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27 08:57
최종 업데이트 15.03.27 08:57
일본 도꾜(도쿄)조선고급학교 어머니회 강룡옥(姜龍玉)씨가 쓴 글입니다. 한글 맞춤법과 다른 표기가 있지만 재일동포가 직접 기고한 만큼 그들이 사용하는 표기법을 존중해 그대로 실었습니다. [편집자말] |
2013년 2월 20일 일본 아베 정부가 고교무상화 제도를 시행하는 성령(省令)을 발표할 때 외국인학교 중 유독 재일조선학교만 배제되자, 일본 교육계와 인권·평화단체들이 이를 '인권차별'로 비판하며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항의행동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교육 배제' 처분 취소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되는 날을 맞아 2015년 2월 20~21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소송에 나선 조선학교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국통일행동'이 개최됐습니다.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이를 계기로 재일조선학교 차별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속에서 차별받는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 말
그로부터 2년이 되는 날을 맞아 2015년 2월 20~21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소송에 나선 조선학교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국통일행동'이 개최됐습니다.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이를 계기로 재일조선학교 차별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속에서 차별받는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 말
▲ 2월 20일 일본 '문부과학성 포위행동' | |
ⓒ 손미희 |
일상의 평범한 하루가 느닷없이 소중하게 다가와 가슴이 미여지는 순간이 있다. 여느 때처럼 따뜻한 이불 속 유혹을 물리치고 후닥닥 일어난 아들이 바쁘게 세수하고 밥도 먹다 말고 허겁지겁 학습장을 챙기고는 공처럼 학교로 뛰여간다.
'고교무상화' 재판 구두변론이 열리는 날 아침,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 나라는 이 땅에서 태여나 자라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을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리유(이유)만으로 배척하고 배움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일으켜 싸우게 한다는 현실 앞에서 불쑥 설음(설움)이 북받친다.
일본에 사는 모든 고등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정책으로 2010년에 실시된 '고교무상화' 제도. 일본 정부는 이 제도에서 유독 우리 조선고급학교 학생만을 제외했다(편집자 주 : 일본 정부는 2010년 고교무상화 실시 이후 조선학교에 대한 적용을 유보해오다 2013년 조선학교 배제를 결정했다).
'공화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과 관련되는 학교라며, '랍치(납치)문제'가 미해결이라며 국가의 외교문제 책임을 우리 학생들에게 덮어씌우는 비렬한(비열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부당하게 배제된 우리 아이들은 오늘까지 5년간을 배움의 권리, 존엄의 회복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조선사람으로 태여나 민족의 말과 문화, 력사(역사)를 배우며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긍지롭게 당당히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우리 애들을 조선학교에 보낸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며 일상의 생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치라는 권력이 부당하게도 우리 아이들을 유린하는 차별정책을 기꺼이 실시했다.
조선학교만이 '고교무상화'에서 제외된 5년이란 세월, 심상치 않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익단체들이 재일조선인을 과녁 삼아 파렴치하고 귀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을 가두에서 미친듯이 웨치게(외치게) 되었고, 정치가는 그것을 단속하기는커녕 방치하고 도리여 과거를 부정하는 발언을 안하무인 격으로 되풀이하게 되었다.
력사외곡(역사왜곡)과 이웃에 대한 적대시가 묵인되고 판을 치기 시작하여 관용을 잃고 갑갑한 사회로 탈바꿈 되어가고 있다. 우익단체들의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차별선동)도 고교무상화 제외 문제도 본질은 같다. 조선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존엄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에 대한 릉멸(능멸)과 편견을 부추기고 사회에 배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멸시와 차별 속에 걸어온 길... 이제 내 차례
▲ 2월 20일 금요행동은 '문부과학성 포위행동'이다 | |
ⓒ 손미희 |
하지만 나는 광란적인 헤이트스피치보다 고교무상화 제외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하고 싶다. 설령 이 나라가 그 어떤 차별도 용서치 않으며 민족이나 출신을 불문하고 모든 아이들을 보호하는 자세를 분명히 하고 그 책임을 집행하는 정부라면 일부 배타주의자들의 망언 정도야 하찮게 여길 수 있다. 아니, 진작에 그런 국가라면 헤이트스피치라는 차별선동이 대낮에 대로를 활보하며 활개를 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일본 정부가 스스로 정치적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을 배제하므로써 이 나라에 뿌리 깊이 남은 채 극복하지 못한 식민지주의적 차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놀았다. '국가권력이 인권침해를 선두에서 주도했다', 이것이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제외 문제인 것이다! 그 어떠한 순간에도 목숨을 다해 안아주고 지켜주고 싶은 우리 아이들을 보란듯이 희생양으로 모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국가에 대한 역겨움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자기 또래의 일본학교 학생들과 동등하게 처우해달라고 '평등'을 애타게 요구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슬픔을 상상조차 못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정치가라고 뽐내고 있는 나라. 나는 고교무상화 제외 반대투쟁은 그릇된 길을 치달아가는 일본이란 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로서, 용하게도 재판의 원고가 되겠다고 나선 도꾜(도쿄)조선고급학교 62명의 학생들을 비롯한 일본 전국의 우리 학생들이 재판을 통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자기 힘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 속에서 체득하여, 험한 인생을 굴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힘으로 키워주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나아가서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태어나 살아도 민족성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스스로 실감하며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를 위해 내가 어머니로서 어른으로서 해야 될 일, 책임을 자각한다. 국가란 거물 앞에서 내 작은 힘이 무엇을 할 수 있을가, 그런 생각에 소심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면 우리 어머니와 돌아가신 할머니가 지금보다 더한 멸시와 차별 속에서도 나를 조선학교에 보내주시고, 힘겨운 삶을 굳세게 웃으며 살아오신 모습을 떠올린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을 믿으며 나를 키워주셨듯이 다음은 내 차례라고, 여린 내 마음을 다시 추스른다.
또한 나는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 우리 곁에서 우리 이상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일본의 친구들이 있고, 어려운 길을 찾아와 격려해준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서울에서도 금요행동을 함께 해주어 늘 곁에 있는 것처럼 힘을 보태준다. 그래서 나는 불의 앞에 당당히 맞서련다. 언제나 씩씩하게 조선학교를 다니는 그지없이 고맙고 귀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재판을 끝까지 싸워 이겨 차별제도를 꼭 시정시키고야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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