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천안함 선체와 1번 어뢰 잔해물에서 채취한 이른바 ‘흡착물질’ 성분을 정밀 분석한 결과 고온에서 생성될 수 없는 수산화물이었다는 점을 가장 먼저 밝혔던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박사(지질학)가 합조단과 국내 과학계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당시 선체와 어뢰에서 나온 물질 분석만으로 충분한데도 합조단이 수조폭발 실험까지 한 것이야말로 스스로 폭발이라는 확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천안함 논쟁에서 한 발 물러나있거나 침묵을 지킨 이유는 얻는 것 보다 잃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양 박사는 분석했다.
천안함 5주기를 맞아 양 박사는 지난 17일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천안함 침몰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을 두고 “시간이 갈수록 진실을 원하는 측의 갈망이 사그러져서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진다”며 “사고당시 몇 개월 정도 몰입할수는 있어도 수년간 지속적 관심을 가지기란 매우 힘들었다”고 전했다. 양 박사는 “시간은 처음부터 합조단 편이었다”며 “보통사람들은 일상으로 쉽게 돌아가고 목청 높이던 사람들도 결국 공허한 메아리에 지치게 될거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조단의 발표 가운데 가장 큰 모순점에 대해 양 박사는 합조단의 수조 폭발실험을 한 이유를 꼽았다. 최종보고서를 불과 수개월만에 내야하는 그런 촉박한 일정속에 폭발실험까지 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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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선체에 붙은 흡착물질을 채취한 세부 장소. 사진=천안함 합조단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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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박사는 “애초 ‘어뢰 흡착물=함미 흡착물=함수 흡착물’이라는 합조단 논리대로라면 분초를 다투는 와중에 굳이 시간을 더 투자해서 폭발실험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1번이 표기된 어뢰파편이 발견된데다, 입수한 북한 어뢰의 설계도와 일치하며 거기 묻어 있던 흡착물질이 인양된 선박에서 발견된 흡착물질과 같다면 수조폭발실험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실험을 한 이유에 대해 양 박사는 “자세한 속내는 합조단만 알겠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이유는 그들 스스로도 폭발에서 생성된 물질이라 확신하기 힘들어서가 아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이 수조폭발실험의 결과조차 오히려 합조단 주장에 반한 것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인양된 선박이나 어뢰파편에서 발견된 흰색물질은 명백히 수산화물(OH가 있는)로, 수산화물은 수천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환경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양 박사는 설명했다. 폭발물이려면 OH가 아닌 산소와 수소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흡착물은 폭발로 인해 생성됐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폭발실험으로 생성된 물질이 선박과 어뢰파편에서 발견된 물질과 같은 에너지분광 결과를 보인다는 합조단의 주장에 대해 양 박사는 “폭발실험물질은 진정 폭발환경에서 만들어 졌으니 ‘수산기’(OH)가 없고 따라서 에너지분광 그림에서 선체-어뢰파편과 달리 산소가 알루미늄에 비해 더 작아야 한다”며 “이런 이유로 저나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가 폭발실험의 결과로 제시된 그림이 조작된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라고 전했다.습니다.
이 같은 ‘흡착물질=폭발재’라는 합조단의 주장에 대해 양 박사는 “최소 CT촬영이 필요한 환자에게 엑스레이도 아닌 손으로만 진단한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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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합조단 천안함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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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조사와 관련된 국내 과학계, 전문가 등 주류 집단이 5년 내내 침묵으로 일관한 점에 대해서도 양 박사는 한마디했다.
“주류전문가 집단은 이런 논쟁을 통해서 얻을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잃을게 너무 많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똑같았을 것 같습니다.”
천안함 침몰원인이 ‘과학적 논쟁’이 됐는지에 대해 양 박사는 “사고 후 ‘과학적 논쟁’이 가능한 증거물로 남은 것이 흡착물, 어뢰파편, 지진파, 그리고 인양된 선체”라며 “합조단을 포함해서 모두들 이 잔류물들에 대해 과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서로를 옭아 매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행히도 과학은 단편적 사실만 밝혀주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예를 들어 과학적 연역과 추론에 근거한 흡착물연구 결과가 같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음에도 과학적 지진파 연구 결과와 상충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 과학이 몇가지 가정에 근거하고 이론을 세우며 한번 세운 이론은 검증을 받고 그 결과가 다시 수정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론이 과학이지 절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를 천안함의 경우에 적용하면 합조단의 경우 과학적이란 말을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위협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보며 따라서 자신들의 주장이 매우 비과학적이란 점을 드러낸 것이라 봅니다. 애초부터 합조단은 자신들의 이론을 수정 보완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과학이란 용어를 사용할 자격이 없는 셈입니다. 최종보고서에 실린 과학적이란 용어는 따라서 부적격 용어로 취급합니다. 그 나머지 논쟁에 참여한 소위 과학자들은 최소한 자기 이론을 타당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 수정-보완-발전 시켰다고 봅니다만 아시다시피 진실엔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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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 사진=캐나다매니토바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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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학이 진실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양 박사는 “진정한 천안함 진실은 위의 남겨진 과학적 증거물중 어느 하나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단편적 사실들에만 매달려 있는게 현실이고 어떤 통합형 이론이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양 박사는 “그런 통합형 증거나 이론은 소위 말하는 과학적 증거물들로부터가 아니라 사고 전후의 항적기록이나 통신 내용 혹은 기록 같은 군사기록물에서 나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며 “그런 의미에서 저 같은 과학한다는 사람들 보단 (법정에서 진실을 다투고 있는) 신상철 전 합조단 민간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가 진실에 근접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며 멀리서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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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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