나 다름없으니 대통령 입장에서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박 대통령 발언은 너무 거칠고 직설적이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실책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6/26사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하루빨리 국회법 파문을 수습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6/26사설)며 내전의 조기수습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여당이 앞장서서 정국 파행을 이끄는 기상천외한 사태”로 이번 내전을 명명한 뒤 “대통령이 눈 한번 부라렸다고 국회의원 160명을 대표하는 여당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용서를 비는 장면은 해외 토픽감”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대통령의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자기들 손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군소리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기로 결정하는 새누리당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6/27사설)라고 비판했다. 비박계가 대통령에게 굴복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 강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국회법 혼선이 유 원내대표만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발목 잡혀 야당에 끌려다니는 그를 지원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야당 지도부 설득을 한 적도 없다”(6/27사설)며 사실상 비박 쪽 손을 들어줬다. 이 신문은 이어 “대통령의 개인감정 때문에 여당 원내대표를 갈아치우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내전의 원인이 대통령의 개인감정이라고 규정한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을 향해 “분노의 정치는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6/29)고 조언하기까지 했다.
내전의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은 기자수첩에서 “친박은 2014년 서울시장 후보경선,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에서 충격의 3연패를 당했고, 올해 2월 박 대통령 생일에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승민에게 졌다”(6/30)고 지적했다. 권력의 추가 친박에서 비박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다. 당장의 새누리당 공천권도 비박계 좌장 김무성이 쥐고 있다. ‘미래권력’에 대한 조중동의 판단이 끝났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박 대통령의 무능함에 대한 기자들의 ‘분노’다. 조선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박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은 친노의 집권을 막은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어 현실감각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난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며 오늘의 상황을 예견이나 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대통령 당선 이후 걷혀지고 인사 참사·독선 정치를 반복하자 작정하고 비판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위한 또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조중동은 내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친박이라는 사람들은 눈만 뜨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물러나라고 삿대질이다. 이들이 유승민 사퇴 명분으로 들고 나온 큰 이유는 대통령의 신임을 상실했다는 점이다”라며 “대통령 신뢰를 잃었다며 사퇴를 종용하는 건 민주절차에 따라 뽑은 대표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험천만한 발상”(6/30사설)이라고 비판했다. 양성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대통령이 말 안 듣는 정치인을 심판해 달란다. 이 한 말씀에 집권여당 최고위원들부터 동조해 지목된 원내대표에게 ‘닥치고 퇴진’을 외친다”(7/1칼럼)고 비판했다.
양상훈 논설주간은 “박 대통령은 열두 살 때 청와대에 들어가 18년간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통치자의 딸로 살았다. 그를 ‘공주’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는 시대였다”고 적은 뒤 “청와대에서 나온 뒤 18년은 사회와 사실상 분리된 채 살았다. 공주에서 공화국 시민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그 기간을 일종의 공백기로 보냈다”고 지적했다. 양 주간의 이 같은 인식은 조중동 기자를 포함한 대다수 기자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다. 조중동은 비박계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박성원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동지라는 개념은 박 대통령 사전에 없는 것 같다”며 “그들(국회의원 및 관료)을 국정 논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자세가 자꾸 배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7/3칼럼)라고 적었다. 박성원 논설위원은 “지금은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불러 재떨이를 던지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재원 조달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야단칠 수 있었던 박정희 시대와 다르다”(6/26칼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마 대통령은 지금쯤 조중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은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5년이지만,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언론권력은 수십 년 간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며 대통령 머리 위에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추후 사퇴하든 사퇴하지 않든 간에, 박 대통령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