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5)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려면 노무현은 강한 사람이지만, 문재인은 좋은 사람 정치인은 ‘배은망덕’의 숙명…결단의 시간 다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졌을 때, 왜 사람들은 “문재인이 됐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만약 2012년 대선에서 이겨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졌다면 “박근혜가 됐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도 박근혜나 이회창이 되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꽤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어느 대통령이라도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다면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고 그건 대체로 경선이나 본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사람의 몫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9%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불과 3.53%의 근소한 차로 졌을 뿐만 아니라 대선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낙선자인 문재인은 왜 그런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그뿐만 아니다. 제1야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선 주자들 중에 지지율이 1위인데도 국민은(심지어 지지자들조차) 다음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확신하지 못한다.
문재인은 무엇이 부족한가?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 국민이 ‘그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누군가가 쉽게 떠오른다면 그건 아마도 그가 ‘대통령 자리’에 앉은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국민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어색하다. 대통령에 안 어울릴 것 같은 정치인(군인)도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은 대통령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지지 여부와 상관없다) 어쨌든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의 이미지가 생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라틴계인 산토스 의원이 대통령에 도전하게 되는데 참모가 이런 말을 한다. “의원님은 다 좋은데 목소리는 대통령 목소리가 아니에요.” 가볍게 던진 참모의 이 한마디가 산토스 의원을 주눅 들게 한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슬쩍 물어본다. “정말 내 목소리가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가?” 그렇게 물어보니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목소리는 그렇죠”라고 말한다. 그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핵심 참모는 그에게 이렇게 소리 지른다. “대통령다운 목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이 내면 대통령 목소리지.” 그렇다. 문재인도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의 이미지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떨어졌을 때도 그런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들(예컨대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과 비교해 봤을 때 확실히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뭘까? 나는 단언컨대 ‘지도자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니까 그런 이미지가 없다면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택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지도자는 이끄는 사람이다. 문재인은 아직도 국민과 당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때 세 가지를 비교한다. 업적(과거)·비전(미래)·이미지(현재)가 그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모두 업적은 약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의 업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싸운 업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청계천·버스중앙차로)를 바꾼 업적이 있다. 그에 비해 두 후보 모두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었지만 문재인은 더 없었다. 비전 역시 두 후보 모두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메가 이슈’가 없었다. 결국 승부는 이미지에서 갈렸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의 ‘참모’ 이미지는 퍼스트레이디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의 ‘지도자’ 이미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통령 후보와 야당의 대표를 맡고도 국민에게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지 못한다면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후보도 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에 나서는 모든 후보는 세 가지 지위 중 하나에 속한다. 현역이거나 계승자이거나 아니면 도전자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단임이기 때문에 대선에서 현역은 없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계승자 지위를 갖게 될 것이고 야권의 유력 후보들은 모두 도전자의 지위로 대선 후보의 자격을 얻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다. 도전자 포지션인 야권의 문재인·박원순·안철수는 캠페인에서 국민과 지지자에게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내가 대한민국을 이끌 더 나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다. 셋째, 내가 더 경쟁력이 있다. 첫째는 세 후보 모두의 공통 과제지만 공격은 자기의 강점이 드러나는 방향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은 세 후보 모두 다를 수 있다. 둘째와 셋째 과제는 후보마다 차별이 분명히 드러나는 캠페인 목표인데 앞의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지지자를 상대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이 1위라는 것은 야권 지지자들이 현시점에서는 경쟁력을 평가한다는 의미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우열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세 후보 간의 의미 있는 우열은 역대 대선 경선의 사례를 봤을 때 2016년 추석 이후에나 드러날 것이다. 아직은 세 후보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지지율 급락하는데도 왜 사람들은 “문재인이 됐으면 더 잘했을 텐데”라 말 안할까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진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확신 못 하나
정치 지도자는 민주적 리더십과 소통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 못해 지도자는 카리스마로 결단하고 책임지는 ‘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이회창의 길 갈 거라는 비관적 전망
문재인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의 경쟁력을 회의적으로 보는 야당의 비판자들은 그가 이회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야당의 후보는 될 것 같지만 이회창처럼 확장성의 한계로 근소하게 또 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야권 지지자는 외연 확대가 가능한 박원순 시장을 유력한 대안으로 생각한다.(실제로 한국리서치가 매달 하는 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은 여야 대선 후보 중에 호감도 대비 비호감도의 비율이 꾸준히 가장 낮게 나온다) 그들에게는 중도 이미지의 안철수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다. 문재인의 경쟁력에 더 비관적인 사람들은 후보가 되기도 어렵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1987년 이후 메이저 정당에서 두 번 연속으로 출마한 후보는 김영삼·김대중·이회창 세 명이다. 이들과 문재인은 두 가지에서 차이가 있다. 세 사람 모두 대선 패배 후에도 여전히 대통령에 어울리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당을 70% 이상 확실히 장악했다는 것이다. 김영삼은 3당 합당할 때는 소수파였지만 1992년 대선 경선 당시에는 이미 당을 70% 장악했다.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직접 창당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이회창도 한나라당을 70% 이상 장악했기 때문에 연속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 문재인도 그럴 수 있을까? 이회창은 1997년 대선 패배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1998년 8월에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당에 복귀했는데 문재인은 대선 패배 후 2년 뒤 전당대회에서 불과 3.5%의 차이로 겨우 이겼다. 그것도 (권리)당원에서는 졌다. 호남의 대표적 정치지도자인 박지원과 정동영, 그리고 천정배는 호남을 배경으로 문재인에 맞선다. 호남에서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인 것과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 그리고 호남 인사 불이익을 근거로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역학구도로는 당의 50%도 장악하기 힘겨워 보인다. 그런 조건에서 두 번 연속 출마가 허용될까? 지역주의에 맞섰던 노무현은 특유의 당당함으로 호남에서 경선 승리를 했는데 문재인은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과 당원의 눈치를 여전히 살피고 있는 듯 보인다. 지도자는 유불리를 따지면 안 된다. 끌려다니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는 이끌어야 한다.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과는 싸워야 한다. 지도자의 이미지는 ‘용기’로 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지도자에게 민주적 리더십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카리스마를 갖고 결단과 책임을 지는 ‘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나는 정치인과 기업인, 그리고 군인은 매일매일 ‘실존적 결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보다는 ‘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강한 사람은 합목적적이고 좋은 사람은 합리적이다. 강한 사람은 단점이 많지만 강점도 많다. 좋은 사람은 장점이 많지만 약점도 많다. 좋은 사람은 훌륭한 학자,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시민운동가가 될 수 있지만 위대한 정치인, 군인은 되기 어렵다. 노무현은 강한 사람이지만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다. 2012년 박근혜와 문재인이 맞붙었을 때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한 두 종류의 권력이 떠올랐다. 그는 “죄의식이 없고, 귀족적 야수성을 가졌으며,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고, 깨끗한” ‘전사의 권력’과 “금욕적이고, 반성적이며, 죄의식적이고, 괴로워하고, 분개하는” ‘도덕적 권력’의 싸움으로 문명의 발전사를 봤다.
국민은 지도자의 정책이나 노선을 보고 지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국민은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먼저 본다. 결국 노선이 아니라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했을 때, 김대중이 김종필과 디제이피(DJP) 연대를 했을 때, 노무현이 재벌인 정몽준과 단일화를 했을 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복지 등 진보 의제를 수용했을 때도 지지자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을 좋아했고 지도자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슈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유불리 따지지 않고 앞서 싸우는 전사의 권력을 더 신뢰한다.
문재인은 과거의 대통령들이 가졌던 확실한 기반이 없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물리적 기반(총과 돈)이 없다. 김영삼·김대중의 역사적 기반(민주화를 이끌었다)도 없다. 노무현의 도덕적 기반(3김의 지역패권주의와 싸웠다)도 없다. 박근혜의 지역적 기반(그는 대구·경북과 충청 두 곳을 고향으로 인식시켰다)도 없다.
그는 김대중이 가졌던 사상가의 자질인 ‘통찰력’도 없다. 김영삼이 가졌던 정치가의 자질인 ‘결단력’도 없다. 박정희가 가졌던 경영가의 자질인 ‘추진력’도 없다. 노무현이 가졌던 운동가의 자질인 ‘설득력’도 없다. 그럼 문재인은 무엇으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노무현과 김근태의 차이, 배은망덕의 숙명
정치캠페인의 전략적 목표는 ‘사적 욕망’을 ‘공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만약 문재인이 친노의 사적 욕망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사적 이미지’에 머무르고 말 것이고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존적 결단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강한 사람 노무현은 자기를 정치적으로 키워준 김영삼·김대중의 공보다는 과를 많이 보고 싸웠기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 정치인은 배은망덕의 숙명을 타고났다. 좋은 사람 김근태는 김영삼·김대중의 공을 더 크게 봤기 때문에 그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문재인도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당내 지역주의와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과 싸우는’ 세력과 결별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는’ 이미지의 보수를 이길 수 없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때는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을 뽑을 때보다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한다. ‘시민’의 정체성에서 ‘국민’의 정체성으로 기준이 이동한다. 안보 이슈가 대선에서 중요한 이유다. 당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당이 희생해 달라는 정치인들과 결연히 맞서 싸우지 않으면 반대자들에게 조롱을 당할 것이다. 국민은 사자를 지도자로 선택한다. 대한민국을 반드시 경영해보겠다는 의지 없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지 않는다. 박정희·전두환·김영삼·김대중·박근혜 모두 강한 권력의지를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사람들이다. 노무현도 쉽지 않은 상대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열렬한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노무현은 1988년에 국회의원이 된 후 14년 뒤인 2002년에 대통령이 됐다. 이명박은 1992년에 국회의원이 된 후 15년 뒤인 2007년에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는 1998년 국회의원이 된 후 14년 뒤인 2012년에 대통령이 됐다. 15년쯤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지켜본 뒤 나라를 맡긴 것이다. 국민은 문재인의 공적 활동의 기점을 언제로 판단할까? 2012년 국회의원이 된 시점이라면 아직은 이르다고 볼 것이고 2003년으로 본다면 경쟁자들보다 유리할 수 있다. 그보다 먼저 문재인이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지도자가 되지 않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다음 호에는 ‘그들은 어떻게 지도자가 되었나?’를 주제로 다룰 것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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