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단 마저 무산시킨 최악의 대북적대노선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4/09/04 [23:2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응원단 방한이 결국 무산되었다. "박근혜 정권이 눈뜨고 있는데 북한응원단이 가능하겠느냐"라는 신중한 의견도 있었고, "박근혜 정권이 정말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북한응원단을 맞아야 한다. 응원단은 실현된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응원단 방한 무산은 우리 국민들에게, 그리고 아시안게임을 보더라도 크나큰 낭패일 수밖에 없다.
응원단까지 가로막는 절정의 대북적대의식
북한 응원단의 무산은 아시안게임의 흥행차원을 떠나 박근혜 정부에게 직격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러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세계 각국들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마당에 응원단이 무산되니, 대북관계에서 한국만 낙오하는 형국이다.
연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하고 7월 15일에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결국 어찌되었는가? 북한이 민감하게 반발해 온 사안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3월 28일, '드레스덴 선언'에서 북한이 그동안 강력히 반발해 온 '북핵 우선폐기'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로 시작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일궈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완전히 대비되는 행보이다.
특히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아시안게임 참가의사를 밝히고 응원단까지 보낸다고 공개한 마당에, 더욱이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추진할 수도 있는 절호의 8월 말 시기에, 박근혜 정권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강도높게 주문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서 북핵 맞춤형 억제전략을 연습하기에 바빴다.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포착되면, 한국군과 미군이 지상·해상·공중의 가용전력을 총동원해 선제타격하는 공세적 전략이다.
북한은 아시안게임 참가, 응원단 파견 타진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제스처를 보내는데,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억제전략"으로 군사훈련을 강행한 셈이다. 북한의 자존심을 감안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북한응원단이 오기 어려운 상황을 조성해버린 것이다.
물론, UFG훈련과 같은 연례적인 군사훈련은 협상의제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번 UFG 훈련은 미국측에 의해 훈련일정이 하루 단축되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UFG 훈련단축은 최근 불거진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참가차 뉴욕방문과 연계되어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15년만에 북한 외무상이 미국을 방문한다는데, UFG 단축은 북 외무상을 뉴욕에 부르기 위한 미국측의 서비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소리> 방송은 8월 29일, "당초 29일까지로 예정됐던 UFG 훈련을 하루 앞당겨 28일 종료한 게 미-북 간에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입니다"라고 보도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UFG 훈련은 북한과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으니,
의 보도대로 훈련축소는 미국의 결정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조차 UFG 훈련을 하루 단축시키는 제스처를 보이는데, 박근혜 정부의 대북대결 고집은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이다.
우리는 왜 이런 최소한의 "눈치"조차 없는 것인가? 박근혜 정권이 미국측에 "UFG 훈련 기간이라도 조정해달라"라고 한 마디만 했다면, 북한 응원단은 과연 무산되었을까? 심지어 박근혜 정부가 요구하던 이산가족 상봉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수 있을까? <한겨레신문>은 8월 21일, 미국 재무부 고위당국자가 금강산관광이 유엔제재위반이 아니며 한국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금강산관광까지 문을 열어주고 있는데, 이 정부는 그저 대북압박에만 매달리고 있다.
시류를 읽지 못하는 외교, 과연 제정신인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응원단 방문을 받아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라도 취했다면, 정부는 남북관계를 일정하게 열고, 이를 지렛대로 물밑대북접촉이 활발한 미국과 일본에게 상당한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50년대식 "무력북진통일", 70년대식 "승공통일"에 심취한 듯 보인다. 그간 정부쪽에서 나온 대북정책은 "국지도발대비", "확장억제", "위장평화공세" 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반공냉전식 대응방식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을 타진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방송은 8월 29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최근 군용기를 타고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비공개 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신문> 등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도 미국과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 16일 미국 정부 관계자가 군용기를 타고 1박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인사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북한 외무상이 유엔참가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는 기사가 나오기 무섭게 9월 2일에는 강석주 북한 조선노동당 국제비서가 유럽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9월 2일,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을 인용하며 "강석주 비서는 이번주 후반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EU관계자들과의 접촉도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고위 인사의 유럽 순방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고 보도하였다.
일본까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데일리NK>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이 오는 30일 평양에서 개막하는 국제프로레슬링대회 참가 선수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평양 옥류관에서는 조-일 우호친선협회와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주최로 이노키 의원과 선수들을 환영하는 연회가 열렸다. 주목할 것은 이 자리에 강석주 당비서, 김영훈 체육상, 장웅 위원장, 박근광 당 부부장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북-일 관계에 모종의 물밑협상을 짐작케 한다.
황당한 것은 이러한 대북행보에 대한민국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원래부터 북한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으니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이 대화로 접근하는데 왜 우리 정부만 북한을 죽일듯 노려보고 있는 것인가?
스포츠는 관계개선의 견인차
역대로 스포츠는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화해하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회-문화교류 가운데 스포츠는 양국이 부담없이 교류할 수 있는 무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역사적으로 커다란 대전환이며 냉전의 틀을 바꿔놓았던 미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도 스포츠 종목인 탁구대회로부터 시작하였다.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탁구 선수를 비롯한 미국 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이 1971년 4월 10일부터 4월 17일까지 중국을 방문, 저우언라이 총리와 면담을 가진 데 이어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순방하면서 미-중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으며 1972년 2월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미국과 중국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지금 일본도 안토니오 이노키 참의원이 "프로레슬링 경기" 개최라는 형식으로 평양을 방문, 강석주 비서를 만났다.
더욱이, 남북의 스포츠 교류야 말할 것도 없다. 남북대결의 삼엄한 분위기가 확연하던 1991년 4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남북은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이는 이후 이 사건은 "코리아"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은 처음으로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코리아(Korea)'라는 이름으로 공동 입장하였다. 이후 남북은 지속적으로 하계 및 동계올림픽에서 같은 형식으로 공동 입장해왔다.
<뷰스앤뉴스>는 7월 16일, 워싱턴 외교가에서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에 대해 “지적 수준이 낮고, 전략적 세련미가 떨어지며, 미성숙하다”고 혹평했다는 보도가 나와 파장을 예고한다고 보도하였다. <문화일보> 이미숙 국제부장 또한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관련 화법도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을 정조준한 뒤, "박 대통령은 북핵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핵 문제가 배제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내걸고 있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얘기하면서도 북한과의 채널 구축엔 회의적이다. 한·미동맹 중시론을 펴면서도 한·중 관계를 동맹에 버금가는 최상의 관계로 만들겠다고 얘기한다. 상호 간에 충돌하는 여러 구상과 개념이 섞이다보니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힐난했다고 한다.
노골적인 UFG 강경대응으로 북한응원단을 무산시킨 박근혜 정부, 그야말로 최악의 외교일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라인 전반을 교체하지 않으면 앞으로 외교참사가 이어지지 말란 보장이 없다.
물론, 응원단이 방한하지 않더라도 북한 선수단은 아시안게임에 참여한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 향후 세계외교의 지렛대를 만들기 위해서도 이번 아시안게임의 남북 스포츠교류에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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