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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8일 수요일

언론자유 위해 싸운 삶 50년…끝까지 언론인이었다


언론자유 위해 싸운 삶 50년…끝까지 언론인이었다 등록 : 2014.10.08 22:21수정 : 2014.10.09 00:16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544twitter16보내기 <한겨레> 자료사진 성유보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 별세 유신정권 맞서 동아투위 결성 전두환정권 땐 민주화운동 이끌어 최근까지도 언론자유 위해 활동 성유보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이 8일 오후 5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심장마비)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3일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었다. 향년 71.  1943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고인은 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래 언론자유와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해 초대 및 4대 편집위원장, 논설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이어 방송위원회 상임이사, 방송평가위원회 위원장, 한국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 케이블티브이 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2000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비롯해 2013년 희망래일 이사장, 2014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까지 최근까지 남북통일과 평화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해왔다.  고인은 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이래 50년 가까이 언론인의 한길을 걸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걸어야 했던 가시밭길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72년 유신체제를 구축한 뒤 언론 통제를 강화했다.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는 74년 10월 동아일보의 ‘서울대 농대생 300명 데모’ 기사를 문제삼아 송건호 당시 편집국장 등을 연행했고, 다음날 동아일보 기자와 <동아방송> 아나운서 등 130여명이 편집국에 모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유신정권은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광고 탄압’에 나서 백지광고 사태를 빚었고, 이에 독자들은 익명의 광고 후원으로 이들을 응원했다. 이는 이듬해 기자 대량 해직사태로 이어지고, 해직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했다.  고인은 이 모든 과정에 앞장섰으며, 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 뒤에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86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정책연구실장(87년) 등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고인은 한겨레 창간 작업에 참여하면서 언론인으로 ‘복귀’했고, 91년 한겨레를 떠난 뒤에도 언론인의 길을 벗어난 적이 없다. 92년 <사회평론> 재창간위원장과 이듬해 사회평론사 대표를 맡았고, 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을 지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위원 등을 맡아 방송 개혁을 이끌었다.   지난 8월5일 <한겨레>의 ‘8·15 해방 69돌 기념 좌담회’ 때 겨레하나 이사장으로 참석한 성유보(이룰태림) 선생(왼쪽 사진), 1988년 5월14일 밤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 윤전실에서 막 찍혀 나온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들고 고 리영희(맨 오른쪽) 선생 등 창간 주역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성유보(오른쪽 둘째) 당시 초대 편집위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영원한 현역 언론인으로 남고자 한 고인의 열망은 자유언론실천선언 40돌을 맞아, 지난 1월부터 한겨레의 회고록 ‘길을 찾아서’ 연재를 통해 70~80년대의 어두운 독재시대를 증언하고 그 교훈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고인은 ‘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이라는 부제의 연재물 마지막회([<한겨레> 6월24일치 31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사람들 목소리를 듣는 보살이란 뜻이란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또한 그 시대 언론인이었다. 그러므로 한 시대 ‘언론의 자유’는 당대 백성들의 시대적 소망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요즈음 확실히 깨닫고 있다.”  한평생 자유언론과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켜온 칠순의 언론인은 2014년 오늘에도 언론의 자유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하면서 이렇게 글을 맺었다. “한국의 21세기 시민사회가 언론자유 쟁취 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와 복지와 평화로의 새로운 대행진을 다시 시작한다면 우리 한민족은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의 문명중심지’로 재탄생할 것이다. 한민족의 새로운 역동성에 희망을 건다.”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 낮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지 여부 등을 정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연희씨와 아들 덕무, 영무(회사원)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02)2227-7500.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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