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7시간 행방’과 관련된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검찰이 이 사람을 기소하기 위해서는 정윤회씨로부터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증거를 확보해야만 했다. 알리바이를 찾아내야 했던 검찰은 우선 정씨를 검찰로 불렀다.
가토 기소위해 필요했던 ‘정윤회 알리바이’
검찰이 ‘4월 16일 행적’을 묻자 정씨는 알리바이를 입증하기위해 자신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제출하며 이런 얘기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특별한 일이 없어서 집(신사동)에 있다가 저녁 6시경 신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난 게 전부다.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그날 자신의 행적이 남김없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신사동집-통화내역-가사도우미’를 내세워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려 했던 정씨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가 평창동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발신기록(4월 16일 14시20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알리바이가 허물어진 것이다. 이렇게 끝날 경우 가토 지국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불가피할뿐더러, ‘박근혜 7시간 행방’에 대한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게 된다.
다급해진 검찰이 움직였다. 하지만 태도가 상식 밖이었다. 허위사실을 알리바이로 만들려 했던 정씨를 소환하지 않고 전화로만 조사를 했다. 1차 전화조사는 정씨가 검찰조사(2014년 8월 15일)를 받은 지 4일 뒤에 이뤄졌다. ‘16일 14시20분 평창동에서 휴대전화 사용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정씨에게 알려주며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게 전부다. ‘진술과 다른 증거가 나왔다’는 사실을 통보해준 거나 마찬가지다.
정윤회 진술 사실과 달라...다급해진 검찰
이후 10일쯤 지나서다. 8월 말경 담당검사가 정씨에게 전화를 해 ‘평창동 발신기록’에 대해 묻는다. 이것이 2차 전화조사다. 이때 정씨는 ‘4월 16일 11시부터 2시20분까지 평창동 지인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으며 저녁 6시경 약속돼 있던 친구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진술 번복 정도가 아니다. ‘평창동 발신내역’에 꿰맞춘 새 진술이 나온 것이다.
2차 전화조사 2주 뒤인 9월 15일. “정윤회는 평창동 지인의 집에 있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대부분 언론매체가 검찰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보도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정씨의 새로운 주장을 알리바이로 굳히기 위해 언론을 활용한 것으로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윤회 알리바이’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가토 지국장은 10월 초 불구속 기소된다. 정씨의 진술 번복과 새로운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검찰에 의해 생성된 알리바이다. 하지만 이 알리바이는 뜯어볼수록 의혹투성이다.
진술번복으로 생성된 알리바이는 의혹투성이
▲의혹1: 정말 ‘평창동 점심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은 또렷이 기억하면서, 40분 정도 자동차로 이동해야 했던 고명한 역술가와의 점심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모든 국민이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날 아닌가.
▲의혹2: 정씨가 만났다는 평창동 지인(이상목씨)의 주소지는 종로구 부암동.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를 만났다고 진술한 그 시점에 갑자기 주소지가 평창동으로 옮겨진다. 왜 일까?
<정씨 지인 이상목씨(역술인) 평창동 집>
▲의혹3: 정씨와 이씨의 진술이 엇갈린다. 당일 정씨가 평창동 이씨 집을 방문한 시간과 그 집에서 나온 시각,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경위, 연락을 주고받은 빈도수 등에 대한 증언이 일치되지 않는다.
▲의혹4: 검찰의 전화조사도 미심쩍다. 첫 번째 전화조사와 두 번째 조사는 10일 간격을 두고 진행됐다.첫 전화는 정씨가 제출한 통화내역에 진술 번복이 불가피한 증거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두 번째 전화는 정씨에게 뭔가 준비할 시간을 준 뒤에 형식적으로 이뤄진 조사가 아닐는지.
▲의혹5: ‘정씨가 당일 청와대로부터 멀리 있었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형제봉 아래(평창동4XX 번지)에 위치한 이씨 집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이동해도 청와대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정도.거리로는 15km다. 택시를 탈 경우 7000~8000원 요금이 나온다. 세검정을 거치지 않고 북악스카이웨이를 이용할 경우 10분 이내 청와대에 도착할 수 있다. 물리적·공간적 측면에서 볼 때도 알리바이가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의혹6: ‘평창동 알리바이’의 단서가 된 당일 14시20분 발신 내역에 대한 조사도 부실하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정씨 휴대전화에는 세월호 참사 전날인 15일 14시19분부터 평창동 발신이 확인된 14시20분 이전까지 24시간 동안 발신기록이 전혀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의혹7: 애당초 정씨가 주장한 1차 알리바이가 허위라는 걸 밝혀낸 증거(평창동 발신내역)가 외려 2차 알리바이를 형성하는 재료로 활용됐다. 알리바이가 ‘신사동-가사도우미’에서 ‘평창동-지인(역술인)’으로 졸지에 둔갑된 상황이라면 검찰은 ‘합리적 의심’의 눈초리로 정씨를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정씨와 이씨의 말을 그대로 믿어 정씨의 번복된 주장을 알리바이로 인정했다. 언론플레이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허위진술 입증한 증거가 알리바이로 둔갑
의문이 생긴다. 정씨가 ‘당일 집에 있었다’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통화내역에 ‘평창동 발신’이 들어있었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관련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채 통화내역을 검찰에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 전후 24시간 동안 정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보면 발신 내역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보니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14시20분 발신 사실까지 잊었던 모양이다.
‘당일 14시20분 평창동 발신’은 정씨의 알리바이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동시에 검찰이 인정한 알리바이의 결정적 단서이기도 하다. 이 알리바이가 24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휴대전화 발신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당일 청와대와 부근에 있었던 정씨에 대한 의혹을 모두 해소하는데 충분하다고 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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