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답을 기다리며...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추석연휴
14.09.11 17:16l최종 업데이트 14.09.11 19:16l명숙(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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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 보내는 국민 한가위'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실의 배' 띄우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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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추석연휴 첫날이지만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 앞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로 북적북적했다. 시민들에게 나눠줄 노란 리본을 만들거나 선전물을 접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숨을 거둔 후로 그들에게 일상이 사라졌듯이 추석도 그렇게 사라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성함이 가득한 명절이지만 유가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가 없으니 다시는 즐거운 명절을 맞을 수 없을 거 같아."(6반 재능 엄마)
"여기서 명절을 보낼 거예요. 솔직히 가족들이 모이면 괴롭잖아요. 지금 심정으로서는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즐겁게 맞이할 수 없을 거 같아요."(6반 영만 엄마)
"누구한테나 너무 아픈 사람이다 보니까 친인척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운 거지요. 내가 감으로써 그 사람들이 고통스러울 것을 뻔히 아니까, 안 가도 고통스러울 테지만 안 보면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 사람들이라도 편안한 추석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있음으로써 더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함께하기 힘들 정도니까 차라리 그것만 피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겠지요."(5반 성호 엄마)
모두들 갈 데가 없다. 아니 가고픈 곳이 있지만 갈 수가 없다. 7반 영석 엄마는 빨리 특별법을 만들어서 안산에 있는 분향소에도, 단원고 희생자들이 묻힌 하늘공원에도 가고 싶지만 아직까지 면담조차 해주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갈 수가 없단다. 엄마들이 안산에서 먼 이 곳 청운동까지 온 것은 단식 40일 차이던 8월 22일, 유민 아빠가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유민 아빠를 대신해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이제 유가족들이 지켜야 하는 곳이 국회, 광화문, 청운동 세 곳으로 늘어났다.
청운동사무소 앞의 농성은 녹록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등교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마주해야 한다. 가끔 목욕탕을 가기는 하지만 씻는 것도 동사무소 화장실을 써야 한다. 겉옷만이 아니라 속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모든 옷을 세탁소에 맡기기도 어렵고, 빨아도 말리기 어렵다.
"친인척 만나는 것도 부담... 그들이 고통스러울 걸 뻔히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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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을 찾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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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래도 이곳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 돌아가면서 밤을 샌다. 청운동에 온 지 20일째이자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9월 10일에는 3반 예은이 할머니가 유가족들을 위해 손수 도시락을 싸서 왔다. 어머니로서 거리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지도 못하는 자식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그동안 얼마나 안쓰러웠겠는가.
추석에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안산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 '가족합동기림상'을 차리기 위해 함께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광화문광장에서 '국민 한가위상, 추석 명절 가족과 함께 음식 나누기' 행사를 열었다. 7반 영석 아빠를 혼자 있게 할 수 없어서 안산에도 가지 않은 민우 아빠는 한가위상을 차리는데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진 한가위상이라 더 생각이 났으리라.
"상을 차리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원래 상은 자식이 부모 모시면서 차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상을 차리니…."
8일은 명절이기도 했고 40일 넘는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간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오는 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세월호 진실의 배를 띄우는 행사가 있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많이 왔다. 아니 연휴 내내 시민 수백 명이 광화문을 가득 메웠고, 청운동에도 지지방문을 하는 시민들이 끊이지 않았다.
강허달림, 이은미, 강산에 등 대중가수와 수많은 연극인들이 명절 연휴 내내 광화문에서 공연을 했다. 한의사들이 청운동에 와서 진료도 해주고 문예일꾼들이 와서 스트레칭을 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싸움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하던 9월 6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단식농성장을 비아냥거리며 광화문에 왔고, 청운동 농성장 건너편에서 "Go Home(집으로 돌아가라)"이란 글을 A4 종이에 적어 든 뒤 유가족을 비난하며 1인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저 대추가 제대로 익어 떨어질 때까지 계속 답을 기다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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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하루 전인 7일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성장. 유가족들이 농성장을 방문한 천주교 성직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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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반 영만 엄마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미안함만이 아니라 고마움을 느끼며 찾아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민들이 오셔가지고 저희한데 고맙다고 하는데 처음에 이해를 못했어요. 왜 저분들이 우리한테 고맙다고 하지? 당연히 우리 일인데. 우리가 저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저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지? 내 일인데 우리 보고 고맙다고 하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엄마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어요. 그냥 애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내 식구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면 되니까, 그렇게 살았던 엄마들인데, 그런 걸 보면서 '아, 이게 우리만의 일이 아니구나' 그걸 나중에 알게 된 거예요.
정말 사회적으로 우리나라에 이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저분들이 움직이는 거고, 그 주체가 우리들이 된 거지요. 부모들이 안 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저분들이 아마 이 일을 바꾸는데 우리가 주인이 되고 멈추지 않는 걸 보고 고맙다고 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면 더더욱 멈출 수 없는 일이구나.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그래서일까? 청운동 농성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밝은 얼굴로 일일이 챙기거나 부당한 경찰들의 행위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 7반 영석 엄마도 청운동에 있을수록 오래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청와대의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4월 16일 팽목항에서 봤던 아픔을 그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살려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절규했는데 구조하지 않았던 일들. 입속이든 콧속이든 다시마로 채워지고 손톱이 새까매진 영석이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서는, 다시 억울하게 아까운 생명들이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짐하듯이 말한다.
"지금은 대추가 파랗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만 저게 제대로 익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초인종 누르면서 답을 기다릴 거야. 더 오래 걸려도 답을 기다릴 거야."
그리고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대상과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묻고 청와대 앞까지 온 유가족들에게 '왜 청와대 앞에서 그러고 있냐?'며 부당한 질문을 던질 게 아니라 '5개월이 다 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까지 밝혀진 게 있고 책임진 게 있냐?'고 정치권에게 던져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소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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