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언론운동 산증인’ 성유보 11일 발인…눈물 속 ‘임의 행진곡’으로 작별
입력 : 2014-10-11 15:10:34 노출 : 2014.10.11 16:22:42
김도연·금준경·이치열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언론인 고(故) 성유보의 마지막 길에는 그를 사랑하는 선후배, 동료와 지인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고인을 끝까지 배웅하고자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 모인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등 언론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사 100여 명은 고인이 화장을 위한 화로에 들어가기 직전 ‘임의 행진곡’을 합창했다. 담담한 모습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부인 장연희 여사도 연신 눈물을 훔치며 노래를 불렀다.
11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 절차는 오전 7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에서 열린 발인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노제가 열렸고, 서울광장에서 ‘민주·통일 이룰태림(큰 숲을 이룬다는 뜻) 참 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민주사회장’이 치러졌다. 영결식이 끝난 후 유가족과 각계 인사들은 광화문 동아일
보 사옥 앞까지 추모 행진을 했다.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의 발인이 끝난 후 운구차가 한겨레신문사로 이동해 노제를 진행했다. 금준경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열린 노제에서 박종찬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장은 “성유보 선배는 우리 한겨레신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오늘날 한겨레신문은 성 선배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선배를 보내는 후배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다. 선배가 그토록 염원했던 언론자유는 다시 암울한 독재 시대로 곤두박질했다”며 “선배 영정 앞에서 약속드린다. 언론자유가 살아 있는 그날까지 민주주의가 쟁취되는 그날까지 후배들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988년 한겨레 창간 작업에 참여했고, 초대 및 4대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사가 끝난 뒤 유가족은 고인의 영정과 함께 한겨레신문 편집국 곳곳을 돌아봤다.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의 한겨레신문사 노제가 끝난 후 영정사진과 유가족들은 편집국을 한바퀴 둘러봤다. 금준경 기자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고인과 민주언론운동을 함께 했던 언론계 원로들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시민단체 및 현업 언론인 단체 관계자 500여 명이 참여했다. 고인과 월간 <말>지부터 동고동락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참여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영결식에 앞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성유보는 내 평생의 동지이자 선배”라며 “동아일보에서 1975년에 23명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단식농성을 했었는데 그때 나는 성유보 선배와 같이 단식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사장은 “1978년 동아투위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같이 투옥되기도 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도 같이 있었다. 같은 방은 아니라 자주보진 못했지만 세면하러 갈 때마다 서로 인사하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정 전 사장은 “2008년 이명박 정권에 의해 KBS에서 부당하게 해임되기 직전에 선배는 KBS 건물 앞에서 집회가 열릴 때 매번 오셨다”며 “혹자는 나는 KBS안에서 싸우고, 선배는 KBS밖에서 싸운다고 말하더라. 이렇게 우리 인연은 깊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고 성유보 선생의 영결식에서 최민희 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함세웅 신부는 영결식중 추도사를 통해 “저는 성유보 선생과 동아투위, 조선투위 기자들과 지학순 주교, 민청학련 사건 당시의 청년들 등 투신하신 모든 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게 됐다”며 “성유보 선생을 비롯한 고난의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종교인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낸 길잡이이며 스승들”이라고 밝혔다. 함 신부는 “성 선생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4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며 “그때 사제들에게 ‘역사적으로 빚을 졌다’고 하셨는데, 저희야말로 성 선생에게 역사적으로 빚을 졌다. 고인의 뜻을 기리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가 옛 동아일보 사옥인 일민미술관 앞에서 영결식 순서지 앞에 인쇄된 성유보 선생의 사진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종철 위원장은 “동아투위 위원들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정보수사기관으로부터 겪은 고문과 옥살이가 성유보 동기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 요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고인은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포로수용소 같은 언론 환경에 괴로워하는 후배들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며 “우리는 1970년대 유신독재시절 동아투위 위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되새기며 현역 언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공감하며 과감한 싸움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생전에 남북통일 운동에서 앞장섰던 성유보 선생에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보내온 조전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연희 사무총장이 낭독했다. 민화협은 조전을 통해 '사회의 자주 민주와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선생이 갑자기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여 유가족과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성유보 선생은 평생을 언론인의 깨끗한 양심과 지조를 지켜 불의에 맞서 왔습니다. 선생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고귀한 뜻과 넋은 겨레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민족이 더불어 사는 조국 통일은 반드시 이룩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위로의 뜻을 전해왔다.
고 성유보 선생의 영결식에 참석한 언론,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직 언론인을 대표해 영결식 무대에 오른 권오훈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성유보 선생님은 40년을 한결 같이 언론자유와 민주언론 쟁취를 위해 싸웠다. 이제 우리 언론인 모두가 성유보가 되겠다. ”며 “이명박 정권 5년과 박근혜 정권 2년 동안 모두가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때 성유보 선생은 투쟁의 현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오늘 대한민국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진실을 말하는 참언론 목소리는 잦아들고 사실마저 호도하는 사이비 언론이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며 “아직도 현실은 성유보 선생님이 필요한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 후배 언론인들이 진 빚을 이제라도 갚겠다. 선생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 언론자유, 민주언론 깃발 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부영 상임고문과 함께 고인의 장례 절차 호상을 맡은 신홍범 전 조선투위위원장은 “성유보 선생은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자기를 돌보지 않고 평생을 싸워왔다”며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확신을 가지고 오직 한길을 걸어오셨다”고 밝혔다. 신 전 위원장은 “선생은 참된 언론과 민주주의를 신앙의 자산으로 삼아 순교자와 같은 삶을 사셨다. 특히 언론민주화운동에서는 빛나는 순교자였다”며 “고인의 이런 고귀한 삶은 우리의 큰 유산이고 교훈”이라고 말했다.
고 성유보 선생의 장례 절차에 호상을 맡은 이부영 상임고문(왼쪽)과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영결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39년전 성유보 선생이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해직되어 결국 복직하지 못한 한이 서린 동아일보 옛 사옥까지 추모행진을 이어갔다. ‘언론자유 사상자유’ ‘참언론인 이룰태림’ ‘통일, 저 눈부신 평등의 나라’ 등 고인을 상징하는 글귀가 적힌 만장대열은 성유보 선생의 영정사진을 앞장 세우고 동아일보 옛 사옥인 지금의 일민미술관 앞에 도열했다.
성유보 선생의 장례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동아일보 사옥앞을 지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옛 동아일보 사옥인 현 일민미술관 앞에 성유보 선생의 영정사진과 만장행렬이 늘어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동아일보 옛 사옥 앞에서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우리가 언론자유수호투쟁을 할 때 1등 신문이 바로 이 동아일보였다”며 “박정희 정권이 신문에서 광고를 빼는 탄압을 가하자 시민들이 스스로 광고를 채워 넣어주었다. 그때 100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거리로 내몰렸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그 이후 어떻게 됐는가. 동아일보는 3류 신문이 됐다. 지금 동아일보는 언론이 아닌 권력의 일부이자 흉기가 됐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이 땅의 자유언론이 꽃이 피어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배님의 뜻을 따를 것”이라며 “한 많은 이 동아일보사를 지나며 우리 후배들은 언론자유가 탄압되던 그 날을 결코 잊지 않고, 권력의 일부가 되어버린 추한 언론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사옥 앞을 가득 메운 인파는 “동아일보는 언론인 대량학살을 사죄하라” “동아일보는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동아일보의 사죄를 촉구했다. 이들은 오전 11시 40분경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으며, 오후 3시 현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고인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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