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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2일 일요일

고리1호기 수명 연장 않겠다?


김무성 대표, 2017년에 봅시다
[10만인리포트-공포의 후쿠시마, 그후 4년⑤] 전력수급 1% 불과... 폐쇄 앞당겨야
안재훈 기자 쪽지보내기 | 15.03.22 20:35
3월 11일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상처의 현장을 고발하고,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 연장-폐쇄 문제를 되짚어보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 기획은 환경운동연합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편집자말]
▲ 지난 2012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고리원전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해상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환경운동연합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 고리1호기는 2007년에 30년 수명이 끝났지만, 10년을 더 연장해 가동하고 있다. 2017년이면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또다시 10년을 더 연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부산시민의 뜻을 반영해, 정부가 고리1호기의 재수명 연장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물론, 과연 그렇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1호기는 그 어떤 원전보다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이었고, 수명연장이 결정돼 가동 중인 유일한 원전이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발생한 원전들은 40년 가까이 가동한 노후원전이었다. 따라서 사고에 더 취약한 노후원전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는 고리1호기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직접 피해를 입은 인구는 20만 명에 달한다. 원전으로부터 반경 30km에 거주하는 인구수다. 이를 그대로 한국의 경우에 대입하면 고리원전의 경우는 부산과 양산 등 대도시에 인접해 있어 반경 30km 안에 밀집된 인구가 320만 명이다. 일본보다 16배나 많다. 같은 사고라고 해도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험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거다.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현실

그동안 고리1호기의 존재를 잘 모르고 생활하던 부산과 경남의 시민들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원전을 한꺼번에 폐기하기는 어려워도 고리1호기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민심이 변화하자, 표에 민감한 선거직 후보자들이 움직였다. 지난 2014년 지자체 선거에 나선 부산시장 후보들이 잇따라 한 목소리로 '고리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 서병수 부산시장도 새누리당 후보자 시절 재수명 연장 없이 2017년에는 고리1호기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부산의 상황을 보면 고리1호기 폐쇄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각계각층 대다수가 고리1호기 폐쇄 입장을 밝힌 데 이어 폐쇄운동에 함께 하고 있다. 부산의 주요언론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등도 지속적으로 고리1호기 문제를 보도하고 폐쇄해야한다는 사설을 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에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월성1호기 수명연장관련 국민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부산의 지역정서가 잘 드러난 결과가 나왔다. 전체 60.3%가 월성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에서는 65.7%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폐쇄 여론을 보였다. 그만큼 부산과 경남, 울산 등의 시민들이 노후원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고,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과 경남뿐만이 아니다. 고리1호기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폐쇄를 요구해 왔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보여주듯이 사고의 피해가 단순히 그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또한 후쿠시마사고로 인해 현재까지 일본 정부가 지출한 배상액과 제염 및 중간저장시설 비용 등이 9조 엔에 달한다. 

앞으로 추가되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20조 엔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막대한 피해 금액은 도쿄전력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즉, 국민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으로 돌아온다는 거다. 따라서 고리1호기의 문제는 원전주변의 주민과 부산과 경남의 시민들의 문제를 넘어 국민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지난해 11월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 모인 1000여명의 시민사회단체 참가자들이 고리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정대희

안전성도 안전하게 가동할 능력도 없다

고리1호기 폐쇄에 대한 논란을 더 이상 반복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미 고리1호기가 위험상태에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무엇보다 원전사고 시 방사성물질을 가두어주는 역할을 하는 원자로의 압력용기 재질이 나빠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는 평가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 원자로 전문가 도쿄대 이노 명예교수는 "고리 원전 1호기 원자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태인데 재료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압력용기의 취성파괴도 고리1호기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취성파괴란 고온으로 달구어진 금속은 일정온도에서 약해져 쉽게 깨지는 현상을 말한다. 고리1호기의 압력용기가 취성파괴에 견디기 어려운 상태라는 거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취성파괴가 나타나는 온도를 취성천이온도라고 한다. 그런데 고리1호기의 압력용기의 취성천 온도가 처음보다 크게 상승돼 사고위험이 높다는 거다. 즉, 후쿠시마사고처럼 원자로를 갑자기 냉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리1호기의 압력관이 깨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고리1호기는 38여 년 가동하며 무려 130회의 고장·사고가 발생했다. 전체 24개 원전 690회의 고장·사고 중 1/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횟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인 지난 2012년 2월에는 고리1호기의 외부전원공급이 중단돼 12분 동안 핵연료의 냉각기능이 상실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도 아무런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고를 한 달 동안이나 은폐하다가 결국 사적인 자리의 대화를 통해 알려지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연출했다. 이는 원전의 안전관리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원전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사의 부도덕함과 무책임함, 안전불감증을 그대로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전력공급에 전혀 차질 없다

전력공급에 있어서도 고리1호기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고리1호기의 용량(587MW)은 다른 원전들에 비해 작다. 전체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불과 1%밖에 안 된다. 최근 발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폐쇄한다고 해도 2025년까지 전력예비율이 20%를 상회해 전력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고리1호기를 어떻게든 재수명연장해서 가동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새누리당 다수의 국회의원들과 심지어 부산, 경남의 국회의원들마저 고리1호기 재수명연장의 안전성심사를 통해 가동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상 고리1호기 폐쇄를 반대하는 입장이나 다름없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안전성 심사의 경우도 안전성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수명연장 여부를 정치적인 표결로 강행했다. 고리1호기도 현재와 같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유지한다면, 안전성을 근거로 한 폐쇄 결정은 어렵다.

따라서 이 문제를 원자력계나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의 주장처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스스로 고리1호기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더 이상 고리1호기 폐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정부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1호기의 재수명연장 신청을 스스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올 상반기 수립예정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해 고리1호기의 폐쇄를 공식화해야 할 것이다.

▲ 후쿠시마 4년을 맞아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탈핵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여한 학생이 얼굴에 ‘핵노답’ 페이스페인팅을 한 모습 ⓒ 정대희

폐쇄결정해도 산 넘어 산

설사 고리1호기 폐쇄를 결정해도 우리에겐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수명연장이 만료된 원전은 벌써 2개나 된다. 여기에 더해 2020년이 되면 상당수 원전들의 수명이 또다시 만료된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원전폐쇄를 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상업용 원전을 해체해 본 경험도 기술도 갖고 있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해체계획을 건설시점에서 마련하고, 운영 중에 갱신할 것을 지침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를 무시하고 아직까지 24개나 되는 원전 중 단 한 곳도 해체계획서를 작성조차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의 폐로과정은 운전종료 후 시점에서 해체공사 이전의 단계에서만 2년(미국기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체의 경험이 있고, 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걸린 기간이다. 반면, 한국은 관련 절차나 규정, 기준조차 없다. '즉시해체를 할 것이냐? 지연해체를 해야 할 것인가?' 등 해체방식을 논하는 초기단계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또, 포화상태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도 못한 상태다. 주민들이 해체과정에서 입게 될 피해에 대한 지원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은 원전해체 단계 공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준비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1호기 재수명 연장 신청을 추진하려 한다. 이렇게 된다면 폐쇄를 준비할 시간의 지체는 물론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해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또, 부산시민은 물론 국민을 점점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게 될 거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는 이제 고리1호기에 대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폐쇄를 공식 결정해야 한다. 2017년까지 늦출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앞당겨 문을 닫고 해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고리1호기의 안전한 폐쇄를 위해 전 사회가 지혜와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정부는 올바른 선택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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