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03 20:56
최종 업데이트 15.07.04 10:05
▲ 지난 2005년 4월 30일 저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에 마련된 재보궐선거 종합상황실을 나서며 전여옥 대변인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하고 있다. | |
ⓒ 이종호 |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전체 발언을 살펴보면 이날 박 대통령은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활성화에 정부의 역량을 집중시키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발언만으로는 박 대통령이 '무엇'을 주문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박 대통령의 어법을 '창조어법'이라고 비꼬았다. 이러한 어법은 최고 국정운영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지도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한 행태다"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9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 청와대 |
기자는 최근 정치팀 내부게시판을 살펴보다가 4년 전 한 후배 기자가 '박근혜 어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글을 발견했다. 지난 2011년 2월 17일 작성된 이 글에는 '[생각] 박근혜 특유의 어법은 굉장히 문제가 많음'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한나라당을 오랫동안 출입했던 안홍기 기자는 이 글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단순함을 박근혜 어법의 특징으로 꼽았다.
"박근혜식 어법의 특성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도록 말을 단순하게 하는 것. 기자들이 한두 줄짜리 워딩으로 요래조래 머리를 짜내서 기사를 쓰고, 그렇게 해서 기사 나가서, '너무 세게 얘기한 것'이라는 반응이 있으면, 측근들이 나서서 '그런 의도 아니다'라고 해명을 하는 구조임."
안 기자는 "그래서 박근혜 말을 들으면 가까운 측근의 '해설'을 들어야 기사가 좀 신빙성이 있어지는 그런 상황"이라면서 "결국 박근혜가 하는 말만 들어서는 그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안 기자는 "아예 생각이 없다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하면 되지 '다음에 말씀드릴게요'라고 하면서 지나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 뒤 한 블로거의 글을 링크해놓았다. 강병한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가 <경향신문> 블로그에 쓴 '박근혜 누님에게 굴욕당하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월 23일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서는 박 대통령의 싸이월드 1000만 방문 기념으로 팬클럽 '근혜천사'에서 주최한 바자회가 열렸다. 박 대통령도 이 행사에 참석해 "왜 복지를 돈으로만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다"라는 요지의 격려사를 했다.
강병한 기자는 이날 행사장을 나오는 박 대통령에게 "박 대표님, 아까 복지는 돈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맥락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던 '박근혜표 복지'의 실체를 캐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바로 돌아서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한국말 모르세요?"
안 기자는 이 장면을 두고 "'뭐 그리 캐묻냐'는 의도로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한 것 같은데,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면 물어보래도 안물어본다"라고 썼다. 자신의 '두루뭉술한 메시지 전달'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는 박 대통령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안 기자는 "이런 어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한국의 중요한 정치지도자인 것은 문제가 많다"라며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지지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현대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그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고,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기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임."
안 기자는 "'박근혜식 복지'에 대해 박근혜 본인이 미주알 고주알 풀어내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박근혜는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라며 "이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한 행태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람은 이명박처럼 말해 놓고 '표 얻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나쁠 뿐 아니라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 '으뜸언어상' 수상... 전여옥 "말 배우는 어린아이 수준"
▲ 박근혜 전 대표, 으뜸 언어상 수상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지난 2011년 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시상식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으뜸 언어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의 대상격인 '으뜸 언어상'은 한나라당 박근혜, 민주당 이낙연 의원, '모범언어상'은 민주당 이미경,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품격언어상'은 자유선진당 변웅전,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이 수상했다. | |
ⓒ 연합뉴스 |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전날(2011년 1월 16일) 박 대통령이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을 수상한 점이다. 이날 오후 3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시상식'이 열렸는데 박 대통령은 '으뜸 언어상'을 수상했다. 이날 현장에서 한 취재기자가 "평소 말을 잘 안 하시는데 으뜸언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감을 말해 달라"라고 요청하자 박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다.
"만나실 때마다 현안에 대해 묻는데, (현안이) 과학비즈니스 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아니냐? 다른 분들도 입장을 밝히고 하는데, 내가 답할 사항이 아니어서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수상 소감'을 물었는데, 박 대통령은 '동문서답'한 것이다. '박근혜 어법'의 또다른 특징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이러니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진중권)라고 비꼬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득 '친박'에서 '반박'으로 변신한 전여옥 전 의원의 어록이 생각났다.
"박근혜는 늘 짧게 대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그러나 사실 아무 내용 없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애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다."
"박근혜는 대통령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그녀는 이제 말 배우는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후배 기자와 전여옥 전 의원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 당당하게 '유체이탈 화법'과 '창조어법'을 선보여왔다. 국민에게도 불행이지만, '한국어'에는 재앙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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